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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자본은 공생관계…재벌에 ‘사회적 부’ 집중”

등록 2013-09-15 20:04수정 2013-09-15 20:57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박형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재벌이 국가와 결탁해 어떻게 한국을 지배하는 초국적 자본으로 성장해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박형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재벌이 국가와 결탁해 어떻게 한국을 지배하는 초국적 자본으로 성장해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재벌, 한국…’ 펴낸 박형준씨

국가의 친시장적 성격 강화
국내 지배자본은 초국적화
김상조·장하준식 해법 비판
해방 이후 한국 경제가 걸어온 길, 즉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하의 급속한 산업화, 1987년 이후 민주화, 1997년 외환위기를 거쳐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혁과 현재의 저성장 국면에 이르기까지 경로를 설명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국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 등 시장 지향적 정책들을 추구함으로써 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정경유착 등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성으로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과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경제성장의 원인이었는데, 시장 자유화와 규제 완화를 하면서 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이른바 ‘동아시아 발전주의 논쟁’으로, 전자는 시장 중심의 ‘신고전파’, 후자는 국가 중심의 ‘발전국가론’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진보진영’의 경제담론도 이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000년대 중반 참여연대와 대안연대의 논쟁, 지난해 ‘한국경제 성격 논쟁’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전자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후자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대표주자로 들 수 있다.

박형준(44)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최근 펴낸 <재벌, 한국을 지배하는 초국적 자본>은 양자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한국 경제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시도한 책이다. 1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박 연구위원은 “두 이론틀은 ‘합리적 시장’이나 ‘중립적 국가이성’이라는 추상적 존재를 전제하지만, 실제 현실은 ‘자본주의 시장’과 ‘자본주의 국가’가 존재할 뿐”이라며 “국가와 자본(시장)은 대립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자본주의 권력 과정의 두 가지 제도적 양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이론적으로는 지도교수였던(이 책은 그의 박사 논문을 다듬은 것이다) 조너선 닛잔 캐나다 요크대 교수의 ‘권력자본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관점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산업발전이 자율적이고 이해관계에서 초연한 ‘국가’가 효율적 산업정책을 수립해 개별 기업들을 지도한 결과라는 식의 설명은 성립하지 않는다. 박 연구위원은 “군부-재벌 지배연합은 반공-민족주의-근대화 이데올로기의 복합 캠페인을 통해 전국민을 동원해 ‘군사기계’와 거의 비슷한 양식으로 ‘노동기계’를 조직해냈다”며 “국가는 (중립적인 의미의) 산업발전에 기여했다기보다는 자본주의적 권력 양식의 압축성장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가와 자본의 관계는 변화를 겪는다. ‘공생관계’는 계속됐지만, 자본이 국가를 제치고 전면에 나선다.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국가는 자본(‘번데기’)이 성장할 때까지 보호하고 키워주는 ‘누에고치’ 노릇을 했지만, 이제 자본은 국가의 품 안에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 커버린 것이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전직 대통령의 발언이나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박 연구위원은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과거와의 구조적 단절로 봐서는 안 되고, 오랫동안 진행돼온 자본주의적 권력 양식의 최근 국면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가 전면에서 물러났지만 국가 개입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후퇴가 아니라 국가가 친시장적이고 친자본적인 성격을 강화한 것입니다. 탈규제, 민영화, 노동유연화 등을 적극 주도하고 실행한 주체도 국가와 관료였습니다. 다만 기업활동에 대한 국가의 직접 개입이 축소되고, 감세정책, 환율 관리 등 간접적인 지원책이 늘어났을 뿐입니다. 경찰력과 사법권을 동원해 노조 탄압을 지원하는 것도 여전합니다.”

‘외국 금융자본’과 ‘국내 산업자본’을 대립 구도로 보는 것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박 연구위원은 주장했다. “국내 지배자본은 외환위기 전부터 국내에서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었습니다. 외환위기를 전후로 국내 자본들은 ‘초국적 자본’으로 변모해갔습니다.” 삼성전자는 매출액의 78%, 자산의 31%, 고용의 34%가 해외에서 발생하며(2006년 기준), 외국인 주주 비율이 50%에 이른다. 한국 정부가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대기업을 도우면 이는 외국 투자자들과 초국적 자본으로 변신한 소수의 ‘한국인’ 주주들의 이익으로 전환된다.

해방 후 60여년의 한국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재벌로 대표되는 ‘지배자본’이다. 1960~201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순이윤 지수 변화를 보면 삼성그룹의 순이윤 지수는 5만3452이다. 50년 동안 한국에서 새롭게 생산된 부 가운데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몫의 상대적 크기가 500배 이상 증가했다는 뜻이다. 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선성장 후분배’라는 이름으로, 재벌한테 공동체 전체가 생산한 사회적 부를 집중시켜주는 경제모델을 만들고, 그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국가가 나서서 사회 전체를 희생시키고 동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상조 교수나 장하준 교수 등이 신자유주의와 사회 양극화를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대안이 ‘구자유주의’(전자), ‘재벌과의 대타협’(후자) 등의 보수적인 해결책으로 귀결되고 만 것은 각각 ‘시장’과 ‘국가’에 대한 이상화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권력관계의 전선을 긋는다면, 한편에는 초국적화된 자본을, 맞은편에는 사회공동체를 두어야 한다”며 “진보진영의 과제는 외국 자본이든, 국내 자본이든, 이들이 국가와 결탁해 사익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사회적 생산 과정을, 사회 공동체 전체가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정치경제적 제도를 발전시키고 실현하는 것, 국내총생산 성장 속도가 아니라 공동체 성원들의 인간적인 삶에 끼치는 영향을 잣대로 한 경제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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