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시, 백로라 말풍선, 윤정주 그림/문학동네·1만2800원 표지에 그려진 만화와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동물이 짜장면을 배달한다고? 그렇다면 어떤 동물이 가장 어울릴까? 비로소 상상해본다. 신속한 배달을 해야 하니 발 빠른 동물부터 머릿속에 떠오른다. 사자, 호랑이, 말, 치타, 표범, 다람쥐…. 아무리 생각해도 시인이 상상한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치타가 짜장면 배달엔 안성맞춤일 것만 같다. 표지에 선보인 짧은 만화에서는 책 속 32편의 시와 카툰에서 느낄 수 있는 해학과 유머가 그대로 전달된다. 부엉이 네 마리가 짜장면을 기다리고 있다. 한 부엉이가 “왜 안 와?”라고 말하고 옆 부엉이가 “전화해봐”라고 말한다. 그 옆 부엉이가 “출발했대”라고 말하니 그 옆 부엉이가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한 컷짜리 만화에서도 마치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본 듯 웃음이 피식 나온다.
풍자와 해학의 재미를 선물 특히 시 속에서 여러 동물을 통해 선보이는 풍경은 아이를 위한 동시에서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밝고 희망찬 모습도 있지만, 현실을 약간 비틀고 꼬집어 풍자와 해학의 미학을 살린 장면도 있어 다채롭게 다가온다. 예를 들면 ‘멍게는 지각대장’과 같은 작품이 그렇다. “멍게야, 또 늦었구나/ 어제도 늦더니/ 오늘도 늦었네/ 멍게야!/ 멍게야?/ 왜 대답이 없니?/ 멍게 뭐 하니?/ 네. 선생님/ 저 지금 멍해요/ 학교에 오면 멍해요/ 칠판을 보면 멍해요”. 시 옆에 그려진 한 장짜리 카툰은 시의 재미를 더 극대화시켜준다. 개는 “누가 내 얘기를 하지?”라며 멍멍 짖고, 꽃게는 “나도 멍할 땐 멍게인데” 하고 거든다. 시를 처음 접하는 아이라면 이 책 속 시와 카툰을 보며 재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좋아하는 아이는 시와 카툰의 융합을 통해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맛볼 수 있겠다. 단순하고 짧은 동시지만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읽을 때마다 재탄생하는 느낌을 준다. 4~5살부터 초등학생까지.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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