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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금과 다른 삶 원한다면 ‘사상의 전환’ 필요”

등록 2013-08-04 19:56

김종철 녹색전환연구소 이사장
김종철 녹색전환연구소 이사장
김종철 녹색전환연구소 이사장
“지금 우리나라 브레인의 99%는 현 체제의 유지, 기득권층의 이익을 수호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정부 산하 기관, 대기업 산하 연구소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 연구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나 기업에서 주는 용역, 프로젝트에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전망을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연구소가 필요합니다.”

지난달 10일 녹색전환연구소가 출범했다. 김종철(66·사진) <녹색평론> 발행인이 이사장, 이상헌 한신대 교수(환경사회학)가 소장을 맡았다. 지난해 창당한 녹색당과 긴밀한 관계가 있지만, 재정이나 조직 면에서 독립된 연구소다. 김종철 녹색전환연구소 이사장을 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연구소의 비전과 활동방향에 대해 들었다. 그는 1991년 생태주의 잡지 <녹색평론>을 창간해 지금까지 발행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다른 삶의 방식’이란 무엇일까? 연구소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이는 성장주의, 경쟁과 속도, 산업문명에서 벗어나 삶과 생각, 행동, 문명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한국의 대부분 연구소들은 지금, 현재에 집착합니다. ‘지금의 확대된 연장’(more of the same)이라는 전제 위에서 시나리오를 짭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적 경제침체 국면은 산업사회라는 시스템이 종말기에 있다는 표시라고 봐야 합니다. 맨날 무역수지 들여다보고, 취득세 감면 연장 같은 주택대책 내놓아보았자 소용없습니다. 사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매년 지구 온난화 때문에 이상한 날씨를 겪으면서도, 지금 같은 성장이 지속될 수 있다고 봅니까?”

김 이사장이 <녹색평론> 등을 통해 꾸준히 피력해온 생각이지만, 이런 주장은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와 자원 고갈, 사회 양극화 등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환경 파괴 등을 겪으며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 결과가 녹색당 창당이다. 녹색당은 지난해 4·11 총선에서 10만3811명의 지지를 얻었다. (녹색당은 득표율 2%에 못 미쳐 등록이 취소되고 같은 당명을 쓸 수 없게 되자, 녹색당 더하기(+)로 재창당해 활동하는 한편 이름 되찾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녹색당은 탈성장주의, 직접·참여민주주의, 생활임금 보장, 노동시간 단축, 탈핵·탈화석연료, 탈토건, 지방분권, 농촌 활성화, 동물 생명권, 비폭력 평화, 소수자 인권 등을 주요 가치와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몇년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녹색당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 되겠다 싶었죠. 총선 결과가 기대에는 좀 못 미쳤지만, 앞으로 잘될 겁니다. 젊고 똑똑하고 순수한 당원들이 정말 성실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대의제의 한계를 비판해왔던 김 이사장이 ‘정당’에 참여한 이유를 물었다. “국가에 맡겨놓으면 정치를 엉뚱한 사람들이 다 말아먹어요. 정직하고 소박하게 우리끼리 잘 살고 싶은데 틀 자체를 뭉개버립니다. 4대강 사업으로, 그 주변에 터잡았던 생태공동체들이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국가를 견제하는 힘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산업사회 시스템 종말 징후
성장 전제한 체제비판은 한계
의원추첨제 등 과감한 제안 예고

녹색전환연구소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이달 안으로 사무실 임대와 홈페이지 개설 등 기본 틀을 갖출 계획이다. 당장은 온라인에서 국내외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정보자료센터(‘녹색전환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향후 교육·출판사업, 다른 단체와 네트워크사업도 벌일 계획이다. 연말께는 녹색 가치에 기반한 종합적인 사회·경제정책을 제시하는 심포지엄도 계획하고 있다. 정부나 기업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의 참여와 후원이 중요하다.(문의 02-737-1711, IGT@kgreens.org)

“사람들이 평소에는 일하고 사업하는 데 필요하니까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데서 내는 보고서나 기사를 보겠죠.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쯤은 ‘이게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때는 우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기존 진보 진영이나 진보 연구소들의 한계도 지적했다. “지금의 비인간적인 경제체제를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성장이 계속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 점이 문제입니다. 생태 위기와 저성장이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지금은 21세기형 사회주의, 21세기형 사회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 이사장이 지속 성장과 이에 따른 세금 재원에 기반한 북유럽식 보편복지를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 복지체계를 고민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본소득제나 국회의원 추첨제, 검찰총장 직선+추첨제, 대안에너지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회에 던져야 합니다. 덴마크에 ‘시민합의회의’라는 게 있습니다. 원전이나 유전자조작식품 수입, 이런 중요한 이슈를 전문가나 국회의원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시민들 중에 무작위 추첨을 해서 대표를 뽑습니다. 이들이 주말마다 공부하고 토론한 뒤에 결정을 내립니다. 청소노동자, 택시운전기사 이런 보통사람들이 들어가는데 아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국회의원도 추첨으로 뽑아도 됩니다. 녹색전환연구소가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많이 제공할 겁니다.”

글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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