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성/들
R. W. 코넬 지음, 안상욱·현민 옮김
이매진·1만8000원
R. W. 코넬 지음, 안상욱·현민 옮김
이매진·1만8000원
‘남성성/들’이란 제목의 기호학적 의미가 심상치 않다. 남성성에 굳이 ‘들’을 붙인 걸 보면, 남성성이 한 사회의 규격화된 고정관념이 아님을 강조한 듯하다. ‘/’은 이 책의 핵심을 상징하는 기호로 읽히는데, 다양한 남성성 간에 동맹을 맺고 지배하고 종속되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차용한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그것이다.
이 책은 젠더 연구를 집대성한 노작이라 할 만하다. 남자와 젠더에 관한 논쟁은 여성운동의 뒤를 이어 일어났다. 1970년대 남성 성역할을 개혁하려는 남성운동이 미약하게나마 일었지만, 추상적 성담론에 머물렀다. 가정폭력, 성적 학대와 제도적 폭력, 전쟁을 포괄하는 남성적 폭력 방지나 제대로 된 아버지 노릇과 가족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등의 실천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다. 1980년대 남성 연구는 ‘사색’을 넘어 남성집단의 ‘생애사 인터뷰’라는 경험적 연구로 나아갔다.
오스트레일리아 사회학자인 지은이는 이런 ‘경험적 연구’를 통해 젠더 문제를 사회구조 문제로 봤다. 60대에 성전환 수술을 하고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살아가는 그는 생물학과 사회적 환경이 결합해 젠더 차이를 만든다는 ‘젠더 이데올로기’와는 선을 긋는다. 그는 이분법적 도식을 깨려 ‘몸’을 새롭게 불러들인다. 가령, 파도타기 챔피언인 스티브는 매일 너덧 시간 트레이닝으로 다져진 멋진 체격이라는 ‘남성성의 모범’을 지녔지만, 함부로 싸울 수도 없고 과음도 못하고 성생활도 제약이 있다. 그의 몸의 회로는 상업화된 스포츠와 광고, 미디어라는 제도화된 체계를 경유하면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침식당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거친 남자, 부드러운 남자, 게이, 보통(이성적) 남자 등 네 그룹의 생애사 인터뷰에서 남성성의 유형을 끌어낸다. 주변화된 남성성인 거친 남자들은 밑바닥 생활을 한 노동계급으로, 남성 성역할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 ‘항의하는 남성성’을 지녔다. 여자들보다 경제적 우위를 누리는 ‘가부장적 배당금’을 다 잃었기에 되레 성평등주의적 견해를 보인다.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남성성을 개혁하려 하는 ‘부드러운 남자’는 남성으로 존재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주도권을 쥔 강한 여자와 관계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젠더 질서가 전지구적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경제가 진행된 최근 4세기 동안 구축됐다고 분석한다. “식민화된 세계에서 젠더 질서들의 불평등한 만남이 이뤄졌으며, 지구적 연결을 이해하지 않으면 개인적 수준에서 벌어지는 남성성과 폭력 사이의 연결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한 지구사회에서는 기업가에 권력이 부여되는 ‘초국적 비즈니스 남성성’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 본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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