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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곱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행운

등록 2013-12-01 20:05

카를 푀르스터가 만든 보르님 정원의 한여름. 아래는 자신이 육종한 제비고깔을 보고 있는 푀르스터. ⓒ게리 로저스, 라이마르 길젠바흐
카를 푀르스터가 만든 보르님 정원의 한여름. 아래는 자신이 육종한 제비고깔을 보고 있는 푀르스터. ⓒ게리 로저스, 라이마르 길젠바흐
‘독일 정원의 아버지’ 에세이 모음
아름다운 세상 꿈꾼 평화주의자
딸이 쓴 책엔 실감나는 정원 사진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
칼 푀르스터 지음, 고정희 편역
나무도시·1만5000원

내 아버지의 정원에서 보낸 일곱 계절
마리안네 푀르스터 지음, 고정희 옮김
나무도시·1만5000원

1년은 사계절이 아니다. 일곱 계절이 있다. 초봄(2월말~4월말), 봄(4월말~6월초), 초여름(6월초~6월말), 한여름(6월말~8월말), 가을(8월말~11월초), 늦가을(11월초~12월초), 겨울(12월초~2월말).

독일의 숙근초(여러해살이풀) 육종가이자 정원사였던 카를 푀르스터(1874~1970)의 말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독일의 일반 주택 정원에서는 회양목과 상록수, 몇몇 화초 정도를 심는 것이 전부였다. 꽃은 대개 일년생이어서 겨울에 다 죽어버리고, 정원에서 꽃은 봄에서 여름 정도에만 볼 수 있다는 통념이 있었다. 푀르스터는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꽃이 피어 있는 정원, 겨울에도 아름다운 정원을 추구했다. 이것이 그의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는 개념이다.

이런 정원을 만들고자 그가 평생 매달린 작업이 숙근초 품종 개량이다. 숙근초는 여러해 동안 살며 해마다 꽃을 피워낸다. 풀협죽도, 아이리스, 제비고깔, 구절초, 아네모네, 앵초, 옥잠화, 원추리 같은 꽃들이다. 푀르스터는 야생 숙근초를 개량해, 더 아름답고 더 오래 꽃이 피어 있고 더 튼튼한 362종의 숙근초 신품종을 개발했다. 특히 그는 파란 꽃을 피우는 제비고깔을 유난히 사랑하여 110종을 새로 만들어냈다. “왜 그렇게 많은 품종이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수선화만 6천 종, 아이리스가 4천 종, 달리아가 3천 종에 장미가 6천 종인 걸 생각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파란 꽃을 피우는 제비고깔 100여 종 정도 만드는 것쯤 묵인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정원 철학은 독일 포츠담에 있는 그의 보르님 정원에서 구현됐다.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카를 푀르스터에 관한 책 두 권이 나란히 번역·출간됐다. 평생 27권의 책을 썼던 푀르스터의 에세이를 추려 엮은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과 그의 딸이자 역시 정원사인 마리안네가 보르님 정원의 1년을 사진과 함께 기록한 <내 아버지의 정원에서 보낸 일곱 계절>이다. 그의 책이 국내에 소개된 건 처음인데, 올해 열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카를 푀르스터 정원’이 조성된 것을 계기로 번역이 추진됐다.

푀르스터의 글에서는 꽃과 자연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배어나온다. “예전엔 여름휴가를 떠난다는 건 사랑하는 꽃들과의 작별을 의미했다. 이젠 그런 작별의 슬픔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천국 문 앞까지 갔다가 되돌려 보내질 것이다. ‘자네는 아직 할 일을 다 못했네. 다시 한번 살아서 제대로 하고 올 것. 아름다운 땅이 선물한 것들을 충분히 알아보지 못하고 불경했어!’” 늦가을까지 꽃의 세계를 즐길 수 있게 됐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쓴 글이다. “풀협죽도를 모르고 산 인생은 실수 정도가 아니라 여름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그는 그의 정원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항상 ‘정원을 가꾸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한다.

푀르스터는 “자연은 신의 커다란 방주”라고 믿었던 신비주의자였다. “나무 잎사귀 하나, 구름 한 조각을 깊이 사랑하나, 우주에 새겨져 있는 그 근원을 이해하고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죽고 말 것이다. 인간은 늘 두 가지를 필요로 한다. 분명함과 비밀스러움이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세상이 꽃과 같이 아름다워지길” 원했던 평화주의자이기도 했던 그는 구십 평생을 살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목격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우리가 너무 안이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좀더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막았어야 했어요. 이제 우리는 비극을 초래한 장본인들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나의 투쟁>(1925년 나온 히틀러 자서전)이 나왔을 때 적신호를 느꼈어야 했는데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몇년 사이 부쩍 늘고 있는 정원에 관한 책은 크게 정원 가꾸기에 대한 실용 정보를 정리한 책과 다른 나라, 특히 유럽의 정원과 그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나뉜다. 이 두 책은 후자에 가깝다. <일곱 계절의…>는 사진이 모두 흑백이어서 실제 그가 가꾼 정원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조금 아쉬운데, 이 아쉬움은 사진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지는 <내 아버지의…>에서 어느 정도 해소된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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