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소년 노래엔 영혼이 없어” 노래를 찾는 사람들 대표 한동헌
노찾사 20주년 공연은 우리사회 음악정신 바꾸려는 암중모색의 결실
단순한 회고나 향수가 아닌 ‘지금, 여기’ 삶의 자극제 되는 음악에 시대정신 담고파
권은정의 인터뷰 무제한/노래를 찾는 사람들 대표 한동헌
그는 딱 범생이 타입이다. 도서관에서 미리 자리를 잡아놓고 앉아있는 듯 인터뷰어를 맞이한다. 반듯하게 펼쳐둔 플래너 옆에는 컴퓨터에서 출력한 수십 페이지 짜리 자료묶음이 놓여 있다. 참고서적도 한두권, 또 몇 개의 CD도 미리 챙겨두었다. 준비가 만만찮다. 난 아직 녹음기 건전지를 찾아 가방 속을 헤집느라 바쁘기만 한데 말이다. 자, 그럼 시작할까요?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대표인 한동헌씨가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말했다. 나는 얼결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저, 이번 공연은 어땠나요? 성공적이었겠지요? 며칠 전에 있었던 노찾사 20주년 공연에 대해 한 대표는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은 어조로 말한다. 완벽한 공연은 아니었지만 많이 찾아와주셨고 큰 사고 없이 준비한 것을 보여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다시 한번 노찾사가 가진 소중한 유산의 무게를 확인할 수 있었다, 등등…. 비로소 희망을 가지게 되었노라는 대답을 더 얹는다. 이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은 면했다는 말이다. 한 대표가 노찾사 공연을 위한 암중모색을 한 지는 족히 4년이 넘는다. 끙끙거리며 노찾사의 ‘오늘’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를 주변에서는 매우 생뚱맞아했다. 뭐하러 노찾사를 다시 뒤져? 역사 속에서 그 상태 그대로 살아있게 하는 게 낫지 않나? 모두 회의적인 시선을 던졌다.
기념공연 아니라 ’컴백공연’
“노찾사야말로 그동안 한국 음악문화에서 느꼈던 문제점에 대한 대안 내지는 해법을 제시해주는 그 무엇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죠. 결국 우리사회의 음악정신을 흔들고 바꾸는 일을 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과 더불어 그 일을 함께 할 사람을 모으는 기회가 될 거란 기대도 함께요.”
그는 노래가 우리에게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늘 고민했다. 지나간 노찾사의 궤도를 미래로 돌려놓음으로써 그 해법에 다가서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그저 기념공연이 아니라 컴백 공연이라고 그는 특히 강조했다. “단지 추억을 되씹는 공연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연에 새로운 노래나 얼굴이 있어야 한다고 오래 고민했는데, 그렇게 할만한 이도 별로 없고 그렇게 하기에는 모두들 너무 멀리 가버린 상황이었지요. 앞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음악, 그런 노래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소중한 것은 지금과 내일이지요. 그리고 그 안에서의 방향성.” 그는 노찾사가 요즘 뜨는 ‘7080 음악’과 오버랩되는 것에 대해 조심스레 고개를 젓는다. 왜?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는 ‘추억은 음악 속에 있다’고 했다. 노찾사의 노래를 들으며 푸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안 된다는 말인가? 더구나 이번 공연 객석을 꽉 메운 이들도 결국 대부분 20년 전 대(혹은 고등)학생이었던 세대였다. 무슨 차이가 있나? “긴 세월이 지난 뒤에 듣는 음악에 어찌 노스탤지어가 없겠습니까? 다만 전 그 향수가 젊었던 시절을 회고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과 앞으로의 삶에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삶의 동력이기를 바란다는 말이지요. 동시대성을 강조하고 싶어요. ‘지금, 여기’로 말이죠.” 만나기 전 인터넷에서 그의 사진을 보면서 ‘전혀 노래 안하게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노찾사 멤버 중에는 음악하게 보이는 이들이 별로 없다. 아티스트라기보다는 일반시민 직장인 샐러리맨들이 실제로 그들이다. 아마추어 정신으로 노래 부르는 맑은 표정을 가진 이들이다. 한대표 역시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음악과 만났다. 노래 동아리 ‘메아리’멤버로 지내며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불렀다. 그는 음악 속에서 터지는 자신의 빛을 발견했다. 안타깝게도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다. 전공인 경제학을 계속 공부하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것. 그래서 1980년 뜨거웠던 시절 그는 이 곳에 없었다. 삶에서 나온 노래 생명력 길어
“텍사스 오스틴에서 석사공부를 시작했는데, 거기 참 좋았어요.” 아, 경제학계에서는 알아주는 덴가 보다. 학풍이 쎈 모양이지요?
“아니, 그거보다는 음악에 관심가지고 활동하기 참 좋은 데였다 그 말이지요. 지역음악사업의 중심인데다 라이브 클럽도 많아서 유명한 밴드들이 꼭 들러 가는 데였어요.” 그는 그때 왜 그 분위기에 충실하지 못했는지 후회막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랬더라면 그는 더 많은 시간을 음악을 위해 살고, 더 많은 열정을 음악에 쏟아 붓고 인생을 더욱 더 풍요롭게 살수 있었을 텐데,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다고, 음악을 통해 자신을 본 것 같은데 그것에 올인할 용기나 지혜가 없었노라며, 그래서 인생의 바퀴를 헛돌린 것이라고, 내가 듣기엔 가슴 아픈 어조로, 청춘의 고백을 했다.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을 추구하고 보헤미안적인 기질을 소유한 자신을 책속에 가두는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에서 10년을 살다가 돌아온 지 또 10년이 지났다. 부재로 인한 죄책감이나 미안함(그런 거 가져봐야 소용도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때문에 그는 자기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로 노찾사를 선택했고 덤벼들었다. 그런 그를 가리켜 한 후배는 지금 ‘가장 래디컬한’ 형이라고 한다.
‘보아는 기획상품’이라고 작금의 대중음악을 진단한 한 대표는 노찾사가 다시 어떻게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음악을 가리는 기준은 대중성이 아니라 영혼, 스피릿이라고 본다.
“요즘 청소년들의 노래에는 영혼이 없어요. 전 아이들도 그걸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아이들이 그런 음악에 정말 감동한다면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또 영혼이 없는 음악이란 곧 지금 우리시대가 그렇다는 말과 같은 거지요.”
그는 노래는 시대의 반증,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80년대 노찾사 음악이 그 시대 혹은 그 이전 시대로부터 내려온 정신을 담았던 것처럼 우리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음악을 찾아내는 게 그의 목표이자 꿈이다.
“노래란 인간의 혼과 가슴에서 나오는 것, 삶의 현실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것을 제대로 포착하는 노래야말로 긴 생명력을 갖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름다운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이지요. 노찾사 노래는 그 시대정신을 담긴 했지만 운동성에 함몰되진 않았어요. 심미성을 지키고 정형화하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적인 파괴력을 지닐 수 있었지요.”
그는 노찾사의 다음 단계가 지식인 집단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최근에 언급한 적이 있다. 노찾사가 일반인들로부터 거리를 두겠다는 말인가?
“노찾사가 음악, 노래가 당대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상호작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집단으로서 계속 활동하기를 저는 바랍니다. 대중음악 쪽에서도 노래 부를 사람이나, 음악을 만드는 사람만큼 음악에 대한 담론을 만들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역할 한다면 음악의 개념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백그라운드를 갖춘 사람들이 모인 집단, 즉 전문가란 의미에서 지식인이라고 말한 것일 뿐입니다.”
그는 음반유통사업(알레스 뮤직)을 하고 있다. 얼핏 보니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라는 음반집도 눈에 띈다. 한 낭만주의자의 고집이 거기서 보인다. 이쯤이면 그는 행복해야 할 거다.
“살면서 뭘 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얻었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요. 군말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성과를 못 내고 있으니 불행하기도 합니다. 한국문화를 멋있고 즐겁게 하고 싶은데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한국을 세계적 음악생산지로
그의 아내(서울대 법대의 양현아 교수)는 남편에게 늘 이렇게 핀잔을 준단다. 욕심은 많지만 게으르고 취향은 높은데 노력은 별로다. 아내의 분석이니 우리로서는 존중해주는 게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그 핀잔을 넘어 그는 자신의 야심을 키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을 세계적 수준의 음악생산지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사람들보다 음악을 더 잘 만들어요. 지금 시장규모나 음악을 만들어내는 조건 등 모든 면에서 비교도 안 되지만 분명 힘이 있거든요. 몇 가지 인프라를 갖추면 10-20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 안에 자기가 서 있겠다는 말이다. 그는 분명한 골격을 세워둔 듯 짐짓 자신만만해 보이기도 하다.
그는 노래가 우리에게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늘 고민했다. 지나간 노찾사의 궤도를 미래로 돌려놓음으로써 그 해법에 다가서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그저 기념공연이 아니라 컴백 공연이라고 그는 특히 강조했다. “단지 추억을 되씹는 공연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연에 새로운 노래나 얼굴이 있어야 한다고 오래 고민했는데, 그렇게 할만한 이도 별로 없고 그렇게 하기에는 모두들 너무 멀리 가버린 상황이었지요. 앞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음악, 그런 노래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소중한 것은 지금과 내일이지요. 그리고 그 안에서의 방향성.” 그는 노찾사가 요즘 뜨는 ‘7080 음악’과 오버랩되는 것에 대해 조심스레 고개를 젓는다. 왜?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는 ‘추억은 음악 속에 있다’고 했다. 노찾사의 노래를 들으며 푸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안 된다는 말인가? 더구나 이번 공연 객석을 꽉 메운 이들도 결국 대부분 20년 전 대(혹은 고등)학생이었던 세대였다. 무슨 차이가 있나? “긴 세월이 지난 뒤에 듣는 음악에 어찌 노스탤지어가 없겠습니까? 다만 전 그 향수가 젊었던 시절을 회고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과 앞으로의 삶에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삶의 동력이기를 바란다는 말이지요. 동시대성을 강조하고 싶어요. ‘지금, 여기’로 말이죠.” 만나기 전 인터넷에서 그의 사진을 보면서 ‘전혀 노래 안하게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노찾사 멤버 중에는 음악하게 보이는 이들이 별로 없다. 아티스트라기보다는 일반시민 직장인 샐러리맨들이 실제로 그들이다. 아마추어 정신으로 노래 부르는 맑은 표정을 가진 이들이다. 한대표 역시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음악과 만났다. 노래 동아리 ‘메아리’멤버로 지내며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불렀다. 그는 음악 속에서 터지는 자신의 빛을 발견했다. 안타깝게도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다. 전공인 경제학을 계속 공부하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것. 그래서 1980년 뜨거웠던 시절 그는 이 곳에 없었다. 삶에서 나온 노래 생명력 길어
“요즘 청소년 노래엔 영혼이 없어” 노래를 찾는 사람들 대표 한동헌
권은정/전문 인터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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