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합진보당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하던 중 통합진보당 당기를 찢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문화사회’ 9월호 특집
민주주의와 시민권리 제한
모든 진보적 의제 실종시켜
신자유주의의 한국적 현상
민주주의와 시민권리 제한
모든 진보적 의제 실종시켜
신자유주의의 한국적 현상
“제1 야당이 북한 활동을 이롭게 하는 안을 소위 개혁안이라 들고나왔으니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이는 종북세력과 간첩들의 활동에 날개를 달아주자는 것이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25일 민주당의 국가정보원 개혁안에 대해 한 말이다.
최근 몇년 사이 확산돼온 이른바 여권의 ‘종북담론’(종북이데올로기)이 ‘이석기 사태’를 계기로 하여 전 나라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모든 비판이 ‘종북’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되치기를 당하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온라인 월간 <문화사회>는 최근 발간된 9월호 특집에서 ‘종북담론의 실체를 밝힌다’라는 주제로 이런 현상을 분석한 글 세 편을 실었다.
정정훈 수유너머엔(N) 연구원은 ‘애국주의와 종북공세, 기득권연합의 영구적 우위체제의 어떤 전조’란 글에서 최근의 ‘종북몰이’ 현상에 대해 “국민들의 국정원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에 대한 분노와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에 대한 요구가 결합돼 폭발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한 기득권연합의 대응책”이라고 분석했다. 정 연구원은 “한국의 보수세력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자신들의 이익 추구가 직접적으로 난관에 처하거나, 그들이 구축한 질서가 저항의 가능성을 강하게 배태할 때, 그 저항을 예방하기 위해 ‘애국주의 담론’을 차용해왔다”며 “이 과정에서 보수세력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로 포장되고 국가의 위기는 곧 국민 모두의 위기가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보수세력이 당면한 위기의 구조는 어떤 것인가. 우선은 1987년 6월항쟁 등에서 나타난 바 있는 대중들의 반체제적 힘이 있다. 이 힘은 일단 제도권 정치 안으로 흡수돼 이른바 ‘87년 체제’가 형성됐지만, 기득권연합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 요인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형성되면서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됐다. 정 연구원은 “이명박 정권 중반기 이후에는 이런 사회체제에 대한 변화 요구가 대중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는 이런 요구가 표현된 담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과 경찰의 불법 대선개입 의혹이 잠재적 위기를 현실적 위기로 전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등장했다. 정 연구원은 “아마도 한국 사회 기득권연합에게 가장 끔찍한 악몽은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에 대한 분노와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변화 요구가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것일 것”이라며 “이를 막아내는 것이 보수정치집단(새누리당)의 핵심적 임무이고, 애국담론은 이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애국주의 담론은 현재 “밖으로는 북한이, 안으로는 종북세력이 국가를 안보위기에 처하게 만들고 있고, 이에 단호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나라를 사랑하는 세력들이 단결해 대한민국의 현 체제를 지켜내야 한다”는 논리로 나타나고 있다.
애국주의 담론이 ‘위’로부터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도 생산되고 있는 것도 이전과 다른 점이다. “어버이연합이나 애국주의연대 같은 조직된 극우단체들과 보수기독교 중심의 보수적 대중동원체제 구축, 일간베스트(일베)로 대표되는 젊은층의 극우적 인터넷 행동주의, 여기에 조갑제, 지만원, 변희재 등 극우적 데마고그들이 결합해 ‘민간 애국주의’, ‘민간 극우’가 형성돼 있다”고 정 연구원은 지적했다. 이런 ‘민간 극우’는 신자유주의 체제 형성 이래 전세계적 현상이다. 즉 “불안정성이 극대화한 상황에서 대중들이 불안과 좌절을 해소하기 위해, 단일한 동일성(‘국민’)에 집착하고 이주노동자, 난민 등 ‘상상된 적’에게 자신들의 분노를 집중적으로 투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적이 ‘종북세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대중들의 ‘안전 중심주의’와도 연결되는데 “개인의 안전을 위해서는 국가 안보가 중요하고, 따라서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종북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인권이나 민주적 절차는 얼마든지 유보해도 좋고, 더 나아가 ‘일반시민들’의 권리까지 제한해도 좋다는 멘탈리티”를 말한다.
정 연구원은 “대중들의 삶이 위태롭고 힘겨운 것을 기득권연합의 지배 때문이 아니라 북한, 종북좌파, 범죄자 같은 위험한 인물들과 세력들 때문이라고 치환함으로써, 조직된 사회운동을 종북세력으로 낙인찍어 대중 불만이 사회운동과 결합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기득권연합은 영구적 지배체제 형성을 위한 환경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한성훈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는 “‘종북’ 현상은 우리 현대사의 반공이데올로기가 변질된 형태를 띠고 있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국가권력과 증오의 정치문화’란 글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를 ‘종북’이라고 호명하는 순간 이 부름은 ‘그들’에 대한 비난과 위해, 협박일 뿐 아니라 정치 공동체의 다른 주체도 부정하는 일종의 정치선동, 정권에 반대하는 대부분 사람들을 마치 북한과 같은 절대악으로 확산시키는 지배와 종속의 프레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논리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거부하는 것이며, 우리가 비판하는 북한의 집단주의와 크게 다른 것이라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국문과)는 ‘종북 프레임의 원인과 진보 진영의 극복 방안’에서 “오늘날 종북 논란이 모든 진보적 의제와 실천을 실종시키고, 대중의 이성과 의식을 마비시켜 ‘보수의 좀비’로 만들고 있다. 종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진보적 의제와 정책, 담론, 실천은 늘 걸림돌을 만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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