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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따루 “멸치액젓 같은 말 옮기기 어려웠지만 ‘엄마 얘기’ 공감”

등록 2015-04-19 19:33수정 2015-04-20 19:27

‘엄마를 부탁해’ 핀란드어판을 번역한 따루 살미넨 씨.
‘엄마를 부탁해’ 핀란드어판을 번역한 따루 살미넨 씨.
[짬] ‘엄마를 부탁해’ 핀란드어판 번역 따루 살미넨
“지난해 주핀란드 한국대사관으로부터 번역을 제안받고 좀 망설이긴 했어요. 워낙 유명한 작품인데다, 내가 전문 번역가가 아니어서요. 그래도 작품의 주제가 핀란드인이든 미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 (번역을) 하기로 했죠.”

소설가 신경숙의 2008년 작 <엄마를 부탁해>가 지난 17일(현지시각) 핀란드에서 현지어로 번역돼 나왔다. 작품을 번역한 따루 살미넨(38·사진)은 이미 10여권의 핀란드 동화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하지만 한국 문학 작품이 핀란드어 판본을 얻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식들을 만나러 서울에 왔던 엄마가 실종되자 온 가족이 엄마를 찾아나서면서 각자의 기억을 통해 엄마의 존재를 재발견하는 내용이다.

첫 핀란드어판 한국문학 작품 출간
핀란드 동화 한국 소개한 경험 살려
‘미녀들의 수다’ 우리말 실력도 한몫

교사 은퇴 앞둔 어머니 이해 깊어져
한류 이어 한국현대사도 알리는 기회
“5월10일 어머니의 날 선물로” 기대

따루 살미넨은 중학생 시절 한국 친구와의 펜팔을 시작으로, 헬싱키대학에서 정치학(동아시아 한국 전공)을 공부하면서 한국에 흠뻑 빠졌다. 2006년부터는 주한 핀란드대사관에 일자리를 얻었고, 그해 티브이 방송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면서 맛깔난 우리말 실력을 뽐냈다. 공교롭게도 살미넨의 핀란드 고향 마을의 지명도 ‘코리아’(Koria)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소설을 보면 어머니가 자식들 주려고 온갖 음식을 많이 만들어요. ‘엄마는 마치 공장 같았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거든요.”

따루 살미넨의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로 내년에 은퇴한다고 했다. “대학 시절 주말이나 방학 때 집에 가잖아요. 그러면 베리주스, 베리잼 만들고 빵도 굽고, 먹을 것을 잔뜩 해놓으셔서 일주일 동안 장을 안 봐도 돼요. 이런 정서가 너무 비슷해서 공감을 많이 했죠.”

그는 특히 한국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옮기는 데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한국어는 문장 하나하나가 경제적이랄까, 함축적인 표현들이 많아요. 핀란드 독자들에게도 똑같은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옮기는 게 번역자의 몫이잖아요. 글맛을 살리면서 번역하는 게 힘들었죠. 그래도 핀란드어는 인도유럽어족이 아니고 한국어와 비슷한 면이 있어요. 이를테면 핀란드어도 유럽어와 달리 전치사가 없고 한국말처럼 조사(토씨)를 많이 쓰죠.”

하지만 문화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없을 리 없다. “(원작 소설에) 한국 음식 이름이나 고유명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멸치액젓’ 이런 것 번역하려면 어려워요.(웃음) 간략한 설명을 곁들여야 했지요. 하지만 작품에 전 인류가 공감하는 ‘엄마’라는 주제가 녹아 있기 때문에 생소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어요.”

그는 이번 번역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작업”이었다고 했다. “처음엔 일단 한번에 쭉 초벌 번역을 했고, 다시 한번 보면서 가다듬었는데 그때가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한국에 산 지가 오래됐고 한국어에 익숙하다 보니 오히려 핀란드어 느낌이 떨어지고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핀란드어 사전과 한국어 사전에서 뜻풀이를 많이 찾아보았죠. 이번 번역은 내가 핀란드어 공부를 다시 하게 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답니다.”

따루 살미넨은 평소 집안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어머니를 한 인간, 한 여성으로서 재발견하게 된 것이 이번 작업의 또다른 보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꿈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엄마도 꿈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것, 우리 엄마는 꿈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사적인 관계를 넘어 객관적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엄마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거죠. 책의 메시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제가 볼 때 중요한 건 ‘엄마가 옆에 계실 때 잘하자’, 이런 것 같아요.”

그는 이번 출간이 두 나라의 상호 이해 확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국 사람들은 핀란드에 대해 많이 알고 관심도 커요. 교육, 복지 분야뿐 아니라, 자일리톨, 산타할아버지, 노키아, 사우나…. 또 앵그리 버드, 클래시 오브 클랜 같은 게임도요. 그런데 핀란드 사람은 일반적으로 한국에 대해 잘 몰라요. 대부분 한국은 주로 북한 관련 뉴스로 알게 되죠. 물론 젊은 친구들은 한류 덕분에 한국 대중음악(케이팝)을 잘 알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는 <엄마를 부탁해>는 한국의 정서뿐 아니라 간략하나마 한국 현대사와 사회 분위기도 알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책을 보면 한국전쟁, 1970~80년대 한국 사회, 또 학생운동 이야기도 나와요. 책을 보면서 핀란드인들도 한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핀란드에선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올해는 5월10일)이 ‘어머니의 날’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어머니의 날을 바로 앞두고 출간됐다. 살미넨은 “어머니의 날 같은 기념일엔 책 선물을 많이 하는데, 이번엔 특히 이 책이 엄마들에게 많이 선물로 주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헬싱키/글·사진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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