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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본 극우작가 표절 논란 신경숙씨 “그 작품 몰라”

등록 2015-06-17 19:29수정 2015-06-23 16:00

소설가 신경숙
소설가 신경숙
작가 이응준씨가 문제제기
신씨 단편소설 ‘전설’ 성애 묘사부분
미시마 유키오 ‘우국’ 번역본 빼닮아
1999년에도 장단편 표절 시비

평론가 이명원씨 “변형했지만 표절”
고종석씨, 해명만 전한 ‘창비’ 맹비난
“한국 문단이 응답해야” 공통된 지적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신경숙씨가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 신씨는 전면 부인했으며,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신씨의 표절 논란은 처음이 아닌데다, 이번 주장이 신씨에 대한 의혹에 십수년간 침묵해온 한국 문단에 대한 정면의 문제제기이기도 해 파장은 클 것으로 보인다.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11월 자위대의 각성과 궐기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대표적인 극우파 작가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씨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씨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씨는 16일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블로그에 쓴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이라는 글에서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의 일부가 미시마의 단편소설 <우국>의 번역본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미시마의 <우국>에서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금각사, 우국, 연회는 끝나고> 233쪽, 1983)라는 문장이 신경숙의 <전설>에서는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오래전 집을 떠날 때> 240~241쪽, 1996)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 대목을 제시하면서 미시마의 작품을 번역한 시인 김후란이 “(이전 다른 이의 번역에서)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라는 밋밋한 표현을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라는 유려한 표현으로 번역했다”며 “이러한 언어조합은 (…) 의식적으로 도용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는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인 것이다. (…) 한 순수문학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표절’”이라고 밝혔다. <우국>은 1936년 천황 직접 통치를 주장하는 젊은 장교들의 쿠데타를, <전설>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모두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사태를 핵심 소재로 삼고 있다.

이씨는 “원래 신경숙은 표절 시비가 매우 잦은 작가”라며 신경숙이 소설 <딸기밭>에 재미 유학생 안승준의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의 서문을 무단 사용한 일,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와 단편소설 <작별 인사>가 파트리크 모디아노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들 속 문장과 모티프, 분위기를 표절했다는 등 1999년 <한겨레> 지면 등을 통해 의혹 제기가 오갔던 일을 언급했다. 신 작가는 <딸기밭> 표절 의혹에 대해 출처 없이 사용한 것은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표절 혐의는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신씨는 17일 출판사 창비에 이메일을 보내 표절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설>이 수록된 소설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와 <감자 먹는 사람들>을 출간한 창비도 “사실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라며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며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표절 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도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작가와 창비의 해명이 나오자 반발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문제가 되는 두 작품의 문장을 보면 나름대로 변형한 흔적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표절이 맞다고 본다”며 “표절 의혹이 제기됐던 99년과 달리 지금 그는 아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주요 작가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번 의혹이 과거처럼 간단하게 봉합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신씨가 과거처럼 출판사 관계자나 법률 대리인을 내세우고 자신은 뒤로 빠지는 태도도 문제”라며 “이런 작가와 그 작가를 보호하기 위해 설득력이 없는 주장을 내놓는 출판사가 오히려 한국문학 전체에 대한 냉소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작가 고종석씨도 자신의 트위터에 “신경숙씨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에 대해 창비가 내놓은 입장은 이 출판사가 독자들을 돈이나 갖다 바치는 호구로 봐 왔고, 앞으로도 호구로 보겠다는 뜻”이라며 “나는 신씨의 입장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다만, 창비의 입장에 대해선 분노를 참을 수 없다”고 썼다.

반면 정우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일단은 작가 자신의 말을 믿고, 표절 여부는 제3자인 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신중론을 폈다. 그는 이번 신씨의 대응이 아쉽다면서도 “신씨가 습작 시기에 여러 작품을 필사하면서 문장 공부를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필사를 많이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남의 문장이 익숙해져서 제 문장처럼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표절보다는 ‘전이’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문단 관계자들은 반응이 엇갈리면서도, 적어도 이번 사안에 대해 한국 문단이 어떤 형태로든 응답해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이재성 기자, 최재봉 선임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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