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남자라면 다 아는 이야기다. 뭔가 불안하고 두려울 때, 그리고 강한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우리’는 자위를 한다. 사정 뒤에는 걷잡을 수 없이 허망해진다. 아무리 화끈한 포르노라도 일단 사정을 하고나면 사정없이 스위치를 꺼버린다. 반바지보다는 미니스커트에 더 끌린다. 드러난 다리 말고 그 안쪽이 더 신경쓰이는데, 그 주인공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큰 문제없다. 얼굴을 지워버리고 그 안쪽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찰나의 환상이 끝나면, 짐짓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마초의 얼굴을 넥타이에 숨기고 살아간다.

세상의 절반이 알고 나머지 절반은 반신반의하는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철학자가 있다. 윤리학·생명학을 통해 현대문명을 비판해온 모리오카 마사히로 교수다. <무통문명>이란 책으로 국내에도 소개됐던 모리오카 교수가 이번엔 남자의 성을 파고들었다. 자신의 솔직한 ‘성 경험담’을 녹여서 남성의 ‘불감증’을 다뤘다. 어쩐지 ‘일본적’인 느낌을 강하게 발산하는, 야하고 흥미롭고 영감이 풍부한 책이다.

200여쪽에 담긴 이야기의 큰 줄기는 몇가지 가설이다. 절대 다수의 남자는 성 불감증을 갖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몸을 ‘부정’한다. 그래서 여성을 동경하고 경외한다. 특히 소녀의 몸으로 탈출하고 싶어한다….

이런 가설은 미니스커트, 포르노, 자위, 교복 페티쉬, 롤리타콤플렉스 등을 통해 전개된다. 그 이면에는 남성이 품고 있는 근본적인 콤플렉스가 있다는 게 모리오카 교수의 생각이다.

킨제이의 치명적 오류?

예컨대 남자는 짧은 바지보다 미니스커트에 끌리고, 미니스커트보다는 그 안쪽의 팬티에 끌린다. 상상 속의 팬티는 거의 언제나 하얀색이다. “그 안쪽에 팬티가 감춘 대단한 그 무엇, 이 세계를 초월할 것 같은 무엇이 슬쩍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때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실제의 여자, 즉 의지도 감정도 있는 진짜 여자는 남자를 방해하는 존재다.”

이 시선의 주인공은 ‘느끼지 못하는 남자’ 즉 성 불감증의 남자다. 술자리에서 잠자리 경험을 음탕하게 늘어놓는 순간조차도 “어떤 여자와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만 할뿐, “나는 어떤 느낌을 느꼈다”고 결코 말하는 법이 없는 그런 남자들이다.

그 배경에는 ‘사정’에 대한 신화가 있다. 1948년 성 과학자 킨제이는 <남성의 성행동>이라는 저서에서 사정을 남성 오르가즘의 증거로 채택했다. 이후 남성 불감증은 성 과학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오직 ‘사정’만 남았다. 사정은 남자들에게 있어 매우 기분좋은 최고의 체험이라는 신화가 형성됐다. 그러나 모리오카 교수는 묻는다. “사정 뒤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거나 머리 속이 하얗게 되거나 쾌감에 마비되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적이 있는가?”

여성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늘 그런 느낌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의 경우 절대 다수가 이런 느낌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허탈감과 공허감과 패배감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일생에 걸쳐 수도없이 반복”하면서 남성은 불감증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느낌과 마주 대면하기 싫어서 남자들은 오직 사정 직전까지의 행위에만 집중한다. 포르노 속 남자들은 사정하자마자 순식간에 화면에서 사라진다.

남성불감증을 외면하는 남성은 “여자를 느끼게 했는지 못했는지”를 중심으로 자신을 긍정하거나 부정한다. 그래서 남성의 문제는 발기부전이거나 조루증으로 곧잘 치환된다. 남성불감증은 이제 남자들의 의식 내부에서도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남자야말로 치료 대상이다.”

그 깊은 곳에는 “여자가 느끼는 것과 같은 쾌감을 절대 맛볼 수 없다는 패배감”이 자리잡고 있다. ‘느끼지 못하는 남자’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여자를 증오하기 시작한다. 포르노를 통해 “증오하는 여성을 마음대로 지배해 여자의 쾌락을 자유롭게 조종하는 듯한 내용을 보면서, 여성보다 우위에 선 것 같은 착각을 즐긴다.” 이는 ‘느끼는 여자’에 대한 복수이자,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환시키며 괴롭히는 자해다.

교복페티쉬와 롤리타콤플렉스는 남성이 선택한 환상이다. 교복 페티쉬는 여학생이 아니라 교복으로 상징되는 ‘학교’에 대한 욕망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학교는 학생들을 ‘세뇌’하는 곳이다. 모리오카 교수는 교복 페티쉬를 “소녀들을 세뇌하는 것에 대해 성적으로 욕정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남성들이 “내 몸뚱이를 버리고 소녀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그 귀여운 몸을 안쪽에서부터 자유자재로 조종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 밑바탕에는 다시 “울퉁불퉁하고 더러운 남자의 몸으로부터 빠져나오려는 탈출의 소망”이 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사춘기의 갈림길에서 여성의 몸을 향해 방향을 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댄다. 동시에 “이제 배란이 가능하게 된 소녀의 몸 속에 누구보다 빨리 정액을 흘려넣어 자신의 정자와 소녀의 난자로 임신시키고자 하는 욕망도 숨어 있다.”

페미니즘·정신분석학 적극 수용

이 책에 담긴 몇가지 가설은 논쟁적이다. 지은이는 페미니즘의 성 담론을 적극 수용하고 일부 정신분석학의 방법론을 차용해 남성의 성을 다루고 있다. 지은이가 보기에 ‘느끼지 못하는 남자’라는 가설은 남성중심 사회가 대단히 거북하게 여기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마초’는 “내 마음 속 공허를 채우기 위해 더욱 ‘남자다움’에 손을 뻗고, 그것에 성공하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긍정하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성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불감증과 자기부정의 심리를 숨기면서 여성들에 대한 우월의식을 과장하는 남성들이 태어난다. 이들은 절대로 자신의 열등의식을 사회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지은이는 “남성 불감증은 섹스에 대한 생각과 행동은 물론, 남성과 여성이 교감하는 방식과 일반적 대인관계에도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고 말한다. 그 탈출구는 불감증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복수나 자기부정이 아니라 상처입기 쉬운 존재에 대한 다정함”의 가능성이 열린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