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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위한 과학” 외친 좌파 과학자들의 역사

등록 2014-01-19 19:45수정 2014-01-19 22:06

1930년대 영국의 좌파 과학자들은 케임브리지대학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사진은 1935년 존 데즈먼드 버널(뒷줄 가운데)과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의 결정학 실험실 사람들. 이매진 제공
1930년대 영국의 좌파 과학자들은 케임브리지대학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사진은 1935년 존 데즈먼드 버널(뒷줄 가운데)과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의 결정학 실험실 사람들. 이매진 제공
과학을 사회 변혁의 원동력 규정
노조 만들고 공공지원 확대 주장
노동 현장의 위험한 관행 폭로

과학…좌파
게리 워스키 지음, 김명진 옮김
이매진·1만원

바깥세상에서 단절된 채 실험실에서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실험과 관찰에 몰두하는 모습. ‘과학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정말 과학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초월해 자유롭게 ‘진리탐구’를 수행해나갈 수 있을까? 과학지식은 정치, 사회 등과 무관한 ‘중립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일까?

<과학…좌파>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실험실 밖으로 뛰어나갔던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미국의 과학사 연구자인 게리 워스키가 2006년 프린스턴대 과학사 워크숍에서 발표했던 논문을 옮긴 책으로, 원제는 ‘자본주의적 과학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다. 과학사 등 과학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에게는 조금 낯선, 20세기 ‘과학좌파 운동’의 역사가 구체적인 서술 대상이다. 이는 다시 1930~1940년대 영국의 과학운동(‘구 과학좌파’)과 1968년 이후 미국과 영국의 급진과학운동(‘신 과학좌파’)으로 나눠지는데, 워스키는 전자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후자에는 자신이 직접 활동가로 참여했다.

첫번째 운동의 주축은 존 데즈먼드 버널, 존 홀데인, 랜슬롯 호그번, 하이먼 레비, 조지프 니덤, 패트릭 블래킷 등으로 대표되는 30여명의 영국 과학자들이었다. 이들의 사회적 배경은 “가난한 노동계급에서 자유주의적 지식 귀족층까지” 다양했고, 전공 역시 핵물리학, 유전학, 생물학, 화학, 엑스선 결정학 등으로 여러가지였다. 그들의 둥지는 1930년대 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좌파 학생운동세력이 있던 케임브리지대의 캐번디시연구소와 던생화학연구소, 런던대 버크벡칼리지 등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신념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의 대표주자인 버널은 1939년 발표한 <과학의 사회적 기능>에서 과학을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변혁의 원동력으로 봤고, 이런 과학의 잠재력은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만 온전히 발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와 민간 부문의 연구 시설에 있는 과학자와 기술자의 노조를 조직했고, 공공지원을 받는 연구개발을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파시즘 희생자들을 지원했고, 나치와 우생학협회의 사이비 과학적 인종주의에 맞섰다. 이들은 라디오방송, 신문 기고, 대중서 출간 등을 통해 20여년 동안 대중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확산시켰다. 그들이 학생이나 동료 과학자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그들이 ‘성공한 과학자-활동가’의 역할모델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왕립학회 회원이었고, 일급 과학자였고, ‘천재’로 대접받았다. 그들은 “과학에서 높은 지위와 성취를 달성했으면서도 자신들이 ‘건전한’ 인물로서 가진 명성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일을 결코 회피하지 않았다. 과학 노동자들이 시민이자 전문가로서 훌륭한 일을 하고 사회에 혜택을 줄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운동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점차 사그라졌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는 이들의 과학적 낙관주의에 찬물을 끼얹었고, 냉전이 확산되면서 이들은 점차 학계에서 따돌림을 받았고, 자신의 전공 분야를 바꾸거나 영국을 떠났다.

‘신 과학좌파’는 ‘군대-과학-산업복합체’가 그 모습을 명확히 드러낸 1960년대에 등장했다. 1968년 미국과 유럽의 대규모 학생운동, 즉 ‘68혁명’과 베트남전 등이 촉매제로 작용했다.

영국의 ‘급진과학운동’은 ‘과학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영국협회’(BSSRS)와 여기서 발행하는 <민중을 위한 과학>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협회의 ‘위해분과’는 노동 현장의 위험한 관행을 폭로하고 이런 관행을 뒷받침하는 고용주에 편향된 과학을 부각시켰고, 인종주의적 심리학자와 생물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비판했다. ‘과학과 여성 분과’에서는 과학이론에 페미니즘 시각을 도입했고, ‘급진통계학 분과’에서는 통계학의 오용을 폭로하며 “노동자, 소비자, 공동체 활동가들이 온갖 기성체제의 시각에서 제공되는 (소위) ‘과학적’ 정당화를 이해하고 여기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회보와 안내서를 발간했다.” 또다른 이론지인 <급진과학저널>은 “핵발전, 정보통신기술, 생명공학 같은 거대과학과 첨단 기술의 사회적 구성과 함의를 다룬” 논문들을 실었고, “실험실이 어떻게 운영되고 감독받는지 기층의 관점에서 쓴 글을 기고하라고 현장 과학자들을 독려했다.”

1980년대 이후 대처주의 등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며 두번째 운동 역시 힘을 잃어갔다. 이는 과학 분야뿐 아니라 현실 정치와 지식사회에서의 “전통 좌파의 패배”라는 전체 상황과 연결돼 있었다. 이제 영국은 사영화(민영화), 시장화, 규제 완화, 세계화가 과학, 기술, 의학의 구조와 과정을 유럽 다른 곳보다 훨씬 크게 변화시킨 나라가 됐다. 한때 과학 좌파운동의 본산이었던 케임브리지대학은 이제 “‘과학공원’으로 가득 차 있고, 전지구적 기업가들을 상대로 사업 협상에 몰두하는 곳이 됐다. 케임브리지의 첨탑들은 학문이 아닌 수익을 꿈꾸고 있다.”

지은이는 “현재 주류 정치와 매체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와 경제, 신자유주의, 기술과학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대대적인 대항 헤게모니 공격을 감행하는” 과제를 수행할 ‘세번째 운동’에 대한 희망을 언급하며 책을 맺는다. “세계화를 향한 여러 불만들을 지배적 사회 질서에 맞선 좀더 근본적인 도전으로 전환시키려는 이들의 과제는,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양심과 지도력을 더욱 고취하며, 승리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담대한 희망을 품도록 우리 모두를 고무하는 데 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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