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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들이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등록 2016-10-13 19:28수정 2016-10-13 19:59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침묵을 삼킨 소년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영미 옮김/예문아카이브(2016)

얼마 전 지인과 운전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운전면허가 없는 그는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를 당할까 봐 무섭다고 했다. 운전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초보 딱지를 붙인 나지만 그래도 경험자랍시고 말했다. “내가 사고 당하는 것만이 무서운 게 아니에요. 무서운 건 남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삶을 무너뜨리는 건 피해자가 되는 사건만이 아니다. 가해자가 된다는 건 삶을 쓸고 가는 태풍에 자기를 맡겨버린다는 뜻이다.

사고도 아니고, 어느 날 내 가족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야쿠마루 가쿠의 <침묵을 삼킨 소년>은 가해자 아버지의 내면을 파고드는 소설이다. 오랫동안 노력해왔던 미술관 프로젝트의 성사를 눈앞에 둔 저녁, 요시나가는 전처와 함께 사는 열네살 아들 쓰바사에게서 전화를 받지만, 회식 중이란 이유로 무심코 넘겨버린다. 그 후 아들은 연락이 끊기고 며칠이 흐른 후에 동급생이었던 소년의 살인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다. 그러나 쓰바사는 사건의 동기에 대해서는 굳게 침묵을 지키고, 변호인의 도움조차 거절한다. 이제 요시나가는 그간 소원했던 아들의 삶을 따라가며 진실을 구한다.

소년 범죄는 작가인 야쿠마루 가쿠가 스스로 사명이라고 할 정도로 꾸준히 추적한 주제이다. 1988년 일어난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을 계기로 소년 범죄에 관심을 가진 그는 <천사의 나이프>를 쓰면서 형사 책임 연령 전후의 소년들이 저지르는 범죄의 무게와 그를 단죄하는 정의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침묵을 삼킨 소년>은 <천사의 나이프>와 비교하면 스릴러적 요소는 적고 죄와 벌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소년범을 법으로 보호하는 근거는 그들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는 판단과 더불어 속죄와 교화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용서할 수 있는가. 처벌할 수 있는 죄란 과연 무엇인가. 갱생이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인간의 고민을 작가는 소설로 탐색한다.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부모 심리를 그린 소설은 적지 않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케빈에 대하여>는 충격과 공포를 안겼고,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디너>는 냉소적으로 부모의 위선을 벗겨냈다. 윌리엄 랜데이의 <제이컵을 위하여>는 아들의 무죄를 주장할 수도 없는 검사인 아버지의 갈등을 묘사했다. 대중소설은 사회의 현재 문제를 직접 다루는 만큼, 이런 작품들의 출현은 소년 범죄가 특정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적 가정의 도덕이라는 눈속임으로 봉합할 수 없는 전지구적 문제라는 징후이다. 이들 사이에서 <침묵을 삼킨 소년>은 소년범을 만든 학교 폭력의 영향을 말하긴 하지만 ‘아이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이 새 삶을 살도록 믿어주자’라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죄의 무게에 맞는 벌로 매듭을 지었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갱생, 다시 사는 삶이 가능한 것이다. 죄와 벌을 재는 저울의 균형을 끊임없이 고심해야 한다고, 그것이 단지 법의 여신뿐만이 아니라 소년 범죄자를 만든 사람들 모두의 의무라고 이 책은 말한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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