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헌법에는 여성과 평화의 관점이 들어설 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사진은 한국, 일본, 필리핀의 여성단체 회원들이 지난 7월4일 오전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전세계 여성단체들이 평화를 상징하며 만든 퀼트를 이어붙여 만든 펼침막을 들고 여성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습.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시민행동 ‘헌법 다시보기’ 연속 심포지엄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공화정과 민주정의 이념을 표상한다. 그러나 그 헌법이 가리키는 시계바늘은 20세기 중반의 냉전체제에 멈춰있다. 남성중심의 서구 근대가 녹아든 각 조항에는 평화, 인권, 여성의 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시민단체 함께하는시민행동이 지난 24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평화와 여성의 눈으로 한국 헌법을 뒤집어보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7월27일 ‘문화의 눈으로 헌법 다시 보기’에 이은 ‘헌법 다시 보기’ 연속 기획 심포지엄의 자리였다.
‘평화의 눈으로…’
침략전쟁 포기 원칙 정치적 선언에 불과
인권 총체적 보장 수용을 24일 심포지엄에서 이경주 인하대 법대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헌법의 평화주의 원칙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살폈다. 한국은 48년 건국헌법 이래 줄곧 ‘침략 전쟁 포기의 원칙’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 멀리는 베트남 파병, 가깝게는 이라크 파병의 경험이 이 ‘헌법 정신’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특히 신군부가 만든 80년 헌법 때부터 국군의 임무로 ‘국토방위’ 외에 ‘국가의 안전보장’이 추가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해외파병을 정당화할 헌법적 근거가 등장한 것이다. 이 교수는 “평화주의의 기초는 (국가안보 정책이 아니라) 모든 전쟁과 공포로부터 벗어나 생존할 수 있는 (국민 개인의) 평화적 생존권에 있다”며 “지금 한국 사회는 이런 평화주의 원리의 복권 또는 현재화 과정의 출발점에 서있다”고 평가했다. 이대훈 참여연대 협동처장은 평화의 근본을 인권으로부터 구했다. 이 처장은 “한국 헌법에서 평화는 주로 ‘국가간 전쟁이나 국내 무력충돌이 없는 상태’로 인식되는데, 대내외적 군사활동에 초점을 두는 평화주의 논의는 협소하다”고 지적했다. 이 처장은 특히 안보라는 개념이 “죽음의 공포를 전제로 인위적으로 고안된 협박”이라고 분석하고, “인권을 총체적으로 보장하는 인권적 접근이 헌법에 수용 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평화주의 헌법”이라고 말했다.
27일 심포지엄은 평화의 진정한 ‘담지체’인 여성을 주제로 삼았다. 오정진 부산대 법대 교수는 “현행 헌법은 여성을 남성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남성·여성은 하나의 이념형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다양한 지점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삶의 총체성을 아는 헌법, 자율적 삶을 가능케 하는 헌법”이 되지 못하고 “객관성이나 진실의 이름으로 가부장적 사회관계를 반영·구성하며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희진 서강대 강사도 “혈연적·인종적·민족주의적인 동시에 서구중심적인 근대성 담론을 여과없이 차용하고 있다”며 그 결과, “현행 헌법의 구조와 내용은 남성 국민의 이해와 관심사가 과도하게 반영돼 있다”고 비판했다. ‘여성의 눈으로…’
서구 근대성 담론 차용
가부장적 사회관계 정당화
젠더 구체적 서술 주장도 정 강사는 그 대안으로 젠더 부문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서술을 요구했다. 헌법이 구체적이어야 하는지, 포괄적이어야 하는지는 헌법학계의 논쟁 가운데 하나지만, 적어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제시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은 다음달 14일과 27일에는 각각 ‘환경’과 ‘자치분권’을 주제로 헌법 다시 보기 연속심포지엄을 이어간다. (02)921-4709.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침략전쟁 포기 원칙 정치적 선언에 불과
인권 총체적 보장 수용을 24일 심포지엄에서 이경주 인하대 법대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헌법의 평화주의 원칙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살폈다. 한국은 48년 건국헌법 이래 줄곧 ‘침략 전쟁 포기의 원칙’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 멀리는 베트남 파병, 가깝게는 이라크 파병의 경험이 이 ‘헌법 정신’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특히 신군부가 만든 80년 헌법 때부터 국군의 임무로 ‘국토방위’ 외에 ‘국가의 안전보장’이 추가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해외파병을 정당화할 헌법적 근거가 등장한 것이다. 이 교수는 “평화주의의 기초는 (국가안보 정책이 아니라) 모든 전쟁과 공포로부터 벗어나 생존할 수 있는 (국민 개인의) 평화적 생존권에 있다”며 “지금 한국 사회는 이런 평화주의 원리의 복권 또는 현재화 과정의 출발점에 서있다”고 평가했다. 이대훈 참여연대 협동처장은 평화의 근본을 인권으로부터 구했다. 이 처장은 “한국 헌법에서 평화는 주로 ‘국가간 전쟁이나 국내 무력충돌이 없는 상태’로 인식되는데, 대내외적 군사활동에 초점을 두는 평화주의 논의는 협소하다”고 지적했다. 이 처장은 특히 안보라는 개념이 “죽음의 공포를 전제로 인위적으로 고안된 협박”이라고 분석하고, “인권을 총체적으로 보장하는 인권적 접근이 헌법에 수용 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평화주의 헌법”이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평화의 눈으로 헌법 다시 보기’ 심포지엄에서 발제자와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함께하는시민행동 사진 제공.
27일 심포지엄은 평화의 진정한 ‘담지체’인 여성을 주제로 삼았다. 오정진 부산대 법대 교수는 “현행 헌법은 여성을 남성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남성·여성은 하나의 이념형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다양한 지점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삶의 총체성을 아는 헌법, 자율적 삶을 가능케 하는 헌법”이 되지 못하고 “객관성이나 진실의 이름으로 가부장적 사회관계를 반영·구성하며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희진 서강대 강사도 “혈연적·인종적·민족주의적인 동시에 서구중심적인 근대성 담론을 여과없이 차용하고 있다”며 그 결과, “현행 헌법의 구조와 내용은 남성 국민의 이해와 관심사가 과도하게 반영돼 있다”고 비판했다. ‘여성의 눈으로…’
서구 근대성 담론 차용
가부장적 사회관계 정당화
젠더 구체적 서술 주장도 정 강사는 그 대안으로 젠더 부문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서술을 요구했다. 헌법이 구체적이어야 하는지, 포괄적이어야 하는지는 헌법학계의 논쟁 가운데 하나지만, 적어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제시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은 다음달 14일과 27일에는 각각 ‘환경’과 ‘자치분권’을 주제로 헌법 다시 보기 연속심포지엄을 이어간다. (02)921-4709.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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