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 디 티토의 ‘마키아벨리 초상화’(왼쪽). 피렌체 산타크로체 성당 안에 있는 마키아벨리의 무덤. 무덤 앞에는 “어떤 찬사도 그의 이름에 걸맞지 않다”고 새겨져있다. 민음사 제공
때로는 금서목록에 오르고
때로는 필독서에 올랐던
‘군주’의 이해를 돕는 안내서
출간 당시 정치사회적 배경과
현재 쟁점까지 세세한 설명
때로는 필독서에 올랐던
‘군주’의 이해를 돕는 안내서
출간 당시 정치사회적 배경과
현재 쟁점까지 세세한 설명
곽준혁 지음
민음사·2만8000원 1513년 초겨울의 어느 날,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 작은 마을 3층 벽돌집 안. 2층에 있는 자신의 책상 앞에서 44살의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는 <군주>의 원고를 마치고 감회에 잠겼다. 같은 해 12월10일 마키아벨리는 교황청 대사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책은 군주들이, 특히 신생 군주들이 환영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그 책을 위대한 줄리아노 전하께 바치려고 합니다. … 저는 메디치 군주들이 비록 저에게 돌을 굴리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해도 저를 채용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 이 작품은 만약 그들이 읽기만 한다면, 제가 국가통치술에 관해서 연구한 지난 15년을 허송세월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줄 것입니다.” <군주>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데 메디치 전하께 올리는 글’로 시작한다. 헌정 대상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든 실제 이 원고가 전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마키아벨리는 이후 죽을 때까지 권력자에게 등용되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이 원고를 탈고한 이후 지금까지 500년 동안 마키아벨리와 그의 <군주>는 끊임없이 찬사와 비난, 옹호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사후 5년 뒤 출판된 인쇄본은 교황의 출판 허가를 받기 위해 내용을 대폭 수정했음에도 결국 금서목록에 올랐다. 이탈리아의 조각가 스피나치는 그의 무덤에 “어떤 찬사도 그의 이름에 걸맞지 않다”고 새겼다. 독일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를 “악의 교사”라고 불렀다. 계몽주의 사상가 루소는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아니라 인민을 가르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상적인 독서에 희생됐다”고 개탄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가들 사이에서 그의 저작들은 필독서였다.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트로츠키는 그를 “민주주의 혁명을 보급시킨 정치철학자”라고 칭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 ‘마키아벨리즘’은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함’ 정도로 통하고 있다. 올해 <군주> 탈고 50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다양한 기념사업과 학술회의 등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군주>를 좀더 깊이있게 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가 나왔다. 국내 마키아벨리 전문가인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 공동소장이 펴낸 <지배와 비지배>가 그것이다. 사실 <군주>는 아무 배경지식 없이 읽어도 흥미로운 책이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바로잡으려 애써온 전문가들이 들으면 눈살을 찌푸릴 말이지만, 권모술수와 처세술에 관한 책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이다. “군주가 전쟁에서 이기고 국가를 보존하면 그 수단은 모든 사람에 의해서 항상 명예롭고 찬양받을 만한 것으로 판단될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외양과 결과에 감명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보통 사람들일 뿐이다.” “인간이란 너무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활동에 만족하고 자기기만에 쉽게 빠지기 때문에, 아첨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책 말미의 “신중한 것보다는 과감한 것이 더 좋다. 왜냐하면 운명은 여성이고 만약 당신이 그 여성을 손아귀에 넣고 싶어한다면,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문장은 500년 동안 ‘야심만만한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을 만하다. 하지만 <군주>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고전이 그렇듯이 당시의 정치사회적 환경과 사상적 논쟁 구도, 사용된 언어와 수사학에 대한 이해 등이 필수적이다. 곽 소장의 책은 <군주>를 책의 서두에 있는 ‘헌정사’부터 시작해 마지막 26장까지 순서대로 따라가며 이런 배경지식들과 현재 학문적 쟁점들까지 모두 설명해준다. 일종의 긴 ‘주석서’라고 할 만하다. 예를 들어 헌정사와 관련해 지은이는 왜 마키아벨리가 헌정의 대상을 줄리아노에서 로렌초로 바꾸었는지를 두 인물의 됨됨이와 당시 세간의 평가 등을 근거로 밝혀나간다. 또 마키아벨리의 도도하고 일견 무례하기까지 한 어투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 책이 ‘실패한 구직서’가 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곽 소장은 마키아벨리에 대해 어느 한쪽에 치우친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다. “이상주의자였든 현실주의자였든, 공화정을 꿈꾸었든 군주정을 옹호했든, 분석적이었든 열정적이었든,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든 무신론자였든, 새로운 도덕을 주창했든 도덕을 경멸했든, 참주를 기다린 선동가였든 시민적 자유를 열망한 정치가였든지 간에, 모든 주장들이 그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엇이 옳다고 섣부르게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는 각각 인식론적, 정치적, 수사적 측면에서 세가지 점만은 강조한다. 첫째, 마키아벨리는 고대 정치철학이나 기독교 윤리와 달리 ‘좋은 삶’이 ‘잘못된 행동’ 또는 ‘악덕’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또 당시 기독교가 지배이념이었음에도, 모든 것을 신의 섭리로 이해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주장했다. 둘째, 마키아벨리가 궁극적으로는 로마공화정의 영광을 재현시키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공동체적 인간’이 아니라 ‘이기적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연대의 기초를 찾았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구상은 고전적 공화주의보다 ‘타인의 자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강조하는 근대적 의미의 ‘자유주의적’ 공화주의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셋째, <군주>가 학자, 실제 군주, 일반 대중 등 여러 차원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설득 대상은 ‘잠재적 군주’, 즉 ‘정치를 통해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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