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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연대와 예술이 저항을 보증한다

등록 2016-03-31 21:05수정 2016-03-31 21:23

저항의 미학 1·2·3
페터 바이스 지음, 탁선미·남덕현·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1·2권 각 1만8000원, 3권 1만5000원

방대함과 세밀함으로 <오디세이아> <율리시스> <신곡>에 견주는 유럽 리얼리즘 소설의 절정 <저항의 미학>이 ‘완역’됐다. 독일 출신의 스웨덴 극작가로 브레멘문학상과 뷔히너상을 받은 거장 페터 바이스(1916~82)의 마지막 소설이다. 집필 기간 10년, 원고지 6700장(번역 원고 기준), 실존인물 700여명이 나오는 장대함에 영어권에도 1권만 번역돼 있다.

페터 바이스. 사진 문학과지성사 제공
페터 바이스. 사진 문학과지성사 제공

1937~45년 유럽에 몰아친 파시즘과 그에 저항하는 사회주의 세력을 고밀도로 기록했다. 서유럽 예술사와 좌파 역사에 등장한 거의 모든 인물과 사건을 만날 수 있을 정도. 인물 이름이 다 있는데 주인공(‘나’)한테만 이름이 붙지 않았다. 1인칭 시점의 이 소설은 문장 행갈이가 없고 중문과 복문이 북새통인 만연체다. 바이스는 원래 간결체의 정수를 보여주던 작가다. <저항의 미학>에선 독자가 주인공이 되어 구분도 정돈도 힘든 인간의 시간을 생으로 지나본다.

‘나’는 스페인내전에 참전하려고 고향 독일을 떠나는 20살 노동자이자 저항운동가다. ‘나’는 그 전날 ‘친구들’과 ‘박물관’에 간다. 바이스의 주장은 초반 이 설정에서부터 깃든다. 연대와 예술이 저항의 보증이라는. 2권은 당대 예술비평 삼아 읽어도 좋다. 바이스는 예술작품을 매개로 저항의 역사를 평론한다. 헬레니즘 예술부터 앙코르와트, 단테, 카프카, 피카소, 가우디까지. “저항하는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상상력도 살아 있”다는, 저항과 예술의 동질성이란 바이스의 의견을 하버마스도 거들었다. ‘근대’가 완성되려면 삶과 예술,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분이 사라져야 하는데 그 가능성의 본을 <저항의 미학>에서 찾을 수 있다며.

바이스는 정통 좌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책 제목이 ‘투쟁’의 미학이 아니라 ‘저항’의 미학이다. 정통파가 보기에 한풀 꺾인 듯한 이 신좌파적 입장은 68학생운동이 낳은 개혁적 사회주의에 가깝고, 운동가보다 지식인과 예술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래서 “아우슈비츠 이후의 서정시는 야만”이라던 브레히트와는 예술인식이 다르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현존재를 넘어설 수 있는 초월적 존재라는 점에 바이스는 더 기댔다.

과격한 변혁 운동을 반대하는 것과 온건한 변혁 운동을 지지하는 게 결국 다른 소리가 아니듯, 현실을 외면하는 예술을 배척하는 것과 현실을 담고 변화를 충동하는 예술을 옹호하는 것도 결국 같은 말이다. 모든 좌파에게, 또 모든 이에게 현실과 예술의 연결선을 찾아줄 책이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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