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1946년 대구·경북 일대에서 벌어진 ‘10월 항쟁’은 그간 좌익이 사주한 ‘폭동’ ‘소요’로 인식되었습니다. 신간 <10월 항쟁>(김상숙 지음, 돌베개)은 이 사건이 근현대의 교차점에서 민중이 자발적으로 펼친 농민항쟁이자 사회운동이었다는 점을 밝힙니다.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 잘못된 식량정책, 토지개혁 지연 등에서 반발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빨갱이 트라우마’로 지금은 보수색채가 짙어진 대구·경북이지만 당시 분위기는 사뭇 달랐던 모양입니다. 해방 직후 농민들은 “하양장터가 부글부글”할 정도로 ‘토지개혁’ ‘남녀평등’을 외치고 종이에 써붙이곤 했답니다. 지은이는 대구·경북지역에서 지금도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이들을 보고 “골로 가니 조심해라”는 말을 한다며, “골짜기로 끌려가 학살당했던 경험이 집단적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이런 집단(무)의식은 곧 냉전 통치성을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면서요.
책을 읽으며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떠올랐습니다. 청문과정에서 나온 특혜 의혹에 대해 김 장관은 대학 동문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인이 시골 출신에 지방대(경북대)를 나온 ‘흙수저’라서 무시당했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지요. 공개 사과까지 하셨으니 부디 민중 항쟁의 고장 ‘출신’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흑역사’를 거듭 쓰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도움이 되는 책을 찾으신다면 이주의 신간 <다석 강의>(교양인)와 <함석헌 선집>(한길사)이 어떨까요. 자격 없는 지도자와 그를 맹종하는 이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책들이니까 말입니다. ‘고난 겪는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씨알사상을 펼쳤던 함석헌과 이름만 민주주의인 ‘허명민주’를 경계한 류영모의 사상은 개인과 집단의 어두운 역사를 밝히는 데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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