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웅 평론가. ⓒ양윤의
실험적 시인들 편에 섰던 권혁웅
까다로운 상징과 거리두기
도봉공원·불가마·감자탕집 같은
세상의 잡스러운 이모저모 묘사
4대강 사업 등 비판한 시도 실어
까다로운 상징과 거리두기
도봉공원·불가마·감자탕집 같은
세상의 잡스러운 이모저모 묘사
4대강 사업 등 비판한 시도 실어
권혁웅 지음
창비·8000원 평론가 권혁웅은 2000년대 젊고 실험적인 시인들에게 ‘미래파’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적극 옹호하면서 논쟁의 한복판에 선 바 있다. 그런데 정작 시인 권혁웅이 쓰는 시는 그가 옹호하는 미래파와는 거의 정반대라 할 경향을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세속이 그 지극한 경지 안에서 스스로를 들어올렸으면 했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 되는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에 붙인 ‘시인의 말’의 한 대목이다. 이 말마따나 그의 시는 세속(世俗)의 잡스러운 이모저모를 실제에 가깝게 재현하는 데에 치중한다. 미래파 시들이 특장으로 삼는 전위적 실험이나 까다로운 상징과 그의 시는 멀찌감치 거리를 둔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가 그저 행갈이 한 산문적 진술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미래파와는 다른 방식의 시 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권혁웅의 시는 훌륭하게 보여준다. “지금 애인의 울음은 변비 비슷해서 두 시간째/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몸 안을 지나는 긴 울음통이 토막 나 있다/ 신의주찹쌀순대 2층, 순댓국을 앞에 두고/ 애인의 눈물은 간을 맞추고 있다”(<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부분)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管)이다”(<봄밤> 부분) 인용한 두 시는 권혁웅 시작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시집 표제작 <애인은…>은 순댓국집에서 아마도 이별을 앞두고 마주 앉은 연인을 등장시킨다.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두 시간째 울음을 우는 애인과 그런 애인을 하릴없이 지켜보는 ‘나’의 처지를 다름 아닌 순대에 빗대 표현하는 솜씨가 능란하다. 지난해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봄밤>은 천변(川邊) 벤치에 누워 잠든 취객에게 바쳐진다.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의 “캄캄함 혹은 편안함”을 잔잔하게 그린 시에서 모종의 온기가 느껴진다면 그것은 대상을 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 덕분일 것이다.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거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같은 구절을 보라. 이 두 시에서 보듯 권혁웅의 시는 우아함이나 고상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하거나 누추한 서민들의 삶을 즐겨 다룬다. 도봉근린공원, 천변체조교실, 불가마 같은 변두리 공간 또는 의정부부대찌개집이나 조마루감자탕집, 포장마차 같은 식당이 그의 시가 태어나는 자리들이다. 이런 공간에 서식하는 이들이란 구조조정에 희생된 가장(<24시 양평해장국>), “투덜대길 좋아해서/ 소음기 뗀 오토바이를” 모는 중국집 청년(<야쿠르트 아줌마와 중국집 청년>), “종이상자가 주소지”인 노숙자(<삼국지 열전-노숙>) 들이기 십상이다. “시금치는 시큼해지고 맛살은 맛이 살짝 갔지”(<김밥천국에서>)라거나 “그녀가 어두육미도 아니고/ 내가 용두사미도 아니고”(<우동을 먹으며>), “조각난 조개의 조변석개”(<포장마차는 나 때문에>)와 같은 특유의 말장난 역시 시집 읽는 재미를 준다. 시인의 발랄한 언어 감각이 날선 현실 비판과 만날 때 <산해경>을 연상시키는 이런 시가 빚어진다. “남해로 나가면 처음 만나는 나라가 삽질국(揷質國)이다 해내로 자식을 위장전입 보낸 아비 하나가 그리움에 못 이겨 큰 삽으로 흙을 퍼 강이란 강을 죄다 메우고 있다 그 너머에 고소영국(高所嶺國)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다리가 넷이요 집이 여섯이며 군이 면제다 강부자국(江富子國)이 인근에 있는데 둘이 같은 나라라 말하는 이도 있다 어린지국(魚鱗支國)이 그 남쪽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몸에 어린이 돋아서 민망한 짓을 잘하며 그 말은 짖다 만 영어 같다”(<오호십육국 시대> 부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양윤의 제공
이슈4대강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