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왕과 서커스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2016) 2015년 9월, 헝가리인 카메라 기자 라슬로 페트러는 독일로 탈출하기 위해 헝가리 국경을 넘는 시리아 난민들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시리아 난민인 오사마 압둘 모흐센은 어린 아들을 안고 경찰 저지선을 뚫고 달렸다. 라슬로는 모흐센이 옆을 지나칠 때 카메라를 든 채로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이 장면은 현장에 있던 카메라에 담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라슬로는 후에 인터뷰에서 “그때 마음속에서 뭔가 딱 부러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1년 가까이 된 이 사건을 떠올린 계기는 올림픽과 <왕과 서커스>이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는 최초로 난민 대표팀이 참가했다. 시리아, 에티오피아, 남수단, 콩고민주공화국의 난민인 선수 10명이 모여 결성된 팀이다. 18살의 수영 선수 유스라 마르디니는 이 가운데 한 명이다. 마르디니는 시리아 내전을 겪은 뒤 자매와 함께 탈출하여 터키로 갔다. 거기서 그리스로 갈 예정이었지만, 인원 초과로 배가 멈췄다. 마르디니는 살기 위해서 3시간을 헤엄쳐 에게해를 건너야 했다. 생존을 위해 헤엄쳤고 이제 올림픽을 위해 물살을 가르는 소녀의 얼굴 위로 난민들을 막기 위해 발로 찼던 기자의 모습이 교차했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서 딱 부러졌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왕과 서커스>는 여행차 네팔에 머무르던 프리랜서 기자가 공교롭게 발생한 국왕 일가 시해를 취재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비극적 혼란을 겪는 카트만두를 뛰어다니며 기사에 실을 내용을 찾던 다치아라이는 정보원과 접속하지만 그에게서 이 먼 나라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이유를 질문받는다. 진실을 위해서? 도움을 주려고?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 정보원은 뉴스를 보는 사람은 단순히 서커스의 호랑이를 보듯 즐기는 것이라 말한다. 눈물을 흘리고 비극을 동정한다고 해도 먼 나라의 비극을 소비하는 것뿐이다. 기자들은 서커스의 단장이고, 그들이 쓰는 글은 서커스의 쇼일 뿐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반박을 찾지 못한 채 다치아라이는 또 한 번의 살인사건에 얽히고 다시 한 번 기자로서 자기의문에 사로잡힌다. 작가인 요네자와 호노부는 <왕과 서커스>에서 외신 기자의 보도 윤리에 대해서 질문할 뿐 아니라, 전작인 <야경>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비슷하게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보여준다. 다치아라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특종과 올바른 보도 방식 사이에서 고민한다.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믿었던 그녀도 일순 기사에 사로잡혀 보지 못했던 자신의 어둠을 살인자의 입으로 지적당하는 부분이 이 소설의 서늘한 클라이맥스이다. 다치아라이의 마음속에서도 순간 딱 부러졌던 것이 있었다. 올림픽 개막식 중계 때, 어떤 방송사는 어떤 먼 곳의 국가들을 “내전 국가”, “과거의 식민지” 등으로 소개해서 빈축을 샀다. 한 나라를 비극으로 정의하는 건 자신이 처할 일 없는 참극을 아랑곳하지 않는 서커스의 단장 같은 태도이다. 올림픽엔 분명 쇼와 같은 면이 있지만, 목숨을 걸고 헤엄쳐 와서 참가한 선수도 있다. 스포츠는 묘기를 보여주는 서커스만은 아니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2016) 2015년 9월, 헝가리인 카메라 기자 라슬로 페트러는 독일로 탈출하기 위해 헝가리 국경을 넘는 시리아 난민들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시리아 난민인 오사마 압둘 모흐센은 어린 아들을 안고 경찰 저지선을 뚫고 달렸다. 라슬로는 모흐센이 옆을 지나칠 때 카메라를 든 채로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이 장면은 현장에 있던 카메라에 담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라슬로는 후에 인터뷰에서 “그때 마음속에서 뭔가 딱 부러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1년 가까이 된 이 사건을 떠올린 계기는 올림픽과 <왕과 서커스>이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는 최초로 난민 대표팀이 참가했다. 시리아, 에티오피아, 남수단, 콩고민주공화국의 난민인 선수 10명이 모여 결성된 팀이다. 18살의 수영 선수 유스라 마르디니는 이 가운데 한 명이다. 마르디니는 시리아 내전을 겪은 뒤 자매와 함께 탈출하여 터키로 갔다. 거기서 그리스로 갈 예정이었지만, 인원 초과로 배가 멈췄다. 마르디니는 살기 위해서 3시간을 헤엄쳐 에게해를 건너야 했다. 생존을 위해 헤엄쳤고 이제 올림픽을 위해 물살을 가르는 소녀의 얼굴 위로 난민들을 막기 위해 발로 찼던 기자의 모습이 교차했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서 딱 부러졌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왕과 서커스>는 여행차 네팔에 머무르던 프리랜서 기자가 공교롭게 발생한 국왕 일가 시해를 취재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비극적 혼란을 겪는 카트만두를 뛰어다니며 기사에 실을 내용을 찾던 다치아라이는 정보원과 접속하지만 그에게서 이 먼 나라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이유를 질문받는다. 진실을 위해서? 도움을 주려고?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 정보원은 뉴스를 보는 사람은 단순히 서커스의 호랑이를 보듯 즐기는 것이라 말한다. 눈물을 흘리고 비극을 동정한다고 해도 먼 나라의 비극을 소비하는 것뿐이다. 기자들은 서커스의 단장이고, 그들이 쓰는 글은 서커스의 쇼일 뿐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반박을 찾지 못한 채 다치아라이는 또 한 번의 살인사건에 얽히고 다시 한 번 기자로서 자기의문에 사로잡힌다. 작가인 요네자와 호노부는 <왕과 서커스>에서 외신 기자의 보도 윤리에 대해서 질문할 뿐 아니라, 전작인 <야경>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비슷하게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보여준다. 다치아라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특종과 올바른 보도 방식 사이에서 고민한다.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믿었던 그녀도 일순 기사에 사로잡혀 보지 못했던 자신의 어둠을 살인자의 입으로 지적당하는 부분이 이 소설의 서늘한 클라이맥스이다. 다치아라이의 마음속에서도 순간 딱 부러졌던 것이 있었다. 올림픽 개막식 중계 때, 어떤 방송사는 어떤 먼 곳의 국가들을 “내전 국가”, “과거의 식민지” 등으로 소개해서 빈축을 샀다. 한 나라를 비극으로 정의하는 건 자신이 처할 일 없는 참극을 아랑곳하지 않는 서커스의 단장 같은 태도이다. 올림픽엔 분명 쇼와 같은 면이 있지만, 목숨을 걸고 헤엄쳐 와서 참가한 선수도 있다. 스포츠는 묘기를 보여주는 서커스만은 아니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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