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불평등과 노동의 불안정성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경제민주화는 최근 몇년 새 한국 사회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사진은 올해 1월 울산 현대자동차 3공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작업하고 있는 모습. 울산/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진보학자 13인 공동작업 첫 권
서구 경험 토대 사민주의 지향
긴축 아닌 ‘재정 건강성’ 주장도
서구 경험 토대 사민주의 지향
긴축 아닌 ‘재정 건강성’ 주장도
이병천·전창환 엮음
돌베개·2만5000원 ‘경제 민주화’, ‘경제 민주주의’가 한국 사회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지 꽤 오래됐지만, 그 정의와 이론 틀, 구체적 정책 내용 등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진보적 지향을 가진 국내 경제·사회학자 13명이 경제 민주화의 이론적 토대를 놓기 위해 공동 작업한 결과물이 책으로 나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와 전창환 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가 엮은 <사회경제 민주주의의 경제학-이론과 경험>이 그것이다. 이병천 교수는 책머리에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기초 연구이면서 교육용 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나온 책은 2부작 중 첫 권으로, 이론과 서구의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의 이론, 역사, 현안을 담은 두번째 권을 위한 작업이 내년 초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경제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그 정의가 쉽지 않고, 이념 지향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도 크게 달라진다. 이 교수는 서장에서 ‘사회경제 민주주의’를 “자본주의를 ‘인간의 얼굴’을 가지게끔 민주화하는 모든 다양한 지향을 포괄하는 경제학의 사고”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다소 포괄적이지만, 실제 이 책의 지향점은 상당히 뚜렷하다. 필자들 간에 약간의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사회민주주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경제 민주주의의 청사진으로 불러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 책 제목의 최종 후보 중 하나는 ‘사회민주주의 경제학’이었다. 사회민주주의 역시 논쟁적인 개념인데, 이 교수는 이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모순과 한계를 통감하고 그것을 민주적 절차를 통해, 민주적·사회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더 나은 경제의 길로 나아갈 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사상과 이론”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지향점은 현재 경제민주화 논의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새누리당이나 일부 개혁진영 인사들의 자유주의(내지 진보적 자유주의) 성향의 경제민주화 담론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것이다. 이 책은 또한 마르크스 <자본론>에 기초한 비판경제학과도 거리를 둔다. 이런 이념 지향은 여러 분야 이슈를 다루는 각각의 논문에서 구체화된다. 이병천 교수는 총론 성격의 ‘소유, 통제, 축적: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화해와 불화’에서 경제민주화의 여러 대안으로 단절적 전환모델(국가사회주의, 시장사회주의), 틈새적 전환모델(소공동체주의), 공생적 전환모델(사회민주주의 A·B)을 제시한 뒤, “역사적 실험으로 본다면 사회민주주의 대안이 민주성과 효율성 두 가치 기준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달성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민주주의 에이(A)는 국유화를 기본 형태로 포함하는 민주적 자본주의 혼합경제 방안, 사회민주주의 비(B)는 사적 자본의 민주적 통제와 이를 통한 점진적 사회화 방안이다. 전자의 예로는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등을, 후자의 예로는 스웨덴, 독일 등을 들 수 있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사회적 경제와 경제 민주주의’에서 “시장경제 안에서는 노동조합이, 시장경제 바깥에 있는 사회적 경제에서는 협동조합이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할 핵심 주체”라고 전제한 뒤,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협동조합, 캐나다 퀘벡 지역 등의 사례를 들어 사회적 경제를 설명한다. 이상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노동자 경영 참여 문제를 다룬다. 그는 ‘노동자 경영 참여와 노동민주화’에서 “경제 주체의 민주적 참여와 결정을 보장하기 위한 가치와 이념을 경제 민주주의라고 정의한다면 노동자의 경영 참여는 기업 민주화의 핵심적 제도”라고 말한다. 이는 기업 민주화를 총수의 전횡 견제와 소액주주의 권리 보장 정도로 한정하는 시각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는 경영 참여의 종류를 소유 및 자본 참여, 이익 및 분배 참여, 의사결정 참여로 나눈 뒤, 이 중 의사결정 참여의 중요한 사례로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를 소개한다. 금융 문제를 다룬 ‘금융자유화에서 금융민주화로’에서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는 “금융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완전고용과 복지를 확립하는 데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시장실패로 이어지는 금융기관의 사적 이윤동기 규제와 국경을 넘는 자본이동 통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재정의 공공성과 개혁과제’에서 보수진영의 ‘재정 건전성’ 프레임에 맞서 ‘재정 건강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전자는 재정 균형을 이루기 위해 재정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재분배와 경제 안정을 위한 재정 지출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재정 수입을 늘려 균형을 맞추는 ‘적극적 균형재정’, 즉 재정 건강성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새로운 발전 모델의 모색’에서 신자유주의적 발전 모델인 ‘워싱턴 컨센서스’를 비판하고, ‘민주적 발전국가에 기초한 평등주의적 발전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이를 위해 정부 정책이 국민 대다수의 정치경제적 이해를 대변하도록 만드는 노동자와 서민의 정치적 조직화 노력,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외에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결합(전용복 경성대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공유와 협력에 기초한 지속 가능한 경제(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기업집단 개혁(송원근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복지국가 유형 분석(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진보적 연금개혁의 방향(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덴마크의 유연안전성 모델(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미국의 뉴딜개혁(전창환) 등이 다뤄졌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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