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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추리작가들을 매료시킨 요리는 무엇?

등록 2016-09-08 19:32수정 2016-09-08 19:55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죽이는 요리책
케이트 화이트 엮음, 김연우 옮김/라의눈(2016)

어릴 때 읽었던 외국 소설에는 내가 모르는 세계의 물건들 이름이 가득했다. 가장 어려웠던 건 역시 음식 이름이었다. 특히 추리소설에서는 음식은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범죄의 동기기도 하고, 주인공의 성격이기도 하며, 수단으로서 흉기도 된다. 대부분은 사건의 정황과 시간을 알려주는 단서이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범죄의 결과물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대체 사건의 핵심 단서가 되는 트라이플은 뭐란 말인가? 붉은 청어는 뭘 말하는 거지? 혹은 한니발이 좋아한다는 키안티는 어떤 와인이었을까? 셜록 홈스가 아침에 먹었다던 샌드위치에는 무슨 재료를 넣었지? 분명히 이런 궁금증을 가진 호기심 많은 독자가 있었을 테고 그들 중 몇 명은 지금 미스터리를 애호하는 음식비평가로, 혹은 맛집 전문 파워 블로거로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죽이는 요리책>은 미식 전문가는 아니라도 여전히 추리소설 속 음식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냉큼 집어들 책이다.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에 소속된 작가들이 자신의 책에 등장했던 음식이나, 혹은 작가 본인이 평소에 즐겨 만드는 음식의 요리법을 공개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찾아봤을 때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장르소설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이다. 여기 등장한 음식들은 미국인들에게는 고향의 맛일지 모르겠지만, 보통의 한국 입맛을 고수하는 독자들에게는 어린 시절 그랬듯 여전히 별을 헤며 부르는 외국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이제 요리법을 읽으면서 그 정체를 연역적으로 추리해나갈 수 있다. 그러니 요리책이 아니라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외형에서만은 요리책임을 굳건히 주장하는 <죽이는 요리책>은 아침 식사, 전채 요리, 수프와 샐러드, 메인 요리, 곁들임 요리, 디저트, 술과 음료라는 세부 구분을 두고 100개가 넘는 작가의 요리법을 실었다. 이 중에는 잭 리처 시리즈로 유명한 리 차일드, <나를 찾아줘>의 길리언 플린, 스릴러의 거장 제임스 패터슨, 코지 미스터리의 여왕 루이즈 페니처럼 국내에도 익숙한 작가들의 비법이 들어 있다.

여기에는 육수를 오래 내고 파이 껍질을 만드는 등 손이 많이 가는 요리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수 그래프턴의 요리법처럼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래프턴이 창조한 여성 탐정인 킨제이는 미국의 독자들도 혼비백산하는 “괴식”을 만들어냈다. 빵 한쪽에 땅콩버터를 듬뿍 바르고 피클 조각을 올린 샌드위치다. 집에서 피자를 주문해 먹고 남은 피클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따라 해볼 수 있겠다. 작가가 허구의 캐릭터 몸무게에 책임을 지지 않듯이 그저 소개할 뿐인 나도 열량이나 맛은 책임질 수 없다.

탐정 에르큘 포와로는 <에지웨어 경의 죽음>(황금가지)에서, “식사할 때는, 두뇌는 위의 하인이 되어야 한다네”라고 했지만, 추리소설 독자들은 등장인물이 뭔가 먹을 때는 오히려 회색 뇌세포를 열심히 쓴다. 잠재된 범죄의 냄새를 맡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요리를 생생하게 상상하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뇌세포를 너무 많이 쓰지 않고도 추리소설 속 요리를 감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죽이는 요리책>으로도 포만감을 꽤 느낄 수 있지 싶다. 참, 오직 이 많은 작가 중 한 명만이 가상의 작가이다. 다정한 팬케이크 요리법을 제시한 이 작가가 누구인지는 책을 보는 사람을 위한 미스터리로 남겨둔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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