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학자들이 지난 18일 중국 심양 글로리아플라자 호텔에서 <우리말 통일대장경> 공동번역을 위한 국제학술회의를 열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 <고려대장경연구소>
10월 중국서 첫 공동학술회의 8년만에 공동번역 본격 논의
2010년 ‘우리말 통일대장경’ 발간
고려 팔만대장경을 남북이 공동으로 번역해 <우리말 통일대장경>(가칭)을 발간하는 사업이 제 궤도에 올랐다. 고려대장경연구소(이사장 종림 스님)는 “지난 18일부터 이틀간 중국 심양에서 남북 학자들이 고려대장경 번역에 관한 공동학술회의를 열었다”고 31일 밝혔다. <우리말통일대장경> 발간 사업은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명진 스님), 고려대장경연구소 등이 지난 97년부터 추진해왔지만, 관련 공동학술회의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려대장경연구소는 “그동안 물밑 접촉을 통해 공동번역의 필요성을 서로 제기하는 데 그쳤다면, 이번 만남에서는 공동번역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또 “그동안 남북한이 별도로 추진해 온 고려대장경 번역 작업의 차이를 비교·발표하는 과정에서 고전 번역의 어려움을 서로 털어놓는 등 참석 학자들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고 설명했다. 공동번역을 위해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이야기다. 남쪽에서는 허남진 서울대 도서관장, 허인섭 덕성여대 철학과 교수 등 8명, 북쪽에서는 최태권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 소장 등 10명이 각각 참여했다. 공동학술대회를 주선한 중국 심양 고려민족문화연구원 소속 동포 연구자 3명도 함께 참석했다. 허인섭 교수는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 “97년께 북쪽에서 먼저 공동번역 가능성을 남쪽에 물어왔고, 북쪽의 번역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던 우리도 이를 반겼지만 여러 여건이 맞지 않아 오랫동안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공동 학술회의를 연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말 통일대장경> 발간 사업은 현재 국어학자들이 추진중인 <겨레말큰사전> 편찬 작업과 함께 남북 학술 교류의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겨레말큰사전>이 우리말글 통일 작업이라면, <우리말 통일대장경>은 민족 고전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일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북 공동 대장경 사업일지
특히 학계 전문가들은 이번 학술교류가 남쪽의 고전 번역 연구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윤희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은 “북쪽의 고전 번역본은 쉽고 매끄럽게 의미를 전달하고 있어 널리 읽히기 쉬운 장점이 있고, 남쪽의 번역본은 원문에 충실한 용어를 골라 자세한 해제를 실어 전문가들을 배려하는 장점이 있다”며 “공동번역본에서는 두 장점을 고루 융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고전 번역을 단순 번역으로 치부하지 않고 독립된 ‘분과 학문’으로 격상시킨 북쪽의 학문적 성과를 접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예상된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쪽은 앞으로 5년 뒤인 2010년께 <우리말 통일대장경>을 발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차 남북공동학술회의는 내년 4월께 열릴 예정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북 “고전 번역은 단순번역 아닌 과학적 연구” 김일성
대학서 전문가도 따로 배출 이번 학술대회에선 북쪽의 고전 번역 연구의 실상을 전하는 글들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최태권 북한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 연구원 등 북쪽 학자들의 글을 종합하면, 북쪽은 고전번역을 역사연구와 구분되는 독자적 학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족고전에 대한 번역은 다른 일반 언어자료에 대한 단순한 번역과는 달리 하나의 과학적 작업이며 연구”(최태권)라는 것이다. 많은 민족고전이 한국 전쟁 동안 유실된 열악한 상황은 오히려 관련 연구를 북돋았다. 각지의 도서관과 박물관에 ‘민족고전서고’를 따로 마련하고, 가치가 높은 고전은 국가 문헌고에 영구 보관하며 나머지 고전들도 필사와 복사를 통해 인민대학습당·사회과학원도서관·김일성종합대학도서관 등에 분산 보존하고 있다. 1956년 북한사회과학원 산하에 민족고전번역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고전연구실을 마련했고, 60년대 초에는 이를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로 승격시켰다. 80년대 들어 김일성종합대학에 민족고전학부를 따로 만들어 고전번역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다. 그동안 북쪽이 한글로 번역한 고전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목민심서> <택리지> 등 수백여종에 이른다. 특히 70년부터 20년에 걸쳐 <리조실록>(<조선왕조실록>의 북한식 표현)을 번역·출판한 것을 큰 성과로 자평하고 있다. 고전에 등장하는 한자어휘와 용례를 담은 <한자말대사전>도 내년에 편찬할 예정이다. <고려 팔만대장경>은 아직 완역본을 발간하지 않았다. 대신 1930년대 남쪽 해인사판본으로 찍어 묘향산에 보관중이던 대장경 판본을 바탕으로 주요 내용을 발췌·번역한 해제 15권(87년)과 선(選)역본 17권(93년)을 각각 발간했다. 오윤희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은 “북한에서 나온 <고려대장경> 해제와 선역본은 남쪽 번역본에 비해 매끄럽고 소박하여 의미전달이 쉽다”고 평가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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