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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근대 일본을 만든 난학, 해부학책 번역에서 시작

등록 2014-03-02 19:44

<해체신서>의 해부 도면. 알마 제공
<해체신서>의 해부 도면. 알마 제공
청각에서 시각으로 질서 변환
물질에 대한 실증적 탐구 수용
서구를 지향하는 ‘탈아론’ 촉발
<난학의 세계사>
<난학의 세계사>
난학의 세계사
이종찬 지음
알마·2만2000원

에도 출신 의사인 스기타 겐파쿠(1733~1817)는 메이와 8년(1771년) 봄, 우연한 기회에 네덜란드인에게 해부학책 <타펠 아나토미아>를 구입한다. 곧이어 그는 센주 고쓰가하라에서 한 의사가 시체를 해부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친구 의사들과 함께 해부 현장에 참관한다. “네덜란드 해부도와 대조해보니 그 그림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예부터 중국 의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과는 매우 달랐다.”

스기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의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인체의 구조도 모르고 지금까지 하루하루 의사 일을 해오고 있었다니.” 그와 동료들은 <타펠 아나토미아>를 번역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상태였다. 4년의 악전고투 끝에 번역서 <해체신서>가 완성됐다. 40여년이 흐른 뒤 난학(네덜란드학)은 일본 전역에서 유행하는 학문이 됐다. 1815년, 83살의 스기타는 <해체신서> 번역과 난학의 발전 과정을 적은 회고록 <난학사시>를 썼다. 스기타는 후세에 ‘일본 난학의 개척자’라는 칭호를 얻는다.

<난학의 세계사>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융합’을 추구하며 ‘열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독특한 역사 연구를 선보이고 있는 이종찬 아주대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의 신간이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일본의 근대를 형성하는 데 난학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를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일본이 난학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고, ‘열대’(동남아시아)라는 공간에서 유럽과 능동적으로 접촉했다고 주장한다. 책은 <난학사시> 완역본과 ‘열대의 일본, 중화적 세계를 넘어 유럽으로’라는 글로 이뤄졌다.

지은이는 난학이 메이지 일본의 이념적 토대였다고 주장한다. 한동안 잊혀졌던 <난학사시>는 메이지 시대, 근대 일본의 ‘사상적 대부’라고 불리는 후쿠자와 유키치에 의해 일본 사회에 다시 알려졌다. 후쿠자와는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선인의 고뇌를 볼 수 있으며 그 용기에 놀라고 성의를 느끼며,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난학사시>를 읽으며 ‘일본은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한다’, 즉 ‘탈아입구’에 대한 이론적·정당성을 찾아냈다. “<난학사시>는 ‘중화적 사물의 질서’와 결별하고, 서구를 지향하려는 그의 ‘탈아론’을 촉발시켰던 것이다.”

알려져 있듯, 일본은 17세기 초부터 나가사키 인근 데지마에서 네덜란드와 무역을 시작해 약 200년간 이를 지속한다. 난학은 이곳을 드나들던 네덜란드인들과의 교류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은이는 일본이 유럽 문명과 만난 곳은 단순히 데지마가 아닌, 열대 동남아시아 지역 전역이었다고 주장한다.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17세기 초부터 동남아시아에 대한 식민 지배를 시작했다. 일본은 16~17세기에 막대한 은을 토대로 하여 베트남, 시암(타이), 캄보디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열대 동남아시아에서 무역활동을 전개했다. 심지어 당시 동남아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왜구들은 네덜란드의 용병이 되어 영국과의 전쟁에도 참여했다. 이 둘은 서로를 활용하기 위해 1609년 일본 나가사키에 상관을 설치했다. 지은이는 “16세기 이후 일본은 유럽의 힘에 눌려 일방적으로 문호를 연 것이 아니라 열대 동남아시아 무역 활동을 통해 유럽의 문물을 선별적으로 수용하며 문화접변을 실현해나갔다”고 말했다.

스기타가 <난학사시>에서 썼듯, 일본의 난학자들은 유럽의 의학, 박물학, 지리학, 천문학 등을 접하며 “중국의 학문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깨달아간다. 이들은 ‘말씀’ 위주의 한의학 시각에서 결코 볼 수 없었던 시각 중심의 해부도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근대의 ‘청각 중심에서 시각 중심으로’라는 감각적 위계질서의 변환, 즉 ‘물(物)에 대한 실증적 탐구를 받아들인다. 그들은 또한 데지마를 통해 들어오는 세계지도들을 보며 중국이 더는 지리적으로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난학자들과 동시대(18세기)를 살았던 조선 실학자들에 대해 지은이는 아주 비판적이다. 사무라이 계급 출신이던 일본 난학자들과는 달리 사대부 계급이던 실학자들은 ‘중화’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난학자들은 직접 유럽의 언어를 배워 번역했지만, 실학자들은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유럽 서적들을 수용했다. 상업활동과 학문을 병행했던 난학자들이 노동과 기술을 중시한 반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실학자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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