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의 헤닝 마이어 기본가치위원회 위원(오른쪽)과 크리스티안 켈러만 전략·콘텐츠 부국장이 사회민주주의의 쇄신을 모색하는 ‘좋은 사회’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굿소사이어티’ 이론가
마이어·켈러만 인터뷰
마이어·켈러만 인터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거센 바람은 한풀 꺾였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이념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금융위기 뒤 유럽에선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 세력 안에서 ‘좋은 사회’(굿 소사이어티) 담론이 부상하면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지구적으로 지향해야 할 새로운 정치경제 모델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좋은 사회’론을 주도해온 이론가 두 사람이 한국에 왔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사민당)의 헤닝 마이어 기본가치위원회 위원과 크리스티안 켈러만 전략·콘텐츠 부국장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한국사무소 초청으로 방한해 지난 11일 ‘2013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의 ‘유럽 사민주의의 이노베이션: 좋은 사회 담론’ 특별세션에서 주제발표를 했다. 두 사람은 올해 독일에서 출간된 <좋은 사회>의 공동 편저자다. 켈러만 부국장은 ‘좋은 사회’ 담론의 경제모델을 담은 책 <괜찮은 자본주의>(한국판 제목: ‘자본주의 고쳐쓰기’)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헤닝 마이어 위원과 크리스티안 켈러만 부국장을 15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 위기가 오리라는 예측이 많았다. 5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평가하는가?
“(마이어) 근본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위기 직후에 케인스주의적인 순간이 있었지만 결국 신자유주의는 컴백했다.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의 말처럼 ‘신자유주의는 이상하게도 죽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대안적 정치 이념을 고안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이유다.”
-금융위기는 사민주의 확산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마이어) 사민주의의 원칙은 ‘시장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는 이 원칙이 옳았다는 점을 확인해줬다. 게다가 위기로 인한 충격에서 시민들을 보호하는 현재의 복지제도를 설계하고 확대해온 것 역시 사민주의다. 따라서 이번 위기는 사민주의가 힘을 얻을 절호의 기회가 돼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유럽 사민주의 세력은 1990년대 이후 ‘제3의 길’ 노선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면서, 본디 핵심 이념을 포기하고 다른 정당들과 차별성을 잃어버렸다. 수십년 동안 대안적 정치강령 개발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일종의 ‘지적 무방비 상태’에서 위기를 맞이했다. 대중에게 제시할 정치적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집권한 사민주의 세력 상당수가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해온 터라 대중의 눈에 이들은 금융위기의 ‘공범’으로 보였다.”
-‘좋은 사회’ 담론의 핵심 내용과 목적은 무엇인가?
“(마이어) 지금 사민주의 세력은 정치적 비전을 새롭게 만들고 대중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 유럽 전역의 이론가 및 활동가들이 몇년째 공동작업을 해왔는데, 그 작업의 출발점이 ‘좋은 사회’라는 개념이다. ‘좋은 사회’ 담론의 목표는 시장원리를 모든 것의 우위에 두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 세가지 요소의 균형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국가와 시민사회가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 또한 이는 현재의 경제적·정치적 문제를 철저히 가치 중심으로 분석해 새로운 정치를 수립하려는 접근법이다.”
-가치 중심으로 정치를 수립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마이어) ‘제3의 길’이 유행하던 시기,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마치 시장의 거래 같았다. 여론조사와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통해 유권자라는 ‘고객’의 필요를 파악하고, 이를 충족하는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결과 ‘변혁적 정치’는 사라지고, ‘반응적 정치’만 남았다. 스티브 잡스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중은 우리가 새로운 것을 제시할 때 비로소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세력 역시 새롭고 설득력있는 정치의제 개발에 초점을 맞춰야지 특정 유권자 집단을 목표로 놓고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정치의제를 개발하는, 앞뒤가 뒤바뀐 방식을 취해서는 안 된다. ‘가치 중심 정치’는 특정 사회집단이 아니라 공통의 사회적·경제적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얻고 다양한 사회집단을 단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선거 승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분명한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어가기 위한 수단이다.”
독일 노동자 대표, 기업경영 참여
생산업무 누구보다 잘 파악해
혁신적 아이디어로 경쟁력 키워
임금 등 분배 늘려야 내수 살아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사민주의
국가·시민이 시장 규제하는 방향 -‘괜찮은 자본주의’ 모델의 원칙은 무엇인가? “(켈러만) 위기 원인을 분석한 결과 노동시장 등 여러 분야에서 불균형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금융시장의 변화가 삶의 여러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 일부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지나친 임금을 받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다. 시장을 규제함으로써 균형을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일자리는 좋은 임금을 받아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자리다. 생산성이 향상되고 실질물가가 올라가면 그에 따라 임금이 상승해야 한다. 또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가 충분한 힘을 가져야 하고 재정적으로 튼튼해야 한다. 양적인 성장뿐 아니라 질적인 성장, 인간과 환경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성장이어야 한다.” -성장을 위해 분배를 억눌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켈러만) 성장과 분배가 상충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우리의 주장은 그 정반대다. 분배가 균등할수록 경제성장도 더 건강하게 안정적으로 이루어진다. 소득을 공평하게 분배하면 일반 국민들의 소비 여력이 늘어나 수요가 증대하고 이를 통해 성장이 이루어진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과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이 이를 실증적으로 입증한다. 수출 위주 경제에서 이는 더 중요하다. 소득 분배는 내수시장의 소비가 일어나는 데 아주 중요하다.” -분배가 이루어지는 경로는 무엇인가? “(켈러만) 우선 임금 장치를 통해서 분배가 일어나야 한다. 기업과 노동조합의 임금협상을 통해 임금이 차지하는 몫을 키워야 한다. 이것이 경제민주주의의 핵심 중 하나다. 정부 또한 조세체제와 공공지출 등을 통해 분배정책을 펼쳐야 한다. -한국의 2012년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가 주요 이슈였다. 독일은 경제 민주주의의 오랜 전통을 지녔는데, 핵심적 내용이 뭔가? “(켈러만) 노동자의 경영 참여다. 독일에서는 직원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가 지사를 옮길 때 노동자와 협의해서 결정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의사표현할 수 있는 권리다. 금융위기 때 다른 국가들은 대량실업이 발생했지만, 독일에서는 노사협약을 통해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는 기업들에도 긍정적인 경쟁력 요소다. 노동자야말로 현장에서 생산과 업무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는 당사자다. 그들의 경영 참여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통로다.” -한국에서 독일 경제모델을 배우자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그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켈러만) 가장 큰 강점은 기술력이다. 둘째는 방금 말한 경제민주주의, 즉 공동결정권 제도다. 약점은 노동시장에서 임금 불평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경영자들은 고액 연봉을 받는 반면, 많은 사람들이 저임금에 시달린다.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질 나쁜 일자리가 전체의 20%에 이른다. 이로 인해 전체 구매력이 줄어들면서 내수시장이 침체되고 있다. 교육의 균등한 기회도 장점이었는데 약화되고 있다. 점점 부모의 배경에 따라 자식의 미래가 결정되는 추세로 가고 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생산업무 누구보다 잘 파악해
혁신적 아이디어로 경쟁력 키워
임금 등 분배 늘려야 내수 살아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사민주의
국가·시민이 시장 규제하는 방향 -‘괜찮은 자본주의’ 모델의 원칙은 무엇인가? “(켈러만) 위기 원인을 분석한 결과 노동시장 등 여러 분야에서 불균형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금융시장의 변화가 삶의 여러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 일부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지나친 임금을 받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다. 시장을 규제함으로써 균형을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일자리는 좋은 임금을 받아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자리다. 생산성이 향상되고 실질물가가 올라가면 그에 따라 임금이 상승해야 한다. 또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가 충분한 힘을 가져야 하고 재정적으로 튼튼해야 한다. 양적인 성장뿐 아니라 질적인 성장, 인간과 환경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성장이어야 한다.” -성장을 위해 분배를 억눌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켈러만) 성장과 분배가 상충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우리의 주장은 그 정반대다. 분배가 균등할수록 경제성장도 더 건강하게 안정적으로 이루어진다. 소득을 공평하게 분배하면 일반 국민들의 소비 여력이 늘어나 수요가 증대하고 이를 통해 성장이 이루어진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과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이 이를 실증적으로 입증한다. 수출 위주 경제에서 이는 더 중요하다. 소득 분배는 내수시장의 소비가 일어나는 데 아주 중요하다.” -분배가 이루어지는 경로는 무엇인가? “(켈러만) 우선 임금 장치를 통해서 분배가 일어나야 한다. 기업과 노동조합의 임금협상을 통해 임금이 차지하는 몫을 키워야 한다. 이것이 경제민주주의의 핵심 중 하나다. 정부 또한 조세체제와 공공지출 등을 통해 분배정책을 펼쳐야 한다. -한국의 2012년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가 주요 이슈였다. 독일은 경제 민주주의의 오랜 전통을 지녔는데, 핵심적 내용이 뭔가? “(켈러만) 노동자의 경영 참여다. 독일에서는 직원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가 지사를 옮길 때 노동자와 협의해서 결정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의사표현할 수 있는 권리다. 금융위기 때 다른 국가들은 대량실업이 발생했지만, 독일에서는 노사협약을 통해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는 기업들에도 긍정적인 경쟁력 요소다. 노동자야말로 현장에서 생산과 업무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는 당사자다. 그들의 경영 참여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통로다.” -한국에서 독일 경제모델을 배우자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그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켈러만) 가장 큰 강점은 기술력이다. 둘째는 방금 말한 경제민주주의, 즉 공동결정권 제도다. 약점은 노동시장에서 임금 불평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경영자들은 고액 연봉을 받는 반면, 많은 사람들이 저임금에 시달린다.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질 나쁜 일자리가 전체의 20%에 이른다. 이로 인해 전체 구매력이 줄어들면서 내수시장이 침체되고 있다. 교육의 균등한 기회도 장점이었는데 약화되고 있다. 점점 부모의 배경에 따라 자식의 미래가 결정되는 추세로 가고 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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