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주인인 윤성근 씨.
[짬]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씨
전공살린 컴퓨터 회사 사 표내고
큰 헌책방 견습 5년 뒤 2007년 창업 전화번호부까지 즐겨읽던 책벌레
어릴때부터 읽은 3천권 밑천 삼아
공연·심야운영 등 문화공간 정착 초등학교 시절부터 활자가 많은 책을 유난히 좋아했다. 가장 좋아한 책은 이제는 사라진 노란색 전화번호부. 크고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펼치고 깨알같은 이름과 전화번호를 읽어 내려갔다. 재미있는 이름을 찾으면 기뻤다. 각종 사전을 좋아했고, 성경책도 여러번 읽었다. 내성적 성격 탓인지 혼자 책을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졸업한 뒤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 온국민이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을 때 윤씨는 심하게 우울했다. 그무렵 서울 도심의 상징이던 ‘종로서점’이 경영난을 못이겨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종로서적의 여러층을 오르내리며 마음껏 책을 읽었던 그는 “종로서적 폐점이라는 충격적 소식을 듣고, 고민고민하다가 사표를 썼다”고 했다. 그리고 직접 헌책방이라도 열기로 작정했다. 우선 서울 금호동의 제법 큰 헌책방에 취직한 윤씨는 1년간 열심히 운영 노하우를 익혔다. “새 책방에 간 손님들은 책만 사고 나오지만, 헌 책방을 찾는 손님들은 책방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해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손님들이 매우 행복해 하더라구요. 그때 결심했어요. 내가 헌책방을 차리면 꼭 내가 읽은 책만을 팔겠다고. 그래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잖아요.” 그는 다양한 헌책방에 대한 경험을 쌓은 뒤 2007년 드디어 자신의 헌책방을 창업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 어릴 때부터 읽은 책 3천권이 ‘밑천’이었다. 장소가 외진 탓인지 처음엔 손님이 거의 없었다. 한 권도 못 팔고 문을 닫은 날도 많았다. 하지만 조금씩 단골손님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인이 그 어느 책방 주인보다 설명을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한달에 두번씩 판소리와 음악회 등 문화 공연도 했다. 매달 두 번째, 네 번째 금요일에는 손님이 원하는 시간까지 문을 열었다. 소문이 나자 지방에서 올라온 손님들이 꼬박 밤을 새운 뒤 첫차로 내려가곤 했다. 그때그때 관심사에 따라 책의 진열도 바꿨다. 환경과 젠더 같은 주제를 시의적절하게 골라 관련 책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진열했다. 영미소설이나 일본소설을 싫어하는 윤씨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프랑스, 러시아, 동구권 소설책을 많이 비치해 비슷한 성향의 손님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단골손님 중에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있다. 시장 출마 이전부터 자주 찾았던 박 시장은 자신의 시장 집무실 서가 구성을 그에게 맡기기도 했다. 윤씨는 “책방은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공간이 돼야 해요. 일본도 10~15년 전에는 지역 책방들이 책만 진열해 파는 게 상례였지만, 불황을 거치면서 독자적인 분위기와 특화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지역서점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빚없이 책방을 운영한다고 한다. 텔레비젼이나 영화 등 영상미디어를 멀리 생활하는 그는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만 문을 연다.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쓰고 싶은 글도 많다. 이미 5권을 써낸 저술가이기도 한 그는 세월이 많이 흐르더라도 변치 않는 책방을 만들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이다. “흔히들 영업이 잘되면 번화가로 나가고, 면적을 넓히잖아요. 전 10년, 20년이 지나도 전혀 변치 않는 분위기를 지난 그런 책방을 운영하고 싶어요. 이상한가요?” 윤씨는 “이런 헌책방을 운영하는 고집하는 이유가 비록 자기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지만, 누구든지 이런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도 된다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그의 손에는 깔끔하게 단장한 ‘헌책’이 자부심처럼 들려 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사진제공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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