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알제리 출신 소년 피살사건을 계기로 확산된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함께 참여했던 장 폴 사르트르와 미셸 푸코. 마이크를 든 이가 푸코, 왼쪽의 안경 쓴 이가 사르트르다. 바디우는 두 사람을 “프랑스 지식인의 특징을 충실하게 구현한 사람들”이라 평했다. 길 제공
방한 앞둔 바디우 저서 3권 출간
지제크와 한 토론과 강연 내용 담아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바친 헌사도
지제크와 한 토론과 강연 내용 담아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바친 헌사도
알랭 바디우·슬라보이 지제크 지음, 민승기 옮김
길·1만2000원
알랭 바디우 지음, 서용순 옮김
오월의봄·1만2000원
알랭 바디우 지음, 이은정 옮김
길·2만원
알랭 바디우(76)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프랑스 철학자 중 한명이다. 철학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반대하며 전통철학의 ‘진리’와 주체를 복권하려는 플라톤주의자이며, 정치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의회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급진주의자다. 26일 바디우가 슬라보이 지제크와 함께 국제학술대회 참석을 위해 방한하는 것과 때를 맞춰 3권의 저서가 한꺼번에 출간됐다. 다소 짧은 길이의 ‘소품’들인데, 크게는 모두 ‘철학이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는 서로를 ‘동지적 관계’라고 부르는 바디우와 지제크가 ‘철학과 현실’이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한 강연과 토론 내용을 묶은 책이다. 바디우는 강연에서 철학자를 현실의 여러 문제에 대한 대답을 주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문제를 구성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뒤, ‘철학적 상황’의 세가지 예를 든다. 플라톤의 대화편 <고르기아스>에서 칼리클레스는 “교활함과 폭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압제자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소크라테스는 “진실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두 입장 사이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두 입장 가운데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철학의 고유한 임무는 이 ‘선택’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이다. 그는 자신의 장군을 만나러 함께 가자고 강요하는 로마 병사에게 “이 증명이나 좀 마칩시다”라고 대꾸했다 죽임을 당한다. 이때 철학적 상황은 ‘권력과 진리 사이의 거리를 규명하는 것’이다. 세번째 예는 일본 감독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 <지카마쓰 이야기>에 나오는 젊은 유부녀와 청년의 사랑, 이로 인한 죽음인데, 이때 철학은 삶의 일상적인 규칙들과 대비되는 ‘예외’, ‘사건’, ‘단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종합하면 철학이란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사건을 받아들이고, 권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확고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이라고 바디우는 본다. 이어지는 토론에서 바디우와 지제크는 ‘의회민주주의’의 허구성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다. 지제크는 “전세계의 자본주의화 과정들이 구조적으로 민주주의를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5~2010년 행해진 바디우의 세 강연을 묶은 <투사를 위한 철학>은 바디우의 정치에 관한 생각을 좀더 명료하게 보여준다. 바디우는 철학적 행위를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것’(소크라테스가 사형 선고를 받은 이유)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타락시키는 것’은 “기존의 의견들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전적으로 거부할 가능성을 가르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랭보의 시에서 ‘논리적인 봉기들’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어서 바디우는 본격적으로 철학과 정치,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논한다. 철학은 모든 사람의 지적 능력의 평등이라는 원칙, 진리의 보편성에 의견의 다양성이 종속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평등’과 ‘보편성’은 정치의 영역에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평등이라는 점에서는 철학의 조건이지만, 의견의 다양성의 인정이라는 점에서는 철학과 모순관계로 나타난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바디우는 민주주의를 재정의한다. “철학의 원점에서 형식적인 조건으로서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모든 언표가 논변의 자유로운 규약에 종속된다는 것을 지칭하는데, 이는 말하는 사람의 지위에서 독립적이며, 누구에 의해서든 반박될 수 있다. 철학의 종점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은 현실의 민주주의적 운동으로서 해방을 향한 대중 정치의 여러 수단 중 하나를 지칭한다.” 그리고 양자의 통일을 나타내는 주체적 실존을 바디우는 철학적 의미에서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사유의 윤리>는 바디우가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자크 라캉, 장 폴 사르트르,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등 14명의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바친 ‘추도사’를 모은 책이다. 이 중에는 알튀세르처럼 젊은 시절 ‘스승·제자’의 관계였던 사람도 있고, 데리다, 들뢰즈처럼 사상적으로 대립했던 관계도 있지만, 바디우는 이들 14명 모두를 “사랑한다”고 서문에서 말한다. 미디어와 정치권에 영합하는 “철학자와 철학이라는 단어의 끊임없는 매춘”이 계속되는 이 시대에, “철학자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던 ‘위대한 정신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학문적 평가뿐 아니라, 당시 시대적 상황이나 일화, 바디우 자신과의 지적인 관계 등을 읽는 재미도 적지 않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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