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알몸이 만화·영화·포르노 모든 장르 통틀어 이만큼 많이 등장한 적이 있던가. 이 수많은 여자 알몸을 보여주고도 이는 ‘건전한’ 목적성을 지니고 있었으니…, 바로 ‘목욕 권장’이다. “만화를 보고 나면 목욕이 하고 싶어진다고 하더라.” 마일로(MILO·26) 작가의 말이다. 지난해 4월 인터넷 연재가 종료된 <여탕보고서>(예담 펴냄)가 ‘세신’하는 새해를 맞아 책으로 출간되었다.
대학 패션디자인과 졸업반이던 마일로는 2014년 7월 네이버의 아마추어 만화가 리그인 ‘베스트도전만화’에 <여탕보고서> 연재를 시작했다. 첫 회 ‘목요커’라는 말을 등장시키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만화는 11월 네이버의 정식 웹툰 코너로 옮겨갔다. 집이 부산 동래온천 주변이던 마일로는 나이답지 않게 목욕탕을 자주 갔다. (수십년 전부터 나온 피부에 안 좋다는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증언들에도 불구하고) 나이답지 않게 때를 밀었고, (한국의 여가문화를 바꾼 찜질방 트렌드를 무시하고) 탕만 있는 목욕탕을 주로 갔다. 이런 ‘올곧은’ 목욕 생활이 그대로 만화로 녹아들어갔다.
샴푸, 린스, 트리트먼트, 헤어팩, 클렌징폼, 페이스스크럽, 비누, 샤워볼을 비롯하여 속옷과 수건, 각질 미는 돌 등을 바리바리 싸는 여자들의 목욕탕 짐, ‘5살 이상(남자 어린이)은 남탕으로 가세요’라는 카운터에 붙은 문구 앞에서 벌이는 목욕탕 주인과 엄마의 신경전, 꼭두새벽 목욕탕에 가야 하는 할머니와 아침 일찍 가는 어머니의 스타일 차이 등이 정겹게 그려진다.
네티즌들은 불같은 ‘공감’으로 화답했다. 여자의 목욕탕 짐을 그린 화에서는 남자들이 “정말 저렇게 짐을 많이 가져가느냐” “여자들은 왜 저러느냐”며 비아냥대고, 여자들은 “꼭 필요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되받아치는 남녀 간 댓글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린이도 보고 있음을 인증했다. 다 큰 남자아이가 여탕에 들어와 놀라는 모습을 다룬 편이 나간 뒤, 8살이라고 자신을 밝힌 한 남자 초등학생이 “여탕에 간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나는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강제로 끌려가고 말았다. 이 편을 본 나는 화가 났으니 해명 부탁한다”는 이메일을 작가에게 보내오기도 했다.
부산을 비롯한 남부권에 등장한 등 밀기 기계와 ‘혼목’(혼자 하는 목욕)에서 등 밀기 내공을 보여준 할머니(샤워기에 때타월을 씌워서 등을 민다) 등 공유하기 쑥스러워서 묻혀 있던 정보들이 발굴되면서 새로운 ‘정보 만화’의 세계를 개척하기도 했다.
작가는 아직 세신사의 손길을 느껴보지 못했다. 만화 마지막회는 세신을 받아보고 그리려 했지만 피치 못할 몸 사정으로 목욕탕을 가지 못했단다. 지금은 그 세계로 입문했을까. “아직 받아보지 못했어요.” 강화도로 이사한 작가는 목욕탕이 멀어서 목욕도 자주 못 가는 처지라고 한다. 올해는 목욕할 수 있는 곳으로 독립해서 나가는 것이 첫번째 목표고 ‘스토리툰’(이야기 위주의 만화)을 시작하는 것이 두번째 목표다. ‘실물’로 존재하는 지난해의 묵은 때를 벗기고 새해를 힘차게 시작하시길. 만약 목욕 가기 싫다면 <여탕보고서>가 즉효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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