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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 ‘근대 조선 모습’ 봉인 풀던 순간 전율”

등록 2014-12-21 21:15수정 2015-01-09 14:36

[짬] ‘그리피스 컬렉션’ 발굴·발표한 양상현 교수

구한말 조선이 쇄국의 빗장을 연 지 불과 6년 만인 1882년 미국의 동양학자 윌리엄 그리피스는 <은자의 나라 한국>(원제 코리아: 더 허밋 네이션)을 펴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앞서 1871년부터 3년6개월 동안 선교사로 활동했던 경험을 담은 <미카도의 제국>(1874년)을 저술해 미국내 일본 전문가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조선을 직접 가본 적이 없었던 그의 책은 일본의 시각을 담은 간접 자료에 의존해 피상적이고 오류가 적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평생토록 외교사절이나 선교사들과 교류하며 조선 관련 자료를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죽기 1년 전 처음으로 조선과 만주를 한달 동안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이듬해 85살로 숨졌고 방대한 자료는 모교인 뉴저지주립 럿거스대학 도서관에 기증됐다.

그로부터 80년 만인 2008년 한 한국인 교수가 ‘그리피스 컬렉션’의 봉인을 풀었다. 럿거스대학의 불교미술 권위자를 찾아 안식년 연수를 간 양상현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였다. 그는 그뒤 6년 만인 최근 한국근현대사학회 월례발표회에서 ‘그리피스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 근대 사진 자료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고찰’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피스가 1917년 사진까지 모아 놓았으니 거의 100년 만에 근대 조선의 모습이 세상에 공개된 셈이죠. 맨 처음 눈길을 끈 1884년 무렵 남산에서 찍은 한양 도성의 전경 사진부터 한장 한장 의미를 확인할 때마다 짜릿한 전율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어요.”

1870년대 일본 온 미선교사 그리피스
조선자료 600점 1928년 럿거스대 기증
2008년 연수간 양 교수 도서관서 개봉

명성황후 첫 가묘·국장 사진도 발견
개화기 ‘한양’ 등 희귀사료 수두룩
‘130년전 조선인 삶’ 인터넷한겨레 공개

양 교수에게 그리피스 컬렉션의 존재를 ‘제보’한 사람은 한국 출신인 럿거스대학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유영미 교수였다. 6년 전 그가 대학 도서관을 찾아갔을 때 컬렉션은 문헌자료·희귀도서·미정리 자료 등 크게 세가지로 분류돼 있었다. 사진 등은 미정리 자료에 들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근대 조선 사진자료는 10개의 별도 서류 박스에 담겨 있었다. 모두 593장이나 됐다. 그리피스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국의 안과 밖>(1885), <호랑이와 한국 이야기>(1911), <아펜젤러 전기>(1912), <한국 동화집>(1922) 등 근대 조선 관련 저술을 여럿 출간하기도 했다.

양상현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양상현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자료를 주제나 내용별로 분류해 놓은 게 아니고, 그림·엽서·사진·앨범·크기 등 형태별로만 나누어 무더기로 쌓아놓은 까닭에 처음엔 그 가치를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무조건 한장 한장 찍었어요. 꼬박 1주일이 걸렸죠.”

그 뒤 5년간 양 교수의 서재에 숙제로 남아 있던 사진 자료들은 순천향대 건축학과 석사과정 박소연씨에 의해 분류를 할 수 있었다. 지난 1년간 한장 한장 수작업을 통해 기존의 사진 자료와 비교·검색을 해본 결과 모두 586장이 조선 관련이었고 그 가운데 351장이 미공개 희귀 자료로 확인된 것이다.

“특히 동구릉 안의 숭릉에 있던 명성황후의 초기 가묘와 국장 사진은 처음 확인된 것입니다. 황후는 1895년 10월8일 시해됐지만 개화파와 일본군은 그 사실을 감추려고 했고, 2년 뒤인 1897년 11월21일에야 고종에 의해 국장을 치러 홍릉에 묻힙니다. 그리피스는 이 가묘 사진의 뒷면에 ‘왕비가 묻힌 장소’라고 적어 놓았습니디만, 실제로 시신이 묻혀 있는 것은 아니고 무덤터로 조성하고 있던 공사 중의 모습이죠. 그동안 그림으로만 남아 있었는데, 그것도 시해된 뒤 화장된 장소로 잘못 알려져 있었습니다. 황후의 국장 역시 왕실 의궤 그림으로만 기록돼 있었는데 마침내 이번에 사진으로 확인된 것이고요.”

실제로 국장을 치를 때까지 명성황후의 주검은 애초 경복궁의 ‘빈전’을 마련해 모셨다가, 다시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옮겨간 경운궁에 두었다고 한다.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 직후 불타고 남은 일부만 겨우 수습돼 그 위에 비단옷을 겹겹이 입혀 입관한 것이라고 한다.

양 교수는 “이처럼 가묘에 대한 기록이 지금껏 잘못 알려진 사실 자체가 구한말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조선과 황실의 비극적인 운명을 증언하는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현대사학회 발표와 토론을 통해 1887년 무렵 초기 태극기 사진이 새로 확인되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담배회사에서 전세계 50개 나라 만국기를 카드로 제작해 발매한 판촉 기념품으로, 지금도 컬렉터들 사이에 거래가 되는 희귀본이더군요.”

그리피스는 아쉽게도 자료의 출처나 사진을 찍은 사람은 밝혀두지 않았다. 또 일부는 일본 자료를 조선으로 오인한 사례도 있고 내용 자체에 오류도 드러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료마다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짤막하게 적어두어 학술적 가치를 연구할 수 있는 단서는 충분한 것으로 평가됐다.

양 교수는 이번 첫 논문에서 관혼상제, 전쟁, 생활, 궁궐과 왕실, 도시·건축, 종교, 기타 등 모두 7개 항목으로 분류해 소개했다. 그 가운데 도시 전경·거리·다리·조선 건축·근대 건축 등 건축 관련 173장에 대한 분석 자료는 연구생 박소연씨가 석사 논문으로 제출한 상태다.

“이제 사료의 뼈대가 드러난 상태이니만큼 근대 조선의 실상을 온전히 드러내려면 본격적인 연구로 살과 옷을 입혀야 할 듯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 협업과 학술기관의 지원을 기대합니다.”

양 교수는 이 가운데 관혼상제를 비롯해 130년 전 조선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사진 20여장을 ‘인터넷 한겨레’(hani.co.kr)를 통해 공개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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