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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제국이 그어놓는 중동 국경선

등록 2016-04-14 20:32수정 2016-04-14 20:32

21세기 중동 바르게 읽기
홍미정 지음/서경문화사·2만4000원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 1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잘 알려진 영국 첩보장교 토머스 로렌스는 정보 메모를 썼다. “아랍 반란은 우리의 당면 목표와 부합하고 이슬람 블록의 붕괴와 오스만 제국의 패배와 붕괴로 이끌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익이다. 오스만 제국을 여러 아랍국가들로 분할하는 것은 우리에게 해롭지 않다. 적당히 다루어진다면 아랍인들은 정치적인 분열 상태, 서로 분쟁하는 매우 작은 모자이크 공국들의 집합체로 남을 것이다.”

앞서 영국은 적국인 오스만 제국의 영토 안에서 아랍 민족의 반란을 부추기기 위해, 아랍 세계 실력자인 하심 가문의 후세인에게 전후 칼리파 국가 영토를 약속한 참이었다. 영국의 약속을 믿은 하심가는 로렌스가 이끄는 오스만 제국 해체 작전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연합국의 승리로 전쟁이 끝난 뒤, 칼리파 국가 영역은 이스라엘·요르단·이라크·레바논·시리아·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예멘 등 12개 나라로 잘게 쪼개졌다. 지금까지 지속되는 중동 분쟁의 기본 구조가 이때 만들어졌다.

<21세기 중동 바르게 읽기>는 20세기 초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랍의 종족과 종교적 다양성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국경선을 획정한 배경, 그로 인한 분쟁과 아랍인의 고통을 냉철한 시각으로 분석한다. 중동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가치와 막대한 매장량의 에너지 자원은 되레 중동의 위기와 비극을 지속하는 연료가 됐다. 지은이는 “20세기 영국의 전례를 표본으로 삼는 듯 보이는 오늘날 미국의 중동 정책을 고려하지 않고 현대 중동지역을 이해할 수 없고, 서구 제국주의를 배제하고 현대 중동지역의 역사를 쓸 수 없다”고 말한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에서 진행되는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도 유럽 시장을 겨냥한 천연가스의 생산-운송-소비 네트워크와 관련이 있다. 21세기 들어서도 미국의 전략가들은 중동의 국경을 ‘재설정’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상한다. 그 지도들의 모양새에 따라 중동의 미래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애처롭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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