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누운 배>로 5천만원 상금의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신예 작가 이혁진. “절박해서 들어간 회사였지만 그게 덫이라는 걸 알고 그만두었다”며 “그런 경험을 담은 작품이니만큼 취업을 고민하는 젊은 독자들이 읽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1회 한겨레문학상 당선 이혁진
중국 진출 한국 조선소 이야기
“한국문학에 필요한 기업소설” 평
중국 진출 한국 조선소 이야기
“한국문학에 필요한 기업소설” 평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누운 배>는 이즈음 한국 소설의 주류적 경향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내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에 대해 한 심사위원은 1980년대 노동문학을 연상시키는 사실주의 정신을 지적했고, 다른 심사위원은 극단으로 치달은 세부의 사실성이 오히려 모더니즘적 형식 실험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황현산 심사위원장은 “한국 문학에 필요한 소재임에도 누구도 다루지 않은 기업소설”로 이 작품을 자리매겼다.
<누운 배>의 이런 개성은 작가인 이혁진(36)의 ‘출신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년 가까운 잡지사 기자 생활을 거쳐 소설 주인공처럼 중국 진출 조선소에서 3년 남짓 일했고 잠깐 모색기를 거친 다음 또 다른 직장에서 1년 정도 일한 뒤 3년 전에야 비로소 글을 쓰고 살기로 결심했다. “대학 시절은 물론 잡지사에 근무할 때에도 소설을 비롯해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저는 문학이 신성하고 그 자체로 숭고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글 속에 담긴 ‘진실’이죠. 그것이 소설이든 성경이든 기사든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저는 문학작품이든 다른 그 무엇이든 ‘좋은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제 작가가 됐으니 저 역시 남들에게 읽힐 만한 좋은 글을 쓰고 싶어요. 그게 꼭 소설일 필요는 없습니다.”
문학청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원고를 읽고 조언을 해줄 문학적 동료나 스승·선배도 없다고 했다. 아니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제 대화 상대인 주변 친구들이 납득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해 주는 게 저한테는 더 중요해요. 제가 쓴 소설을 읽는 이들도 역시 보통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문단은 물론 일체의 ‘문학적인 것’으로부터 냉정한 거리를 둔 채 홀로 글을 쓰는 그이지만, 간접적인 배움과 대화조차 마다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읽은 것 중 마음에 드는 소설을 묻자 크누트 함순의 <땅의 혜택>과 제임스 설터의 <올 댓 이즈>라는 답이 돌아왔다. 헤밍웨이의 소설은 영어 원문과 번역을 대조해 가면서까지 탐독했노라고 했다. 그럼 한국 소설은?
“김훈 소설은 거의 다 읽었어요. <남한산성>이 특히 좋았습니다. 이태준의 단편 ‘농군’은 보편적 감정과 강렬한 주제의식, 구체적이고 정확한 언어 구사라는 점에서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글쓰기의 면모를 담은 작품입니다. 한겨레문학상 당선작 중에서는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좋아해서 그분의 다른 소설들도 찾아 읽었어요. 저는 어떤 한 작가에게 꽂히면 그의 모든 작품은 물론 인터뷰까지 찾아 읽는 스타일입니다.”
<누운 배>는 주인공 ‘나’가 일하는 중국 내 한국 조선소에서 배가 쓰러지는 사고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쓰러진 배의 뒷수습을 놓고 회사와 보험사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회사 내부의 구조적 문제점들이 드러나며, 바깥으로부터 금융위기가 닥치자 효율 제고를 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힘겨루기와 음모가 난무하고, 신뢰하는 상사가 회사를 떠나면서 회사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자 주인공은 사직서를 내고 글을 쓰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노동자 시점도 아니고 최고위 경영진에만 초점을 맞추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중간 관리자의 시점을 택한 1980~90년대 유순하의 소설들과 통하는 면모도 보인다.
“회사라는 게 무엇인지 우리가 정말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소설에 담고자 했습니다. 회사란 가정의 확장이자 국가의 축소판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회사가 지금 어떤 상태인가 하는 걸 묻고 싶었던 거죠. 가령 저는 젝스키스와 에이치오티의 노래를 부르면서 자란 세대인데, 회사원이 되어 노래방에 가면 ‘땡벌’을 불러야 하는 구조가 있는 거죠. 거기에 적응해서 살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게 주인공과 저의 판단입니다. 회사와 한국 사회 전체에 철학이 부재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문단의 흐름에 거리를 두는 대신 현실에 핍진해 들어가는 쪽을 택한 이 신예 작가는 “이제 글만 써서 살려 한다”며 “생활에 대한 기대는 정말 안 한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남 눈치 보지 않고 혼자 글 쓰고 남는 시간에 좋은 책을 읽는 생활이 저를 기다리고 있겠죠. 되게 재미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분야든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비슷하지 않을까요? 똑바로 살기란 그처럼 힘든 것 같아요.”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심사평: “그간 한국소설이 다루지 못한 영역 성공적으로 다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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