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요구를 외면하면 정의를 인식해낼 수 없다. 어떤 형태의 패권주의도 배제되는 동시에, 민중이 상자해서 살아가는 화이부동 사회를 형성해가는 문제가 인간이 인간 도리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회를 기획하는 일이 될 것이다.”(2001년 김진균 ‘자본과 근대국가에 내재한 폭력을 넘어 정의를 추구하기 위하여-상자이생을 검토함’ 논문)
민중이 중심이 되는 ‘상자이생’(相資以生·서로 도우며 살아간다)의 사회. 고 김진균(1937. 11.20~2004.2.14)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꿈꿨던 사회다. 오는 14일은 한국 진보적 학술운동의 개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를 맞아 그를 기리는 이들이 모여 기념 행사를 열고 그의 삶을 조명한 평전을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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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기 맞아 평전 출간 김진균기념사업회는 ‘김진균 선생 10주기 행사’를 14일 오후 6시 서울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회관에서 연다. 이 행사와 함께 <김진균 선생 평전-민중을 위한 학문과 실천의 삶>(진인진출판사 펴냄)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평전은 김진균사업회가 2005년부터 준비해왔으며 제자였던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가 집필을 맡았다. 평전은 김진균의 일생을 개인적 삶과 공적인 삶, 학자의 삶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며 연대기적으로 기술한다. 1963년부터 2003년까지 40년 남짓 동안 김진균이 남긴 논문, 저서, 평론, 칼럼 등 여러 형태의 글들을 충실히 인용해 그의 정치 신념과 학문 이론을 전달하고 있다. 홍 교수는 평전 서문에서 “김진균 선생님의 학문과 실천을 사회화의 맥락에서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말했다.
김진균사업회는 이와 함께 ‘제9회 김진균상’ 학술 부문 수상자로 한국전쟁 중 미군의 한반도 폭격의 실체를 다룬 <폭격>의 지은이인 김태우 서울대 평화연구소 인문한국(HK) 연구교수를 선정했다. 사회운동 부문 수상자로는 ‘영덕 핵발전소 유치 백지화 투쟁위원회’의 박혜령 집행위원장과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의 이계삼 사무국장을 뽑았다. 노동운동의 역사 자료를 모으는 단체인 ‘노동자역사 한내’는 특별상을 받는다.
오른쪽 사진은 1991년 5월18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강경대 열사 장례식에 참석한 김진균(왼쪽 둘째). 김진균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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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균의 삶과 학문 그는 1937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1968년 서울대 상대 교수가 된 뒤, 1975년부터 2003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이 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0년대 말까지 김진균은 비교적 ‘평범한’ 교수의 삶을 살았다. 1979년 동생 김세균(현 서울대 정치학과 명예교수)이 연루된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 즉 노동자·농민 교육단체인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박정희 정부가 용공단체로 몰아 탄압한 사건이 터지면서 그의 삶은 크게 변화한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0~1984년 전두환 정권에 의한 해직과 복직,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실천적 지식인의 길을 걷게 된다. 1987년 창립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비롯한 많은 운동단체를 지원했고, 1990년대 이후에도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등 여러 진보 운동에 참여했다.
진보 학술운동도 이끌었다. 1983년 사회학과 제자들과 함께 서울 상도동의 한 여관 3층 창고를 개조해 열었던 ‘상도연구실’은 이듬해 한국 첫 진보적 인문사회과학 학술단체인 한국산업사회연구회(산사연)의 모태가 됐고, 이는 산업사회학회, 비판사회학회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산사연은 인문사회과학 연구모임 활성화를 촉발시켰는데, 그 결과 88년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라는 학술운동 연대모임이 결성된다.
학자로서 김진균이 60~70년대 주력한 것은 미국 사회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한국 사회학’의 정립이었다. 80년대엔 마르크스주의 등 여러 이론을 연구하며 자신의 민중·민족 중심적 이론을 만들어 나갔다. 90년대에는 군산복합체, 정보이론 등으로 연구를 확장했다.
그의 학문 태도는 2002년 12월 행한 마지막 강의에서 잘 나타난다. “학문하는 사람은 자기가 보고 있는 지식과 이론이 기층 민중의 삶에 어떤 효과를 주는가를 가늠해야 한다. … 학자가 직면하는 이론과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 나는 민중과 계급 개념을 지금도 폐기하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는 지구적으로 획일화되고, 불안정 노동이 확산되고 있으며, 남북통일 과제에서 이 개념들이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진균은 정년퇴직 이듬해인 2004년 2월 세상을 떠났다. 그의 관 명정에는 ‘민중의 스승’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서관모 충북대 교수(사회학)는 “그는 진보를 표방했던 여러 학자가 나이 들며 제도권에 흡수되고 점점 보수화되는 것과 달리 끝까지 민중 지향 관점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