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라모나는 아빠를 사랑해
비벌리 클리어리 글, 트레이시 도크레이 그림, 김난령 옮김
열린어린이 펴냄(2009) 나이가 들어가면 하나둘 아쉬운 일이 생겨난다. 그중 하나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지 않는 거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온 식구가 한방에 모여 자던 어린 시절 캐럴이 울려 퍼지면 가슴이 뛰었다. 한데 이상하게 우리 집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아무 날도 아니었다. 파티나 선물 타령을 했다가는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게 뻔해 보였다. 차가운 건넌방에 앉아 색종이를 오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사이다 한 병을 사서 동생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내 생애 첫 파티였다. 라모나도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하는데 벌써 부모님께 사달라고 할 선물 목록을 적으며 좋아한다. 게다가 오늘은 아버지 월급날이고 어쩌면 외식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아 그날 아버지가 실직을 한다. 방금 전까지 크리스마스 선물 목록을 적고 있었는데 그 일이 아주 오래전처럼 느껴졌다. 뉴베리상 수상작인 <라모나는 아빠를 사랑해>는 이렇게 시작한다. 작가인 비벌리 클리어리를 처음 만난 건 <헨쇼 선생님께>라는 책에서였다. 그날 이후 나는 비벌리 클리어리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는다. 그녀만큼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헤아릴 줄 아는 작가를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철이 없고 엉뚱하지만 그 모습이 전부가 아니며, 부모를 미워하지만 그조차 사랑받고 싶다는 뜻이라는 걸 작가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가. 유쾌하고 명랑한 라모나를 만났어도 지금 이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느껴져 때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러고 나면 꼭 내가 어릴 때 어땠는지 그 생각이 난다. <빨간 머리 앤>의 앤이나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가 1970년대 미국의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다면 아마 라모나 같지 않았을까. 상상력이 풍부하고 엉뚱하고 특별하다. 그래도 알 건 다 안다. 아버지가 실직한 후 어머니는 전일제로 일을 시작해 늘 피곤하다. 아버지는 작은 일에도 짜증이 늘고 담배도 많이 피운다. 라모나는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한다.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해 돈을 많이 벌기로 마음먹지만 연기 연습에 몰입한 나머지 실수만 연발한다. 또 돈도 절약하고 아버지의 목숨도 구하려고 금연운동을 펼친다. 하지만 아버지는 좀처럼 흡연 습관을 고치지 못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뜻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야단치는 일 말고는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인다. 아버지랑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 불편한 점도 많고 툭하면 듣는 잔소리도 지겹다. 하지만 라모나는 안다. 가족끼리 다투고 서로 실망할 때도 많지만 라모나의 가족은 행복하다는 걸. 무엇보다 라모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아빠를 사랑한다.
어른이 되면 절대 아버지처럼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김현승의 시구절처럼 가끔은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쯤 들어 있다는 걸 안다. 늘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지만 아버지도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미워할 수 없는 우리들의 아버지에게 라모나가 그랬듯 사랑한다 말해보자. 초등 2~4학년.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비벌리 클리어리 글, 트레이시 도크레이 그림, 김난령 옮김
열린어린이 펴냄(2009) 나이가 들어가면 하나둘 아쉬운 일이 생겨난다. 그중 하나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지 않는 거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온 식구가 한방에 모여 자던 어린 시절 캐럴이 울려 퍼지면 가슴이 뛰었다. 한데 이상하게 우리 집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아무 날도 아니었다. 파티나 선물 타령을 했다가는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게 뻔해 보였다. 차가운 건넌방에 앉아 색종이를 오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사이다 한 병을 사서 동생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내 생애 첫 파티였다. 라모나도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하는데 벌써 부모님께 사달라고 할 선물 목록을 적으며 좋아한다. 게다가 오늘은 아버지 월급날이고 어쩌면 외식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아 그날 아버지가 실직을 한다. 방금 전까지 크리스마스 선물 목록을 적고 있었는데 그 일이 아주 오래전처럼 느껴졌다. 뉴베리상 수상작인 <라모나는 아빠를 사랑해>는 이렇게 시작한다. 작가인 비벌리 클리어리를 처음 만난 건 <헨쇼 선생님께>라는 책에서였다. 그날 이후 나는 비벌리 클리어리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는다. 그녀만큼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헤아릴 줄 아는 작가를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철이 없고 엉뚱하지만 그 모습이 전부가 아니며, 부모를 미워하지만 그조차 사랑받고 싶다는 뜻이라는 걸 작가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가. 유쾌하고 명랑한 라모나를 만났어도 지금 이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느껴져 때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러고 나면 꼭 내가 어릴 때 어땠는지 그 생각이 난다. <빨간 머리 앤>의 앤이나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가 1970년대 미국의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다면 아마 라모나 같지 않았을까. 상상력이 풍부하고 엉뚱하고 특별하다. 그래도 알 건 다 안다. 아버지가 실직한 후 어머니는 전일제로 일을 시작해 늘 피곤하다. 아버지는 작은 일에도 짜증이 늘고 담배도 많이 피운다. 라모나는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한다.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해 돈을 많이 벌기로 마음먹지만 연기 연습에 몰입한 나머지 실수만 연발한다. 또 돈도 절약하고 아버지의 목숨도 구하려고 금연운동을 펼친다. 하지만 아버지는 좀처럼 흡연 습관을 고치지 못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뜻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야단치는 일 말고는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인다. 아버지랑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 불편한 점도 많고 툭하면 듣는 잔소리도 지겹다. 하지만 라모나는 안다. 가족끼리 다투고 서로 실망할 때도 많지만 라모나의 가족은 행복하다는 걸. 무엇보다 라모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아빠를 사랑한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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