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있는 서울 문화가 있는 서울
이동미 지음. 경향신문사 펴냄. 9800원
이동미 지음. 경향신문사 펴냄. 9800원
잠깐독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4번출구로 나가면 철길이 보인다. 거북기차가 띄엄띄엄 다니던 두줄기 철로변 미향길. 버짐나뭇잎이 뚝뚝 듣고 그리움이 묻어난다. 수색~신촌~용산을 선으로 잇는 그 길을 홀연히 걷노라면 누구나 ‘가을동화’가 된다. 기찻길옆 왕소금구이집의 지글지글한 연기에 노을이 익을 무렵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 나오면 연남동 귀퉁이 차이나타운에 다다른다. 본토식 중국집 메뉴에는 자장면이 없다. 대신 두툼하고 폭신한 왕만두로 허기진 속을 채운다. 그 길 언저리에 가난한 연인들의 사연이 어리지 않았을까?
<골목이 있는 서울, 문화가 있는 서울>은 시끄러운 대로에서 잠시 비껴 골목방향으로 몇발짝 떼어보라고 한다. 프리랜서 여행작가인 지은이는 서울 토박이도 모를 구석구석의 아기자기하고 기분좋은 뒷골목으로 데려간다. 주말마다 서울을 벗어나려는 나들이족에게는 “파리의 뒷골목만 멋지고 로마의 거리만 낭만적인 줄 알았는데 거기보다 더 많은 의미가 서울의 뒷골목에 있었다”고 귀띔한다.
600년 고도 서울을 오래 품어온 대표골목은 역시 피맛골. 대감 행차를 피해 숨어든 장삼이사의 애환이 서린 그곳은 열차집의 생선 굽는 냄새가 코를 꿴다. 전쟁 무렵 문을 연 찌글찌글한 선술집이지만 그을음이 쌓인 간판부터 시간이 켜켜이 절어든 천장은 막걸리와 빈대떡 맛을 돋운다. 추적추적 비가 올 때면 술꾼들이 빨려든다. 세월의 더께 탓이다.
삼청동 파출소를 돌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색박물관 거리가 나온다. 1관 2관 3관으로 이어지는 역사박물관에 이물 난 이들한테 제격이다. 부엉이 박물관, 티베트 박물관, 세계장신구박물관 등 이름만으로도 눈이 번쩍 뜨이는 이들 박물관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장승업 생가 터에 마련된 ‘작은 차 박물관’에 이르러 향긋한 차에 햇살을 우릴라치면 좋은 사람과 꼭 한번 다시 오고 싶어지는 그런 곳이다.
이야기, 재탄생, 예술, 휴식, 이색공간, 활력, 맛집 등 7개 코드로 풀어낸 이 책은 52개의 골목길 풍경을 약도와 사진을 곁들여 세밀하게 그려낸다. 답십리 고미술상 거리의 절구가 건네는 옛이야기가 정겹고 익선동 할머니가 끓인 3000원짜리 칼국수 맛은 가슴 속까지 뜨끈하다. 길을 잃지 않으면 짐짓 지나칠 광희동 중앙아시아촌, 포졸들이 순찰 돌던 종묘 옆 순라길도 발길을 잡아챈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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