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십자군 이야기 2- 돌아온 악몽
김태권 지음. 길찾기 펴냄. 나는 만화, 소년 잡지와 스포츠 주간지, 그리고 신문을 통해 책 읽는 습관을 들였다. 1970년대 중반 창간한 <소년생활>과 형들이 보던 묵은 <소년중앙> <소년세계> <새소년>으로 읽기에 재미를 붙였고, 70년대 후반 가판대에서 사 오는 심부름을 도맡은 <주간스포츠>와 <스포츠동아>로는 읽기의 또 다른 재미를 맛보았다. 중학교 1학년에서 군 입대 전까지 신문을 꾸준히 읽었다. 내 독서 능력의 기초는 무엇보다 만화가 다져 주었다. 그렇다고 만화를 많이 보진 않았다. 만화가게에 드나든 기억이 한두 번에 그칠 정도로 대본소용 만화는 거의 안 봤다. 유년의 나를 사로잡은 만화 세 편은 모두 ‘클로버문고’(어문각) 소속이었다. 배달 최영의의 일대기를 그린 고우영 선생의 <대야망>,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유럽의 풍물과 사회상을 전달한 이원복 교수의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만화로 엮은 ‘전설의 고향’인 김삼 선생의 <사랑방 이야기>가 그것이다. 생명력이 있다는 점에서 이 세 편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들었다. 예전 판 그대로 또는 개작의 형태로 세대를 초월해 읽힌다. 작가는 별개의 작품이라고 주장하지만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모태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내년 고등학생이 되는 조카 녀석에게는 진작에 세 편을 선물했다. 그런데 내 딸과 아들에게는 굳이 권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다. 이원복 교수의 ‘편향된’ 시각이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그리 유익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같은 지식만화 종류로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를 추천하겠다. 이 만화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1권을 다 읽기도 전에 그것이 허명이 아님을 확인한다. 2권은 “공정한 시각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서구 측의 기록과 해석은 물론, ‘중동’과 동로마제국의 기록도 힘닿는 데까지 구해 읽었다.” 십자군 전쟁을 보는 ‘중동’과 동로마제국의 시각은 지은이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낯선 것인데, 개전 초기 십자군이 전과를 올린 사연만 해도 그렇다. 십자군이 유럽에 전한 승전보는 이슬람 세력의 ‘적전 분열’ 탓이 크다. 예컨대 1098년 6월28일의 안티오키아 성문 앞 전투에서 투르크 군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 것은 무슬림 지도자들이 패배를 모르는 이슬람의 영웅 카르부카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카르부카의 자만심을 눈꼴사나워 하던 무슬림들이 결정적인 순간 그를 따돌렸다는 것이다.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1차 십자군의 원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슬림 영주들끼리는 더 심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삼국지> 독서는 <고우영 만화 삼국지>로 충분하듯, 십자군 전쟁을 앞뒤로 하는 중세 유럽과 이슬람권의 역사 이해는 <십자군 이야기>만으로도 부족함이 전혀 없다. 그런데 <십자군 이야기>는 미완의 대작이다. 책 날개의 출간 예고는 5권까지 부제목이 정해져 있고, 그 이후로도 계속 발간될 예정임을 알려 준다. 적어도 10권쯤 나올 것 같은데, 관건은 언제 완간을 보느냐에 있다. <십자군 이야기> 2권은 1년 8개월만에 나왔다. 간행 간격이 이러면 완간은 부지하세월이다. 지은이조차 늦은 출간을 자책하고 있지만(1권 132쪽), 아무리 늦어도 1년에 한 권은 펴내야 하지 않을까. 2권은 200쪽을 다시 그리는 통에 출간이 지체된 모양이다. 그나저나 만화를 얕잡아 보는 구태는 어쩔 것인가. 구입 희망도서 신청을 받은 집 근처 도서관에서 만화는 참고서, 수험서, 문제집, 무협지 따위와 함께 해당사항이 아니란다.
김태권 지음. 길찾기 펴냄. 나는 만화, 소년 잡지와 스포츠 주간지, 그리고 신문을 통해 책 읽는 습관을 들였다. 1970년대 중반 창간한 <소년생활>과 형들이 보던 묵은 <소년중앙> <소년세계> <새소년>으로 읽기에 재미를 붙였고, 70년대 후반 가판대에서 사 오는 심부름을 도맡은 <주간스포츠>와 <스포츠동아>로는 읽기의 또 다른 재미를 맛보았다. 중학교 1학년에서 군 입대 전까지 신문을 꾸준히 읽었다. 내 독서 능력의 기초는 무엇보다 만화가 다져 주었다. 그렇다고 만화를 많이 보진 않았다. 만화가게에 드나든 기억이 한두 번에 그칠 정도로 대본소용 만화는 거의 안 봤다. 유년의 나를 사로잡은 만화 세 편은 모두 ‘클로버문고’(어문각) 소속이었다. 배달 최영의의 일대기를 그린 고우영 선생의 <대야망>,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유럽의 풍물과 사회상을 전달한 이원복 교수의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만화로 엮은 ‘전설의 고향’인 김삼 선생의 <사랑방 이야기>가 그것이다. 생명력이 있다는 점에서 이 세 편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들었다. 예전 판 그대로 또는 개작의 형태로 세대를 초월해 읽힌다. 작가는 별개의 작품이라고 주장하지만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모태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내년 고등학생이 되는 조카 녀석에게는 진작에 세 편을 선물했다. 그런데 내 딸과 아들에게는 굳이 권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다. 이원복 교수의 ‘편향된’ 시각이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그리 유익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같은 지식만화 종류로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를 추천하겠다. 이 만화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1권을 다 읽기도 전에 그것이 허명이 아님을 확인한다. 2권은 “공정한 시각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서구 측의 기록과 해석은 물론, ‘중동’과 동로마제국의 기록도 힘닿는 데까지 구해 읽었다.” 십자군 전쟁을 보는 ‘중동’과 동로마제국의 시각은 지은이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낯선 것인데, 개전 초기 십자군이 전과를 올린 사연만 해도 그렇다. 십자군이 유럽에 전한 승전보는 이슬람 세력의 ‘적전 분열’ 탓이 크다. 예컨대 1098년 6월28일의 안티오키아 성문 앞 전투에서 투르크 군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 것은 무슬림 지도자들이 패배를 모르는 이슬람의 영웅 카르부카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카르부카의 자만심을 눈꼴사나워 하던 무슬림들이 결정적인 순간 그를 따돌렸다는 것이다.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1차 십자군의 원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슬림 영주들끼리는 더 심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삼국지> 독서는 <고우영 만화 삼국지>로 충분하듯, 십자군 전쟁을 앞뒤로 하는 중세 유럽과 이슬람권의 역사 이해는 <십자군 이야기>만으로도 부족함이 전혀 없다. 그런데 <십자군 이야기>는 미완의 대작이다. 책 날개의 출간 예고는 5권까지 부제목이 정해져 있고, 그 이후로도 계속 발간될 예정임을 알려 준다. 적어도 10권쯤 나올 것 같은데, 관건은 언제 완간을 보느냐에 있다. <십자군 이야기> 2권은 1년 8개월만에 나왔다. 간행 간격이 이러면 완간은 부지하세월이다. 지은이조차 늦은 출간을 자책하고 있지만(1권 132쪽), 아무리 늦어도 1년에 한 권은 펴내야 하지 않을까. 2권은 200쪽을 다시 그리는 통에 출간이 지체된 모양이다. 그나저나 만화를 얕잡아 보는 구태는 어쩔 것인가. 구입 희망도서 신청을 받은 집 근처 도서관에서 만화는 참고서, 수험서, 문제집, 무협지 따위와 함께 해당사항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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