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표현·통신의 자유>에서 “학술적으로 표현의 자유의 각론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한 때가 됐다”고 말한다. 논형 제공
실천가적 이론가 박경신 교수
국내외 논쟁 사례 분석·해설
“최고 권위 규범은 헌법이지만
헌법 조문 만으로는 각론구성 힘들어”
바탕엔 ‘사상의 자유 시장’ 신념
국내외 논쟁 사례 분석·해설
“최고 권위 규범은 헌법이지만
헌법 조문 만으로는 각론구성 힘들어”
바탕엔 ‘사상의 자유 시장’ 신념
박경신 지음
논형·4만8000원 한국 사회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가장 전투적인 실천가요 이론가 박경신(42)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새 책 <표현·통신의 자유이론과 실제>를 출간했다. “유엔 인권위원회, 유럽 인권재판소, 유엔 인권이사회 등의 국제인권기구와 다른 나라의 표현의 자유 원리 확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 연방대법원 등 주요 국가기구들이 천명한 표현의 자유와 보편적인 원리들을 밝히고, 이 원리가 주요 국가에서 어떤 구체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았는지를 확인하고, 이에 비추어 우리 사회 내부의 논쟁들에 대한 제도적인 차원의 해답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박 교수는 2008년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 표현의 자유 논쟁이 이른바 ‘시국사건’들에서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광우병 보도,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 미네르바 사건 등으로 대상이 확산되면서 ‘표현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나?’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책임의 균형점은 어디인가?’로 논점이 옮아갔다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학술적으로 표현의 자유의 각론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한 때가 됐다.” 750쪽 두툼한 책은 그런 각론들을 다루는 국내외 수많은 논쟁 사례와 그의 해설 및 논평으로 채워져 있다. 마치 법학전문대학원 수업용 학술교재처럼 짜였다는 말에 그는 “그렇다”며 “실제로 수업에 사용할 계획이고, 다른 로스쿨에서도 교재로 쓰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과정을 거친 이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는 논쟁은 주로 법적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것을 규정할 최고 권위의 규범은 헌법이 될 수밖에 없지만, “대한민국 헌법 조문이나 기존 판례만으로는 구체적인 균형점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과 역사교과서 수정 등 최근의 국내 상황을 보더라도, 국가기관이 편향된 주장을 유포하면서 국민의 사상에 영향을 끼치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고 했고, “박근혜 정부 들어 더욱 고차원적인 표현의 자유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고차원이란 말은 논쟁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얘기가 아니라 예전보다 훨씬 더 심각한 표현의 자유 침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최근의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논란을 언급하며 시작하는 이 책 제12장 ‘교과서 검인정제도의 본질과 정치적 중립성’에서 박 교수는 미국의 판례를 들이댄다. 미국 판례에서 학생의 권리는 학부모, 교사, 학교, 국가 곧 교육의 4대 당사자들이 제약할 수 있지만 그들의 그런 권리는 학생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이 보호되는 한도 내에서만 행사될 수 있다. 국가의 교과서 수정은 국가 또는 현 정권에 우호적인 내용만을 싣도록 하는 ‘사전 검열’이 될 수 있고, 듣기를 원치 않는 학생들을 ‘감금된 청중’으로 만든다. “국가가 교육학적 이유와는 관련없는 정치적인 동기로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하는 것은 학생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전 검열인 동시에 ‘견해차에 따른 차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명백한 위헌이다.” 한국 교육부가 “좌편향을 수정하겠다”며 역사교과서 수정에 나선 것도 “학생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견해차에 따른 차별’에 해당하는 사전 검열로 지극히 위헌적”인 행위다. 뿐만 아니라 학교, 교사, 부모들의 헌법적 권리도 유린했다고 박 교수는 지적한다. 제1장 ‘진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의 위헌성’에서는 “적시된 사실이 진실인 경우에도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처벌받도록” 한 형법 제307조 제1항이 도마에 오른다. 언론출판의 자유가 지닌 중요성에 비기면, 그런 (명예가 아닌) ‘허명’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약하는 건 위헌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선진국에선 사문화된 진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여전히 허명을 보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허위 적시 명예훼손의 경우도 허위인지 아닌지 규명하지도 않은 채 보도기관을 처벌하면서 허위 여부 규명 책임을 검찰이 아니라 보도기관에 떠넘긴다. 우리와 달리 미국은 인용된 말이 공익적 사실일 경우 허위 여부에 대한 책임을 인용자에게 지우지 않는 중립보도 면책 원리라는 걸 적용한단다. 책은 이런 식으로 소비자 불매운동의 합법성, 모욕죄·위력에 의한 업무 방해죄의 위헌성, 국제인권법에 비춰 본 명예훼손 형사처벌제도의 낙후성, 행정기관 심의·방송 공정성 심의의 헌법적 한계, 박 교수 자신이 한때 논란의 주인공이 됐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 내용 심의의 위헌성, 인터넷 게시글 삭제·인터넷 실명제·이메일 압수수색의 위헌성, 표현의 자유와 저작권의 한계, 통신비밀보호법의 헌법적 평가, 에스엔에스(SNS) 매체 규제 문제 등을 조목조목 따지고 대안을 모색한다. 토머스 에머슨이 이런 말을 했단다. “불법 표현물일지라도 그 표현물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는 건 사상의 자유 시장 기능에 마이너스다. 사상의 자유 시장에는 모든 표현이 플러스가 되기 때문이다. 상스러운 표현은 스스로 비난받으면서 고상한 표현을 호명하고 불법적인 표현은 합법적인 표현을 불러낸다. 사상의 자유 시장 이론에 따르면 불법적인 표현도 일단 사상의 자유 시장 진입은 허용하고 문제가 있다면 사후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게 맞다. 표현이 해악을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청자-화자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발생하므로 표현한 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사전에 표현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더욱 안 된다.” 박 교수 자신이 ‘사상의 자유 시장’ 신봉자인 듯하다. <표현·통신의 자유>를 관통하는 것도 바로 그 신념이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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