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강협씨, 이창숙씨
[짬] ‘한국의 양치식물’ 함께 펴낸 이창숙·이강협 씨
자생지 확인·원고·교정·편집 4년 걸려
10년만에 본격 양치식물 도감 공저 지난해 ‘국내 첫 독립배우체’ 발견 성과
국제 식물분류학회에 보고해 큰반향
“본격 연구 시작하는 기본교과서 만족” 양치식물은 포자로 번식하는 유관속식물로 고사리, 고비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1만2천여종이 분포하며, 열대부터 건조지대, 습지, 고산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다. 국내에서는 330여종이 기록돼 있지만 연구는 식물 분야 중에서도 가장 뒤처진 쪽에 속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일본을 비롯한 외국 학자들에 의해 채집과 기록이 먼저 이뤄졌고 1965년에야 한국인으로 처음 정태현 박사가 <한국식물도감>에 170분류군을 수록해놓았다. 그나마 컬러 생태사진을 수록한 단행본 도감은 2005년 한국양치식물연구회의 <한국양치식물도감>(지오북 펴냄)뿐이었다. <한국의 양치식물>은 그 뒤 10년 만에 나온 본격 도감으로 주목받고 있다. 선배 격인 이창숙씨는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식물분류학을 전공하고 ‘고사리 계통 분류’로 학위를 받은 ‘국내 1호 양치식물 박사’다. 이강협씨는 건국대에서 원예학을 전공하고 국립수목원에서 육종 재배·관리를 담당하다 고사리의 매력에 빠진 ‘고사리 사랑’ 카페 지기다. 도감에 실린 사진 1660장 가운데 상당수는 그가 직접 찍은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결성된 한국양치식물연구회는 매월 학회지를 내며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원로 학자들의 은퇴와 별세 등으로 10여년 만에 해체됐다. 그 뒤 ‘고사리 사랑’ 카페에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출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생태환경 전문 출판사인 지오북의 대표이자 그 자신 고사리 연구가인 황영심씨가 촉매 구실을 톡톡히 했다. 원고 정리에 2년, 교정에 1년, 편집에 1년 등 꼬박 4년이 걸린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두 사람은 한라산부터 백두산까지 전국의 양치식물 분포지를 샅샅이 찾아다니며 기존 331종 가운데 자생이 확인된 287분류군을 책에 수록했다. 미기록 식물 2종(거미돌담고사리, 거미애기꼬리고사리)과 신변종 식물 2종(큰괴불이끼, 제주괴불이끼)을 발견해 학계에 보고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또 남부지방에서 주로 자라던 반들지네고사리, 쇠고비, 홍지네고사리 등이 서울에서도 자생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양치류들도 북상하고 있는 현상을 확인하기도 했다. “앞선 연구기록이나 스승이 없어 각자 홀로 공부를 해온 셈이지만 그만큼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희열도 크지요. 특히 독립배우체의 국내 첫 발견과 국제 학회 발표의 짜릿한 순간은 잊지 못할 겁니다.” 지난해 2월 이강협씨는 카페 동호회원과 함께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의 너덜지대에서 언뜻 이끼처럼 보이는 특이한 개체를 발견했다. 이를 전달받은 이창숙씨가 유전자 분석 등으로 분류해본 결과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독립배우체로 확인됐다. 독립배우체란 포자가 발아해 전엽체가 된 뒤 정자와 난자 수정을 거쳐 포자체로 자라는 양치류의 일반적인 번식 과정을 따르지 않고 전엽체 상태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올해 초 미국식물분류학회에서 발표를 했더니 기대 이상으로 뜨거운 관심을 보였어요. 서식환경이 열악할 때 마치 타임캡슐처럼 포자를 보존하다 다시 조건이 맞으면 번식을 하는 ‘양치류의 생존 비밀’을 밝힐 수 있고,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생태의 미래도 예측할 수 있는 단서라고 흥분하더군요.” 두 공저자는 “덕분에 지난 1년 행복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 도감은 어디까지나 연구의 시작을 위한 기본 교과서라고 자세를 낮춘다. “양치식물 전공 연구자들이 하나둘 배출되고 아마추어 탐사 동호인층도 두터워지면서 전국 각지의 미기록 또는 신종 분포지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어요. 또 세계적인 분자계통 생물학의 발달로 양치 분야도 분류계통에 대한 새로운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죠. 후학들이 더 발전시켜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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