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영국 런던 템스강 남쪽 케닝턴 코먼에서 열린 차티스트들의 집회 모습. 차티스트 운동은 노동자들의 보통선거권을 쟁취하려 했던 운동이었다. 혜안 제공
영국 자유주의 기원과 요소 분석
시장경제 수혜자들, 민주화 방해
누구를 위한 자유인지 따져봐야
시장경제 수혜자들, 민주화 방해
누구를 위한 자유인지 따져봐야
김명환 지음
혜안·2만8000원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에서 드러나듯, 흔히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의어 내지 항상 동반하는 개념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둘은 별개의 개념이다. 역사 속에서는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한 사례가 많다. 이 둘은 사회주의와 적대적이라는 선입견도 만연해 있지만, 어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거쳐 사회주의로 이어졌다. 이런 자유주의의 구체적인 역사적 모습을 들여다본 연구서가 나왔다. 김명환 신라대 교수(사학과)는 <영국 사회주의의 두 갈래 길>,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 등 일련의 저작을 통해 19세기~20세기 초 영국사를 조명해온 연구자다. 신작 <영국 자유주의 연구>는 자유주의에 초점을 맞춘 책으로, 이전 발표 논문들을 수정해 싣고 새 글을 추가했다. 자유주의는 역사학뿐 아니라 철학, 경제학, 정치학 등 여러 학문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이념이다. 하지만 이 책의 표현대로 “고체처럼 보여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집으려고 하면 갈라져 버리는 수은”처럼 그 실체를 포착하기가 어렵다. 지은이는 역사 속에는 ‘하나의 단단한 자유주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자유주의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책이 다루는 자유주의는 영국의 자유주의, 그중에서도 1870~1880년대 영국에서 나타났던 자유주의 운동들이다. 지은이는 1장에서 영국 자유주의를 총론으로 다룬 뒤 ‘자유와 재산 방어 연맹’의 자유주의, 허버트 스펜서의 자유주의, 조지프 체임벌린의 자유주의를 차례로 살펴본다. 지은이는 영국 자유주의의 기원을 다섯가지로 나눈다. 우선, 17세기 이후 국왕의 권력을 견제한 휘그 귀족의 자유주의가 있다. 이들은 ‘자유’와 ‘의회주의’를 내세웠지만, 당시 의회는 귀족들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선거권은 “국가 이익에 기여할 수 있는 정치적 지혜를 가진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 기준은 재산이었다. 비슷한 시기 정반대 방향에서 레벨러(Leveller·평준파) 운동이 등장한다. 이들은 왕정과 귀족을 없애고 광범위한 선거권(여성, 하인, 채무자, 실업자는 제외)을 통해 의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영국 자유주의의 급진주의적 기원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연결시켰다. 그 뒤 애덤 스미스로 상징되고, 상인, 제조업자 등이 중심이 된 자유방임주의적 자유주의가 등장한다. 이는 지금까지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자유방임주의의 핵심은 경제 활동의 자유, 계약의 자유, 재산권의 보호 등이었다. 이들은 “어떤 경제적·사회적 해악도 그냥 내버려 두면 저절로 치유가 된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따라서 국가가 나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거나 사회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조화를 향해 나아가는 자연의 작용을 깨뜨리는 행위”라고 봤다. 1846년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각자 처한 상태에 누가 책임이 있는가? 바로 개인들 자신이다”라고 쓰고 있다. 1882년 결성된 ‘자유와 재산 방어 연맹’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활동을 모두 ‘사회주의’라고 비난했다. 허버트 스펜서는 민주주의가 “가장 큰 정치적 미신”이 돼버렸고, 자유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애초 경쟁을 방해한다고 봉건적 특권을 비판하며 등장한 이들은 시장에서의 성공을 통해 점차 독점이라는 특권을 누리게 됐다. 벤담주의적 자유주의는 국가의 간섭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자유방임주의와 달랐지만, 그 궁극적 목적이 시장의 경쟁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마지막으로 토머스 힐 그린, 레너드 트렐로니 홉하우스 등의 ‘신자유주의’가 있다.(1980년대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와는 다르다.) 그린은 자유를 단순히 ‘억압이 없는 상태’를 넘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상태’로 해석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를 개인이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으로 이해함으로써, 국가가 빈민이나 실업 등의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이런 전통은 20세기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 윌리엄 헨리 베버리지 등으로 이어진다. 지은이는 영국 자유주의에 두 요소가 혼재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인권과 권력 참여 요구이며, 다른 하나는 자유방임 요구다. 전자는 보통선거로 상징되는 ‘민주화’를 촉진시켰고, 후자는 개인들의 자유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시장경제’를 발전시켰다. ‘민주화’는 “국가권력에 귀족이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조금씩 다음 계층에게 의회의 문을 열어 주면서 약자의 이익이 순차적으로 반영되는 것을 허용했다.” ‘시장경제’는 “계약의 자유를 바탕으로 효율과 번영, 성장을 추구하며 점차 강자의 이익에 봉사하게 됐다.” 영국 역사에서 시장경제는 빠르게 실현되지만 민주화는 느리게 실현됐다. 민주화가 진행되고 보통선거가 실시되면 각종 평등화 정책과 규제로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시장경제의 수혜자들, 보수파들이 이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자유주의는 인류를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토대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자유로운 노예무역이 이루어졌고, 자유로운 불공정 계약이 맺어졌다”며 “자유를 생각할 때는 그 자유가 누구의 자유이고, 누구에게 무슨 이익을 가져다주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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