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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기업대학의 시대, ‘학교’ 넘어 ‘교육’ 되찾아야

등록 2014-02-02 19:59수정 2014-02-02 21:47

미국에서 1980년대 신자유주의 확산 이후 정부의 교육예산이 삭감되고, 대학이 시장논리에 지배되면서 등록금이 계속 오르고 있다. 사진은 2010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대학(UCLA)에서 학생들이 교육예산 삭감과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미국에서 1980년대 신자유주의 확산 이후 정부의 교육예산이 삭감되고, 대학이 시장논리에 지배되면서 등록금이 계속 오르고 있다. 사진은 2010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대학(UCLA)에서 학생들이 교육예산 삭감과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교육은 혁명의 미래다
스탠리 아로노위츠 지음, 오수원 옮김
이매진·1만4000원

<교육은 혁명의 미래다>는 미국의 진보 성향의 사회학자인 스탠리 아로노위츠(81) 뉴욕시립대 대학원 교수가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미국 제도교육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한 비평서다. 노동계급 출신인 아로노위츠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노동자, 노조활동가, 교육운동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으며, 교수가 된 뒤에도 녹색당, 교수노조 등에 참여하며 사회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지은이는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제도교육의 변천을 미국 자본주의라는 큰 맥락에서 파악하는 한편, 그 결과 나타난 현재 교육제도의 모순들을 저소득층과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그리고 지은이가 보여주는 미국 교육은 한국의 그것과 ‘판박이’처럼 유사하다.

1947년에는 미국 고등학교 졸업자 중 10%만 대학에 입학했지만, 1960년에는 40%, 1990년대에는 62%까지 늘어났다. 이제는 서비스 직종, 전기기사나 배관공 같은 육체노동 분야의 수습직원이 되려고 해도 고교 졸업장 이상의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해졌다. 심지어 “예전에는 학사 학위면 충분하던 ‘인턴’이라는 애매한 자리를 얻으려 해도 경영학 석사(MBA)가 필요할 정도다.” 그러나 대학 졸업장이란 해당 직종이 요구하는 자질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제 ‘학위’란 “직장에 필요한 지식이 아니라, 고임금 직장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사태 때문에 초래된 통제에 기꺼이 복종하겠다는 학생들의 의지를 뜻한다.”

미국의 대학들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확산 이래 본격적으로 ‘기업대학’ 또는 ‘지식공장’으로 재편됐다. 80년대 정부가 교육 분야 예산을 줄이기 시작하자, 대학은 이에 맞춰 “과학과 기술을 민영화하고, 건물 관리와 식당, 서점 같은 서비스를 학교 밖 기업에 맡기고, 예술과 인문학 등 경제적 생존력이 가장 약하고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학과의 예산을 가차 없이 삭감”하기 시작했다. 교과과정(커리큘럼)을 기업의 요구에 맞춰 수정하고, 과학기술 쪽 대학원에서는 기업의 연구를 대신 해준다. 예를 들어 민간 제약회사들은 관련 학과와 특허협정을 맺어 거액을 기부하는 대신 대학에서 개발된 특허 소유권을 가져간다.

학생들 역시 기업논리를 내면화한다. “학생들은 생존경쟁에서 다만 한 등급이라도 올라가야 한다는 절박함을 점점 더 크게 느낀다. 학생들은 커리큘럼의 타당성을 따지게 되고, 학생들이 성찰을 향한 욕망을 잃어버리면서 인문학은 위아래에서 압박을 받게 된다.”

기업 손아귀에 놓인 대학과 학생
미국 교육 문제점 한국과 판박이
교육예산 확대·표준시험 폐지 주장

인건비 절감을 위해 교수 정원을 줄이면서 비정규직 강사가 갈수록 늘어난다. “이들은 정치단체나 시민단체에 참여할 시간은커녕 자기 공부를 할 시간조차 없다. 이들의 자리는 대학 피라미드의 밑바닥이며, 삶은 끝없는 업무로 가득 차 있다.” 정규직 교수 역시 일부 스타급 교수들을 제외하고는 임금 하락, 종신재직권 축소, 자율권 위축 등으로 그 지위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런 대학의 강사·교수들을 ‘프로페서리아트’(프로페서+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부른다.

아로노위츠는 무엇보다 교육을 통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는 오래된 미국의 신화, 이른바 ‘아메리칸드림’의 허구성에 분노한다. 미국 교육당국과 대학들은 공교육에 일정한 기준 또는 ‘표준’을 충족시킬 것을 요구하지만, “노동계급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는 만성적인 예산 부족으로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 교과과정, 교수법, 시설을 전혀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런 ‘표준’은 학생들이 이미 ‘문화자본’을 소유하고 있다고 전제하는데, 이는 고소득층이나 전문가층의 가정환경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노동계급 출신이 낙제하는 이유는 이미 문화자본을 박탈당했기 때문인데, 보수주의자들은 이를 ‘공부 거부’ 탓으로 돌린다. 결과적으로 “노동계급 학생들은 대학 서열 최하위 대학에만 들어갈 수 있다. 이 대학들은 계급 이동의 기회라는 형식적 평등을 보장한다. 하지만 실제론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이제 진정한 ‘교육’(education)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 책의 원제 ‘학교교육에 반대한다’(Against Schooling)에서 말하듯, 아로노위츠는 ‘학교교육’을 넘어 진정한 ‘교육’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 졸업장이 구직의 필수 요건이기는 하지만 학교교육과 교육을 혼동하면 안 된다. 분명 학교교육은 교과 훈련과 졸업장 체계를 통한 인력양성 제도다. 그러나 학교는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하는 ‘세계를 향한 애정’과 ‘아이들을 향한 애정’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요구와 반대로 사회, 문화, 직업적 위계에 순응하라고 가르친다.”

지은이는 초중고 교육과 관련해 “교육의 본질과 범위, 학교의 한계에 대한 대화”, “자신이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존중하고, 계급에 상관없이 아이들이 진정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돕고 싶어하는 진정한 지식인 교사”, 충분한 교육예산과 표준시험 폐지를 요구하는 학부모·학생·교사 운동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또한 아이들이 “남은 인생을 대비하는 데 필요한 지식(교양, 직장 구하는 법, 단결하는 법, 투쟁하는 법, 사랑하고 미워하는 법 등)을 학교 밖에서 얻을 가능성 또한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학교육과 관련해서는 1960년대의 ‘뉴욕 자유대학’ 같은 대안대학, 교수노조운동의 활성화, 성인을 위한 노동자 교육 센터를 강조한다. 강연문과 기고, 논문 등을 모아 엮은 탓에 중복되는 내용이 눈에 띄고,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아쉽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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