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표절 논란과 관련해 ‘문학권력’중 하나로 지목됐던 창비가 최근 <창작과비평>(왼쪽 사진) 가을호의 ‘책머리에’글에서 신경숙 작가 표절의혹과 관련해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을 두고 에스엔에스 등을 중심으로 실망과 비판 목소리가 일고 있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는 25일 페이스북에서 “(지난 6월) 최초 발표된 창비 문학편집부 해명의 반복”이라며 “신씨의 작품은 단지 ‘문자적 유사성’에 그친 게 아니라 ‘베껴쓰기’고 표절”이라고 비판했다.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도 “애매성으로 표절 문제를 봉합한다”며 창비를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창작과 비평> 가을호는 신경숙 표절 의혹과 문학권력 논란이 한국사회를 흔든 뒤 창비가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낼 수 있는 지면이라 여겨졌다. 24일 배포된 가을호에서 창비는 ‘표절 문제와 문학권력’이란 이름으로 긴급기획을 마련했지만 문화연대 등 토론회에서 이미 발표된 정은경·김대성의 글과 한국작가회의 게시판에 연재중인 윤지관의 원고를 발표자들이 일부 수정한 형태로 실었을 뿐이다. 백영서 편집주간(연세대 교수)은 직접 쓴 ‘책머리에’에 “그간 내부토론을 거치면서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다”면서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썼다.
그는 “문학에서의 모방과 표절, 문화권력 문제 등 이번에 크게 부각된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면서 “훌륭한 문학을 생산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한층 적극적으로 수행하고자 한다”고도 덧붙였다.
가을호에 대한 비판여론과 관련해 백영서 편집주간은 이날 <한겨레>와 전화 통화에서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알지만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논의를 담지해나가려는 것”이라며 “발언을 쉽게 하기 어려워 가을호에 서둘러 편집위원들이 무언가 쓰는 것보다는 한번 더 숨을 고르고 다른 계간지들의 목소리를 경청한 뒤 진지하게 겨울호에서 본격적이고 적극적으로 이에 대해 대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지난주 발간된 <실천문학>(오른쪽)은 전권을 ‘표절, 문학권력, 대안’이란 제목의 특집으로 꾸며 침묵하는 문단과 문학권력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실천문학> 가을호 권두언 ‘실천의 말’에서 황인찬 편집위원은 “지금 필요한 것은 성찰도 진단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처방이며 수술이다”라고 썼다. ‘유체이탈의 현상학: 표절 사건과 세월호 참사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특별기고에서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자기 외의 누군가만을 단죄하는 것은 곧 ‘유체이탈’인 것”이라며 “창비도 문학동네도 나도 유체이탈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한겨레>에 “<창작과비평>이 이번호 권두언에서 적어도 지난 20년 동안 기득권화 되고 상업화된 데 대한 전면적인 반성과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는 게 바람직했다고 본다. 그게 없었다는 사실은 오만과 무자각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리얼리스트> <실천문학> <오늘의 문예비평> <황해문화>는 2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책읽는사회문화재단 2층에서 신경숙 표절 논란과 관련해 ‘한국 문학, 침묵의 카르텔을 넘어서’라는 제목의 공동 토론회를 연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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