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프리모 레비 지음, 심하은·채세진 옮김/북인더갭·1만5500원 스물넷 젊은 시절에 반파시즘 파르티잔 투쟁에 참여했다가 붙잡혔으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을 성찰한 과학자. 이탈리아 출신 프리모 레비(1919~1987)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두 해 전에 출간된 에세이집이 <고통에 반대하며>라는 제목의 우리말 번역본으로 나왔다. <이것이 인간인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 같은 대표적인 전작들에 삶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과 달리, 이 에세이집은 정겹고 따뜻한 추억과 사유로 가득하다. 눈빛 초롱초롱한 아이의 호기심과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 느낌이다. 모두 50편의 짧은 글들이 실린 이 책에서, 지은이는 어릴 적 살던 집과 할아버지의 가게를 목탄화처럼 재현한다. 딱정벌레와 나비, 다람쥐 같은 작은 생물체에서부터 달과 우주비행까지, 전세계 아이들의 놀이에서부터 글쓰기의 의미와 방법까지 방대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적 탐구가 엿보인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타자를 향한 시선’(번역본 부제)이다. 지은이는 “우리 시대는 머리 위에서 펼쳐지는 경이로운 사건들로부터 시를 정제하는 법을 모른다”고 안타까워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도전”으로 보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성찰한다. 그러면서 “모든 종교와 법이 인정하는 규칙은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고통을 야기하지 말라고 명령한다”는 걸 환기하며 “모든 생명을 오염시키는 고통의 엄청난 크기를 줄이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어려운 과제”라고 갈파한다. 나비 날개처럼 산뜻한 글들에 정제된 슬픔이 묻어나는 것도 그래서일까?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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