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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회 양극화 막으려면 균질한 ‘보육 복지’ 필수

등록 2014-03-09 19:19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크게 변하고 있지만, 보육서비스 확충에 대한 공적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남녀평등이 더 진전할 수 있다. 사진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무료놀이방에서 한 여성이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크게 변하고 있지만, 보육서비스 확충에 대한 공적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남녀평등이 더 진전할 수 있다. 사진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무료놀이방에서 한 여성이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동질 계층간 결혼으로 격차 확대
저학력층 부부일수록 성 불평등
미취학연령대 사회적 투자 긴요

끝나지 않은 혁명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 지음
주은선·김영미 옮김
나눔의집·1만4000원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67) 스페인 폼페우파브라대 교수는 복지국가의 유형을 분석한 <복지자본주의의 세가지 세계>(1990년)로 유명한 덴마크 출신 사회학자다. 그가 이 책에서 복지국가 유형화의 핵심 기준으로 제시한 ‘탈상품화’ 개념은 이후 복지국가 연구의 중요한 패러다임이 됐다. 그가 2009년에 내놓은 <끝나지 않은 혁명>은 여성 역할의 변화와 복지제도의 관계를 규명한 책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주요 분석 대상이다.

20세기 들어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노동시장 참여가 늘어났다. 맞벌이 가정이 증가했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졌다.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에스핑안데르센 교수는 이 변화가 아직 불완전한 상태라고 본다.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이라는 전통적인 젠더 규범이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맞벌이 가정에서 가사노동의 분담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부부의 총 가사노동 시간 중 남성의 시간 비율은 미국의 경우 1980년대 32%였는데, 2000년대 33%로 정체 상태다. 책 제목이 ‘끝나지 않은 혁명’인 이유다.

이 혁명이 ‘미완’인 이유는 한가지 더 있다. 바로 이 혁명이 계층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대 사회의 ‘동질혼’ 추세, 즉 학력, 소득수준, 취향 등이 비슷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향과 연결돼 있다. 동질혼은 가구의 합산소득능력에 영향을 끼친다. 고임금 직종에 있는 여성들이 유사한 수준의 직종에 있는 남성과 결혼하게 되면, 이들의 가구소득은 저소득층 가구와 격차가 더 벌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고학력 동질혼 부부들은 좀더 남녀평등 지향적인 반면, 저학력 부부들은 전통적인 젠더 규범을 여전히 충실히 따르는 경향이 있다. 가정에서 역할에 대한 아내의 협상력은 아내의 소득에 비례하기 때문에, 대졸 학력 동질혼 부부의 경우, 함께 가사노동을 할 가능성이 30%까지 증가한다. “저숙련 여성의 경우, 소득능력이 다소 한계적일 수밖에 없고, 이들은 전통적인 젠더 행동 패턴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동질혼의 양극화 효과는 보육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부부가 모두 고학력인 경우 아빠의 보육시간이 30% 증가하고, 부부 공동의 돌봄시간이 30% 정도 다시 급증한다. 그들은 자녀와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낸다. 덴마크, 미국, 스페인에서 고학력 집단과 저학력 집단 간의 자녀 돌봄시간 차이는 약 30%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모가 자녀의 미래에 투자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크게 돈과 시간이라고 볼 때 둘 모두에서 저학력층은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런 모든 경향은 결과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의 재생산으로 이어진다. “부자들은 가장 재능이 없는 자식에게조차 안정적인 미래를 사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미국 연구를 보면 가난한 부모의 아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빈곤에 처할 가능성이 42%에 달한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나 가사노동 분담 같은 변화들이 특정 계층에게 한정된다면, 이는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는 구실을 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복지제도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초등학교 취학 전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투자다. “지금 미취학 연령대에 정말로 중요한 사회적 대물림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에 전반적인 합의가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에는 이미 아이들의 수업준비 상태에 큰 차이가 있고, 그 이후 개선 정책들도 그다지 효과가 없고 비용도 많이 든다.

사회적 대물림을 막기 위한 ‘기회 동등화 전략’에서 어린이수당·가족수당 등을 통한 소득불평등 완화는 기본이다. 이와 함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대한 공적 투자를 통해 양질의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보육서비스 확충은 여성들의 ‘일과 육아의 병행’을 위해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되지만, 에스핑안데르센 교수는 그 못지않게 계층 대물림 현상을 완화시키는 중요한 고리로 본다. 전 계층의 아동에게 균질하고도 질 좋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가족간 불평등에서 오는 격차를 최대한 막아보자는 것이다. 보육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가구 소득을 높여주는 여성 고용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보육서비스 증진은 ‘완벽한 윈윈정책’이다. 이런 투자가 이루어질 때야만 젠더평등도 더 진전될 수 있는 것이다.

서구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분석이어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도 가끔 있지만, 대체적인 경향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에스핑안데르센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은 분명 여성 역할 변혁의 길로 들어섰지만,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한국 남성들은 가사노동시간 중 10%, 아동돌봄 시간의 20%만을 담당하는 반면 유급노동시간은 여성의 세배 이상인데, 이는 스페인 등 비교적 전통적인 유럽 사회보다 훨씬 성별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평등 선두 주자들의 경험에 비춰보면, 태도와 기대, 행동의 근본적인 전환은 여성이 자신의 고용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남성화’시켰을 때, 즉 모든 여성과 어머니들이 일생에 걸쳐 전일제 노동자인 것이 규범이 될 때 이루어졌다”며 “이를 가로막는 주요한 방해물은 남성 생계부양자 논리를 중심으로 설계돼 여성 노동자들을 2차적 노동자 지위로 강등시키는 한국 노동시장”이라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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