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서민 지음/을유문화사·1만6000원
서민 지음/을유문화사·1만6000원
기생충 하면 ‘더럽고 불쾌하고 혐오스럽다’는 이미지부터 떠오른다. 우리 몸속에 빌붙어 영양분을 갈취하고, 목숨까지 위협하는 기생충이 좋게 보일 리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생충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왔고, 인류가 멸종하더라도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생존할 거의 유일한 존재다. 겉으론 박멸된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다수의 기생충은 대부분의 생물체 안에서 왕성한 번식 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독특한 생존법은 무엇인가.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는 기생충 전문가인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 쓴 책이다. 3년 전 <서민의 기생충 열전>에 소개하지 못한 기생충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물고기의 혀를 없애 놓고 죄책감에 자신이 혀 노릇을 대신하는 ‘시모토아 엑시구아’, 성병으로 분류되며 사람만을 숙주로 삼은 ‘질편모충’, 평소 온순하다가 갑자기 암세포로 돌변해 사람을 위협하는 안면 돌변 기생충 ‘왜소조충’, 인체 내에서 자가감염을 하며 수십년을 생존하는 ‘분선충’ 등 21종을 착한·나쁜·독특한 기생충으로 나눠 그 신비로운 사연을 흥미진진하게 펼쳤다.
‘착한 기생충’은 알레르기와 면역질환 치료에 쓰이는 돼지편충과 구충(두비니구충)이 대표적이다. 사람의 피를 빼먹어 ‘기생충계 드라큘라’ 악명이 높아 박멸 대상이었던 구충이 향후 항응고제로도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뇌수막염을 일으키는 파울러자유아메바는 ‘나쁜 기생충’ 일순위다. 수영이나 온천욕 등 물속에서 입이 아닌 코로 감염되는데, 치사율이 95%에 이른다. “미국의 옐로스톤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 등 수많은 스파와 온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태국(타이) 온천 68곳 중 35.3%에서 이 기생충이 검출됐다”고 하니 요주의 대상이다. 길게는 수십년 동안 인체에 기생하며 심장을 갉아먹고 결국엔 심장마비로 죽게 만드는 크루스파동편모충, 뇌막염을 일으키는 광동주혈선충 등도 나쁜 기생충들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머릿니’는 기생충일까 아닐까. 지은이는 “몸이 아닌 머리에 살고, 욕심부리지 않고 적당히 먹는 다른 기생충과 달리 너무 많은 피를 섭취해 장이 터져 죽는 경우가 많다”며 ‘독특한 기생충’으로 분류했다.
책에는 이처럼 이름조차 생소한 기생충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어렵거나 딱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유쾌한 글쟁이’다운 맛깔스런 글솜씨, 풍부한 사진과 그림이 친절하게 이해를 돕는 덕분이다. “기생충이 나름 열심히 사는 생명체이고 볼수록 매력이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 과학책이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던 지은이가, “필생의 역작”이라고 자부한 이유에 공감이 간다.
건강과 과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 특히 회 마니아이거나 ‘위벽 뚫는 고래회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회를 꺼리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책 속 팁을 살짝 공개하자면, “고래회충은 위를 뚫지도 않을뿐더러 회를 먹어도 감염률이 0.001%에 불과하다. 설령 감염돼도 내시경으로 금방 치료가 가능하다. 고래회충 감염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방법은 회를 뜰 때 내장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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