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
박건웅 그림, 최용탁 원작/북멘토·1만4000원 철사줄로 굴비처럼 엮여 골짜기로 내몰린 사람들이 극도의 공포에 질린다.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절망감, 그리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처절하게 내지른 비명 소리. 천둥처럼 내려치는 총소리에 사방으로 튀는 피와 살점들. 목판화 스타일의 거칠고 투박한 선은 이 땅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 사건의 참담하고 잔인한 현장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한국전쟁 중 벌어졌던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우리의 부끄럽고 비극적인 역사이다. 이승만 정권은 1949년 6월 좌익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을 별도로 관리하기 위해 보도연맹을 조직했다. 1950년 초 연맹원 수는 약 30만명. 공무원들의 실적주의 때문에 전향자들은 물론 농민들이 대다수 가입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군과 경찰,극우 폭력단체들은 보도연맹이 북한군에 가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조직적으로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소박하게 살아가던 농민 등 약 20만명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다. ‘2014 부천만화대상’ 수상자인 박건웅 작가는 충북지역에서 나흘간에 걸쳐 벌어진 집단학살의 비극을 그린 최용탁의 동명 소설을 어린 물푸레나무의 시선으로 만화로 살려냈다. 박 작가는 노근리 학살 사건, 제주 4·3 사건과 김근태의 삶을 그린 <짐승의 시간> 등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작업을 끈질기게 해왔다.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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