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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메르스’ 메모리얼 병원은 왜 재난관리에 실패했나

등록 2015-07-09 20:33수정 2015-07-10 10:47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친 지 닷새째인 2005년 9월1일 메모리얼 병원 옥외 주차장에 착륙한 구조헬기가 환자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당시 이 병원 재난 지휘자들은 스스로 거동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탈출 우선순위에서 제외했다. AP 연합뉴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친 지 닷새째인 2005년 9월1일 메모리얼 병원 옥외 주차장에 착륙한 구조헬기가 환자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당시 이 병원 재난 지휘자들은 스스로 거동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탈출 우선순위에서 제외했다. AP 연합뉴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
메모리얼 병원에서의 닷새 재구성
건강한 환자부터 먼저 내보내고
인공호흡환자는 안락사시켜
공립 채리티병원은 정반대로 행동
비결은 민주주의와 상호 신뢰
재난, 그 이후
셰리 핑크 지음, 박중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2만2000원

이 책을 읽기로 했다면 심호흡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700쪽(각주 포함)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500차례가 넘는 인터뷰를 통해 수확한 조밀한 ‘사실’들이 가득히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의학박사 출신의 의학전문기자인 지은이 셰리 핑크는 2005년 8월에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를 2007년 2월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메모리얼 병원이었다.

뉴올리언스에서만 1000여명(루이지애나 전체로는 1만여명)이 사망한 초특급 재난을 맞아 한 병원에서 45구의 주검이 발견된 것이, 6년의 세월을 들여 취재할 만큼 중요한 일일까. 이 병원의 사례가 지은이에게 각별했던 이유는 미국인들에게 여전히 뜨거운 주제인 ‘안락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카트리나가 들이닥친 2005년 8월28일 일요일부터 9월1일 목요일까지 닷새 동안 이 병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첫날인 일요일에는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긴 했지만 피해가 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뉴올리언스를 보호하던 제방이 터지면서 화요일부터 다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1920년대 서던 뱁티스트(침례교) 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메모리얼 병원은 이 도시 가장 낮은 지대에, 해수면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다. 수요일 아침에는 비상 발전기마저 고장나 병원 전체가 어둠에 잠겼고, 환자들의 생명을 유지해주던 기계에도 전력 공급이 끊겼다. 병원 밖으로는 총성이 들렸고, 방송은 폭도들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언론이 전했던 약탈 소식은 나중에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들은 양동이 변기에다 용변을 보았다. (…) 오물 냄새가 진동했다. (…) 작동 중이던 극소수의 인공호흡기 가운데 하나도 중단되었는데, 하필 취약한 골수 이식 환자들이 있는 병동에서였다. 이제는 그 기계에서 뜨거운 공기만 흘러나왔다.” 나중엔 간호사들이 수동으로 인공호흡기를 조작해야 했다.

당시 메모리얼 병원에는 200여명의 환자가 있었고, 의료진이 데려온 애완동물의 숫자도 대략 이와 맞먹었다. 어떤 의사는 진작에 환자를 버리고 병원을 떠난 상태였고, 어떤 의사는 환자보다 자기 고양이 걱정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특히 병원 7층에 세들어 있던 중환자병동 ‘라이프케어-뱁티스트’에는 55명의 환자가 있었는데, 환자를 책임질 의사가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다.

메모리얼 간호부장이자 재난대비위원회 위원장인 수전 멀더릭은 혼자 힘으로 병원을 빠져나갈 수 없는, 나가도 살 가망이 없어 보이는 환자들을 안락사시키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용기있는 태도로 끝까지 환자들을 돌보던 두경부 외과 암 전문의 애나 마리아 포가 멀더릭의 제안에 적극 호응했다. 이들은 목요일 저녁까지 모두 병원을 빠져나가기로 결정한 마당에 인공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환자들이 편안히 죽음에 이를 수 있도록 “치사량의 약물”을 주입하기로 결정한다. 주로 모르핀 같은 진정제였다. 환자들을 고통 속에 죽게 하는 것보다 인도적인 조처라고 생각한 것이다. 반대하는 의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뒤 <시엔엔>(CNN)을 비롯한 언론이 안락사 의혹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연방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검찰은 결국 이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메모리얼의 소유주인 병원재벌 ‘테닛’이 지역 정치인의 돈줄이기도 했고, 의사협회를 비롯한 지역 여론은 애너 포 등을 영웅으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대배심도 “기소 부적절” 의견을 냈다. 연방검찰과 달리 기소권을 갖고 있는 지방검찰이 소극적으로 나오는 게 당연해 보였다.

지은이가 ‘정부의 실패’ 혹은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건 아니다. 책임을 떠넘기느라 구조의 골든 타임을 놓친 정부 기관들, 업무를 맡은 지 4개월밖에 안 돼 처음부터 끝까지 무기력했던 연방의 재난관리조정실장, 비용 때문에 하수처리 시설 공사를 포기한 병원, 대통령의 행차로 구조가 늦어진 점, 메모리얼이 비상태세 점검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아이러니 등을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수사기관들은 병원의 의사들이 아니라 차라리 부시 대통령을 수사해야 했다. 폭풍 때 혼자 남아서 일한 사람들은 가만히 두어야만 했다. (라이프케어 간호부장) 이스벨이 보기에, ‘타이타닉’호의 침몰 상황에다가 전쟁 상황을 합친 것과 다름없었던 상황에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이들의 고통을 덜어준 의사는 악당이 아니라 오히려 영웅으로 간주해야 했다.”

그러나 지은이는 안락사를 택한 의료진의 행위가 과연 정당한 것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를테면 공립 채리티병원의 사례는 메모리얼과 매우 대조적이다. 채리티 역시 전력이 끊어지고 컴퓨터와 전화, 엘리베이터도 작동하지 않았다. 환자 수는 메모리얼의 두배였고, 환자 대비 직원 비율은 메모리얼보다 더 낮았는데도, 이들은 끝까지 환자들을 돌봤다. 이곳에서 사망한 환자는 겨우 3명이었다. 비결은 민주주의와 상호 신뢰였다. “이곳 지도자들은 네시간에 한번씩 로비에서 회의를 열었으며, 이때는 의사부터 미화원까지 모두가 참석했다. 이들은 플래시 불빛을 이용해 장기자랑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분장을 하고 웃기도 했다. (…) 직원들이 각자의 승용차에서 기름을 뽑아와 이동식 소형 발전기 열대에 연료를 공급했다. 여기서 생산된 전기로 인공호흡기와 심장 박동 측정기에 동력을 공급했고, 결국 상태가 위중한 사람들과 미숙아들을 살아 있게 만들었다. (…) 어쩌면 가장 중요한 차이는 채리티의 지도자들이 환자들 가운데 상태가 너무 위중해서 구조가 불가능한 부류를 굳이 골라내지 않았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가장 위중한 환자는 맨 마지막이 아니라 맨 처음 내보냈다.” 메모리얼과 정확히 반대로 행동한 것이다.

카트리나 사태는 메르스와 세월호라는 재난이 동시에 발생한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병원은 물에 잠겼고 헬리콥터와 보트로 탈출해야 하는 상황, 누구도 전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의 길이었을까. 이와 같은 사고가 우리에게 발생한다면 과연 메르스나 세월호 때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지은이는 2009년 ‘메모리얼의 치명적인 선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프로퍼블리카>와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동시에 실어 2010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추가 취재를 통해 2013년 <재난, 그 이후>(원제: Five Days at Memorial, 2013)를 냈다. 이 책은 2013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미국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면 이런 저널리즘의 존재 덕분일 것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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