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찬 교수
[짬] 토지학회 창립 회장 맡은 최유찬 교수
‘토지’ 개별 연구자들 50명 뜻 모아
서울 정릉 댁 독자만남 공간 추진 “동학 100돌에 맞춘 토지 완간
박경리 선생의 의도 들어 있어” 개인적으로 채만식 평전 의욕
“친일 논란 ‘탁류’ 항일문학 판단” <토지> 결정본 출간을 주도한 것은 최유찬 교수가 팀장이 되어 이상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박상민 가톨릭대 교수, 최유희 중앙대 교수 등 7명과 함께 꾸린 ‘토지 팀’이었다. 이들은 2000년 무렵부터 팀을 이루어 <‘토지’의 문화지형학>(2004), <한국 근대문화와 박경리의 ‘토지’>(2008) 같은 합동 연구서를 냈으며, 결정본 출간 뒤에도 개별적으로 <토지> 연구를 계속해 오다가 이참에 아예 학회를 꾸려 체계적인 연구를 이어 가기로 했다. 김병익·정현기·황현산·조남현 등 원로 문학평론가들이 고문으로 동참하기로 했고 정호웅·김종회·우찬제·이승하 등 50여명의 연구자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중국에는 고전소설 <홍루몽>을 연구하는 ‘홍학’(紅學)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홍루몽>에 견줄 만한 우리의 문학작품이 바로 <토지>라고 생각합니다. 토지학회가 만들어지면 지금까지 개별 학자들의 관심사에 따라 방만하게 이루어져 온 연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텍스트를 한층 꼼꼼하게 미시적으로 검토할 수 있으며, 문학작품과 사회·역사적 맥락의 관계를 거시적으로 연구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계문학의 차원에서 <토지>를 비교문학적으로 연구하는 한편 <토지>의 해외 번역 출간을 위한 운동과 지원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토지>의 번역 출간 현황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 등 5개 언어로 번역본이 나와 있으나 전체 5부 가운데 1부 정도가 번역돼 있을 뿐이다. 워낙 분량이 길고 사투리와 토속어 등 번역자들에게 까다로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겠지만, 아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키고 <토지>의 해외 번역 출간을 위한 일종의 운동을 펼치자는 데에도 학회 창립의 취지가 있다”고 최 교수는 밝혔다. “<토지>는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여러번 각색되었고 음악극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친숙한 작품이죠. <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 평사리에는 드라마 세트장이 있고, 박경리 선생의 고향인 통영에는 무덤과 문학관이 있으며, 선생님이 오래 거주하셨던 강원도 원주에는 토지문화관과 문학공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토지> 1~3부를 집필하신 서울 정릉 댁도 생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서울시에서 그 집을 사들여서 문학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지지부진한 상태인 것 같아요. 다른 공간들도 중요하지만, 특히 정릉은 <토지>를 매개로 독자와 전문 연구자가 만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최적지라고 생각합니다.” 13일 창립총회를 겸한 기념 학술대회에서 최 교수는 ‘세계문학으로서의 <토지>’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최 교수 말고도 정호웅 홍익대 교수와 이승하 중앙대 교수가 ‘<토지> 연구의 나아갈 길’과 ‘박경리 시세계의 넓이와 깊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발표에 나서는데, 물리학자인 남균 연세대 교수가 ‘물리학의 잣대로 읽는 <토지>’라는 발표를 하는 것이 이채롭다. 빅뱅 이론에 비추어 <토지>를 살펴보면서 등장인물들을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관계에 견주어 이해하려는 논문이라고 최 교수는 소개했다. “기존의 세계문학 논의는 유럽문학을 기준으로 삼고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와 인도 등에서는 유럽식 세계문학과 다른, 독자적인 문학 흐름이 전개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유럽문학에 치우치지 않은, 다원적 중심을 지니는 ‘세계문학공화국’을 상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기존의 세계문학론과 <토지>가 지니는 차이를 따져 봐야 하고, 그러자면 동아시아적 사상과 문화, 사유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근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비판과 저항으로서 <토지>를 읽기 위해 역사학과 철학, 경제학 등 인접 분과 학문 쪽의 관심과 참여도 필요합니다. 이런 다층적 연구를 끌어내는 데 토지학회가 중추적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유찬 교수는 합동통신과 동아방송 기자로 일하다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해직당한 뒤 1988년 한겨레신문에 창간 기자로 동참한 경력도 있다. 해직 기간 동안 박사학위를 받고 1996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정년을 2년 앞두고 있다. “정년 뒤에 시간 여유가 생기면 박경리 선생님과 작가 채만식의 평전을 쓰고 싶어요. 박경리 선생은 워낙 추앙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쓰려 하겠지만, 친일 시비에 걸려 있기도 하고 직계 후손도 없는 채만식 쪽이 더 시급하다고 봅니다. <탁류>는 물론 친일이라고 해석돼 온 채만식의 소설들도 거꾸로 항일문학이라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평전 이후에는 제 나름의 ‘통일성’ 이론으로 한국문학사를 서술하는 책을 내고 싶어요. 그 전에, 고향인 전북 부안에서 한동안 식구처럼 지냈던 닭을 주인공 삼아 쓴 동화를 책으로 먼저 내는 게 순서겠네요.”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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