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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상품’ 시장주의 언어 팽배” “언론 이념적 언어 넘쳐”

등록 2013-12-03 19:34수정 2013-12-03 20:37

 한겨레말글연구소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연 ‘언론언어와 소통, 민주주의’ 주제의 연구발표회에서 나익주 전남대 영미문화연구소 연구원(오른쪽)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은 토론자인 김진해 경희대 교수, 가운데는 박창식 한겨레말글연구소장. 박종식 기자 <A href="mailto:anaki@hani.co.kr">anaki@hani.co.kr</A>
한겨레말글연구소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연 ‘언론언어와 소통, 민주주의’ 주제의 연구발표회에서 나익주 전남대 영미문화연구소 연구원(오른쪽)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은 토론자인 김진해 경희대 교수, 가운데는 박창식 한겨레말글연구소장.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겨레말글연구소 ‘언론언어’ 발표회

교육상품·교육수요·명품초교…
경쟁 기반한 시장만능 프레임
언론·정부·학교언어에 짙게 배

진보-보수 이념적 용어 많은데
핵심 전달할 정확한 단어 써야
“다양한 교육상품이 나와야 한다”, “교육도 이젠 서비스 시대”, “명품 초등학교를 아시나요”,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 확대”, “우수학생 입도선매용”…. 언론 기사와 정부 발표문, 학교와 학원의 선전물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들이다. ‘교육’은 일종의 ‘상품’이라는 전제가 은연 중에 깔려 있는 비유들이다. 이런 언어 사용은 교육에 대한 시장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됐으며, 현재 한국 사회의 교육관을 지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겨레말글연구소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로 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언론언어와 소통, 민주주의’ 주제의 제9차 연구발표회에서 나익주 전남대 영미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삶을 지배한는 교육 은유: 시장만능주의 프레임을 중심으로’라는 글을 발표해 “현재 우리 사회에는 교육을 시장 만능주의 프레임에서 이해하는 은유적 개념화를 예시하는 언어 표현이 널리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

나 연구원은 ‘은유’를 어떤 개념 영역에 대한 경험을 다른 개념영역에 대한 경험에 투사하여 이해하는 인지 기제로 보는 ‘개념적 은유이론’을 소개한 뒤, 현재 한국사회에서 ‘교육’을 기술하는 다양한 언어 표현을 통해 ‘교육’ 개념을 한국인들이 은유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교육에 대한 전통적 은유는 교육을 식물 재배(“교육은 사람들을 길러내는 일”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교육”)나 건물(“공교육의 붕괴” “교육의 토대”), 여행(“교육 여정을 담은” “교육의 최종 목적지”), 환자(“교육의 고질”)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시장 만능주의 은유라고 나 연구원은 지적했다. 이는 교육, 교육기관, 교육자, 교육활동, 교육과정 등을 모두 상품으로 이해(“학교 교육 품질 관리” “교육 서비스” “명품 초등학교” “명품 교사가 되자”)한다. 또한 학교와 교사는 교육의 공급자 또는 생산자로, 학생·학부모는 수요자 또는 소비자(“소비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교육체제” “맞춤형 명품 생활지도 프로그램”)로 본다. “산업체 수요에 맞는 인재 양성” 같은 표현에선 학생이 상품이 되고, 국가와 기업·사회는 구매자, 대학은 중간상인이 된다.

나 연구원은 “미국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교육을 받을 것인지를 시장이 결정해야 한다고 믿고, ‘경쟁’과 ‘소비자’ 선택의 이슈를 학교교육에도 적용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에, 그리고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모든 미국인이 적정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며 “위에서 살펴본 각종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무한경쟁과 시장 만능주의로 특징지어지는 보수주의 관점은 우리의 마음속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다른 분야에서도 보수주의 프레임이 우세하지만, 특히 교육분야에서는 절대적인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프레임이 우리 삶을 지배하면서 우리 사회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은 교육 때문에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보수주의 경제 프레임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이 은유적 개념화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다른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경봉 원광대 교수(국어국문학)는 ‘국어정책에서 개인의 권리와 국어의 공공성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민주적인 표준어 정책의 의미’라는 글에서 “표준어 정책의 방향을 모색할 때 언어의 ‘민주적 합의’와 ‘민주적 통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적 합의와 관련해 현실 언어를 바탕으로 하여 기술된 표준 사전과 표준 문법, 표준 화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며 “이때 현실 언어는 지역, 세대, 성별, 계층의 언어사용 양상을 균형있게 파악한 결과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민주적 통제의 핵심은 국어 정책 기관과 일반 국민이 언어 통제의 공동 주체가 됨으로써 공공언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라며 “법률, 의료, 과학기술 등 전문지식을 생산하는 집단에 설명의 책임을 부과하고 국가와 시민들이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것이 전형적 예”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최인호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은 ‘언론 속의 이념언어’ 발표 글에서 일간지와 인터넷매체에 수록된 기사 110여건을 분석해 언론에서 ‘이념언어’라고 할 말들이 어떤 것이 있고 쓰이는 모습은 어떤지를 분석했다. 최 연구위원은 “언론이 독자에게 온전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사건이나 정책을 두고 개념이 모호한 ‘진보’, ‘보수’ 양론이 아닌, 사안에 따라 좀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용어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김일성 주체사상을 주장하는 이는 ‘종북주의자’가 아닌 ‘주체사상론자’, 경제성장을 주장하는 사람은 ‘보수’나 ‘우파’라는 포괄적 지칭이 아닌 ‘경제성장론자’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박창식 한겨레말글연구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언어’ 발표 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언어와 의사소통 스타일을 분석한 뒤 “종합적으로 볼 때 박 대통령은 너무 적게 말하고, 너무 적게 소통하고 있고, 듣는 기회도 적어 보인다. 또한 정부의 정책 목표가 명확한 언어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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