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상프로방스, 청춘의 반짝이는 햇빛 반점
여름의 묘약
김화영 지음/문학동네·1만4000원 “아! 마침내 나는 30여 년의 세월을 건너질러 엑상프로방스 여름의 한복판으로, 내 청춘의 반짝이는 햇빛 반점이 아이들 얼굴 속에 반사되며 되살아나는 쿠르 미라보의 심장 속으로 돌아왔다.” 불문학자이자 번역가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2011년 여름 프랑스 남부 도시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한 소감을 이렇게 쓴다. 이 도시는 그가 프랑스 외무부 장학금을 받고 유학 와 카뮈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곳.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던 그는 1977년 신혼의 아내와 동행해 다시 엑상프로방스로 갔고 그곳에서 첫딸을 얻었다. 앞선 인용문의 ‘30여 년의 세월’은 1977년에서 2011년에 걸쳐 있는 시간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곳에서 얻은 첫딸과 다시 그 딸이 낳은 아들 등 식구들과 함께 다시 찾은 그곳에서 지은이는 유학 시절 이후 그의 후견인 노릇을 해 주는 모롱 부인을 방문하고, 카뮈가 노벨문학상 상금으로 산 뒤 미완성 유작이 된 소설 <최초의 인간>을 쓴 루르마랭의 집을 방문해 카뮈의 딸과 대화를 나눈다. 이밖에도 화가 고흐가 입원했던 생폴 드 모졸 수도원 병원, 발자크가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등을 집필했던 사셰 성, 프루스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 과자 이야기 배경인 콩브레 등을 방문한 이야기를 특유의 감각적이고 화사한 문장에 얹어 들려준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멸종 까치오리를 찾아가는 매혹의 여행기
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
글렌 칠튼 지음, 위문숙 옮김
메디치·1만6000원 1875년 어린 수컷 까치오리 한 마리가 사냥꾼 총에 맞아 죽었다. 이로써 까치오리는 지구상에서 멸종했다. 1970년 캐나다의 한 소년이 멸종동물 카드를 모으다 까치오리한테 매료됐다. 2000년 조류학자가 된 소년은 ‘엉뚱한’ 계획을 세운다. 세계 10개국 40여개 도시의 자연사박물관 등에 있는 55점의 까치오리 박제를 모두 직접 만나 보겠다는 것. ‘멸종오리 찾아 지구 세바퀴 반’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4년 9개월 18일에 걸쳐 13만2377㎞를 이동해 까치오리들의 ‘슬픈 박제’를 만나고 기록한 괴짜 조류학자의 순례기다. 까치오리는 캐나다 동부 황량한 지역에 서식하면서 미국 뉴욕 근처로 내려와 겨울을 났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번식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멸종된 다른 조류들처럼, 까치오리도 수백년 동안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총에 맞고 박제로 만들어졌으며, 부자들의 호사 취미를 만족시키는 수집품이 되었다. 지은이는 한마리 한마리 박제를 찾아다니는 이 여행기를 통해 우리에게 멸종된 새들의 잔해, 그리고 사연과 만나게 한다. 수없이 총에 맞아 죽어갈 때는 고통을 이해받지 못하고, 멸종한 뒤에는 숭배되지만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아이러니에 대해 느끼게 한다. 유머 넘치는 필체는 이 책을 매력적인 여행기로 만든다. 지은이를 따라 박물관을 헤매다니는 경험이랄까.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아이가 있냐고 묻지 마세요
둘이면 충분해
로라 스콧 지음, 이문영 옮김
빅북·1만4800원 지금 이대로도 인생은 즐겁고, 아이를 가지면 미루거나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기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평생 꿈꿔왔던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소중했기에 갓난아기에게 젖 먹이는 일은 하나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둘이면 충분해>를 쓴 미국 작가 로라 스콧이 밝힌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세상은 자꾸만 그에게 뭐라고 한다. 그가 이기적이거나 게으르거나 아이를 싫어해서 낳지 않는다고 믿곤 했다. 지쳐가던 그는 ‘의도적인 무자녀’ 연구를 시작했다. 2004년부터 북미지역 무자녀 부부들을 찾아나서 면담을 했다. 무자녀 옹호자들과 학자들을 만나고 자료를 뒤지는 데 총 4년이 걸렸다. 그리하여 책이 탄생했다. 171명의 ‘무자녀주의자’들은 설문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 지금 이대로 생활에 만족하며, 자유와 독립에 가치를 두고 싶다는 응답을 가장 많이 했다. 그들은 대부분 교육 수준이 높고 종교적 성향이 약하고 전통에 덜 얽매였다. 그들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아이가 왜 없으세요?”가 아닌 “아이 있으세요?”였다. 그냥 “아니”라고 하자니 설명이 불충분한 듯해 찝찝해서다. 결론은 “이들이 아이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면에서 극히 평범하다”는 것이다. 책은 “아이 없이 삶을 꾸려갈 수 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안다면 온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고장난 내 아들, 너의 내면엔 뭐가 있니?
달나라 소년
이언 브라운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1만4800원 워커는 30억 개의 유전자 배열 중 단 하나의 오류를 안고 태어난 아이다. 생후 7개월 때 진단받은 병명은 ‘시에프시(CFC: 심장·얼굴·피부) 증후군’. 심장 결함에다 눈썹 없이 툭 튀어나온 이마, 통증에 극도로 민감한 피부를 지닌, 보고된 환자 수가 겨우 100명을 넘어선 중증 지적장애다. “고도의 보살핌이 필요한 신인간 종족”인 워커는 생후 18개월부터 줄곧 ‘지(G) 튜브’로 유동식을 받아 먹는다. 날마다 제 머리를 쉼없이 때리거나 아무 이유 없이 몇 시간씩 울기도 한다. 워커의 아버지에게, 돌봄시설에 아이를 맡기기 전 8년은 극심한 근심과 만성 수면부족, 끝없는 부담으로 “피곤하다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그만둔 매일 똑같은 밤”이었다. 쯧쯧거림으로써 ‘말을 하는’ 공허한 표정의 달나라 소년 워커의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아버지는 “워커라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아이의 세상을 지독하게 탐구한다. 그 결과, 지친 아버지와 고장난 아들의 모습 그대로, 다른 아이로 바꿨으면 하는 마음을 줄이고 지금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기에 이른다. 워커는 인간으로 사는 데 여러 길이 있음을, 자칫 흘려버릴 사소한 일상에도 주의를 기울이도록 끊임없이 알려줬다. 캐나다 일간 <글로브 앤드 메일> 기자가 아들 얘기를 연재해 묶은 이 책은 ‘고통의 기록’을 넘어서 삶의 깊은 해답에 다가간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단독]‘성추행 혐의’ 윤창중 곧 미국 경찰에 출두할 듯
■ 기생충학자 서민 “못생겼다고 아버지도 나를 미워했지만…”
■ 김무성 앞에서 새누리당 의원은 왜 허리를 그렇게 굽혔나?
■ 미 아이비리그 여대생들의 ‘신 성풍속도’
■ [화보]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 해외에서도 타오르다
김화영 지음/문학동네·1만4000원 “아! 마침내 나는 30여 년의 세월을 건너질러 엑상프로방스 여름의 한복판으로, 내 청춘의 반짝이는 햇빛 반점이 아이들 얼굴 속에 반사되며 되살아나는 쿠르 미라보의 심장 속으로 돌아왔다.” 불문학자이자 번역가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2011년 여름 프랑스 남부 도시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한 소감을 이렇게 쓴다. 이 도시는 그가 프랑스 외무부 장학금을 받고 유학 와 카뮈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곳.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던 그는 1977년 신혼의 아내와 동행해 다시 엑상프로방스로 갔고 그곳에서 첫딸을 얻었다. 앞선 인용문의 ‘30여 년의 세월’은 1977년에서 2011년에 걸쳐 있는 시간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곳에서 얻은 첫딸과 다시 그 딸이 낳은 아들 등 식구들과 함께 다시 찾은 그곳에서 지은이는 유학 시절 이후 그의 후견인 노릇을 해 주는 모롱 부인을 방문하고, 카뮈가 노벨문학상 상금으로 산 뒤 미완성 유작이 된 소설 <최초의 인간>을 쓴 루르마랭의 집을 방문해 카뮈의 딸과 대화를 나눈다. 이밖에도 화가 고흐가 입원했던 생폴 드 모졸 수도원 병원, 발자크가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등을 집필했던 사셰 성, 프루스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 과자 이야기 배경인 콩브레 등을 방문한 이야기를 특유의 감각적이고 화사한 문장에 얹어 들려준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글렌 칠튼 지음, 위문숙 옮김
메디치·1만6000원 1875년 어린 수컷 까치오리 한 마리가 사냥꾼 총에 맞아 죽었다. 이로써 까치오리는 지구상에서 멸종했다. 1970년 캐나다의 한 소년이 멸종동물 카드를 모으다 까치오리한테 매료됐다. 2000년 조류학자가 된 소년은 ‘엉뚱한’ 계획을 세운다. 세계 10개국 40여개 도시의 자연사박물관 등에 있는 55점의 까치오리 박제를 모두 직접 만나 보겠다는 것. ‘멸종오리 찾아 지구 세바퀴 반’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4년 9개월 18일에 걸쳐 13만2377㎞를 이동해 까치오리들의 ‘슬픈 박제’를 만나고 기록한 괴짜 조류학자의 순례기다. 까치오리는 캐나다 동부 황량한 지역에 서식하면서 미국 뉴욕 근처로 내려와 겨울을 났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번식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멸종된 다른 조류들처럼, 까치오리도 수백년 동안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총에 맞고 박제로 만들어졌으며, 부자들의 호사 취미를 만족시키는 수집품이 되었다. 지은이는 한마리 한마리 박제를 찾아다니는 이 여행기를 통해 우리에게 멸종된 새들의 잔해, 그리고 사연과 만나게 한다. 수없이 총에 맞아 죽어갈 때는 고통을 이해받지 못하고, 멸종한 뒤에는 숭배되지만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아이러니에 대해 느끼게 한다. 유머 넘치는 필체는 이 책을 매력적인 여행기로 만든다. 지은이를 따라 박물관을 헤매다니는 경험이랄까.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로라 스콧 지음, 이문영 옮김
빅북·1만4800원 지금 이대로도 인생은 즐겁고, 아이를 가지면 미루거나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기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평생 꿈꿔왔던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소중했기에 갓난아기에게 젖 먹이는 일은 하나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둘이면 충분해>를 쓴 미국 작가 로라 스콧이 밝힌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세상은 자꾸만 그에게 뭐라고 한다. 그가 이기적이거나 게으르거나 아이를 싫어해서 낳지 않는다고 믿곤 했다. 지쳐가던 그는 ‘의도적인 무자녀’ 연구를 시작했다. 2004년부터 북미지역 무자녀 부부들을 찾아나서 면담을 했다. 무자녀 옹호자들과 학자들을 만나고 자료를 뒤지는 데 총 4년이 걸렸다. 그리하여 책이 탄생했다. 171명의 ‘무자녀주의자’들은 설문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 지금 이대로 생활에 만족하며, 자유와 독립에 가치를 두고 싶다는 응답을 가장 많이 했다. 그들은 대부분 교육 수준이 높고 종교적 성향이 약하고 전통에 덜 얽매였다. 그들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아이가 왜 없으세요?”가 아닌 “아이 있으세요?”였다. 그냥 “아니”라고 하자니 설명이 불충분한 듯해 찝찝해서다. 결론은 “이들이 아이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면에서 극히 평범하다”는 것이다. 책은 “아이 없이 삶을 꾸려갈 수 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안다면 온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이언 브라운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1만4800원 워커는 30억 개의 유전자 배열 중 단 하나의 오류를 안고 태어난 아이다. 생후 7개월 때 진단받은 병명은 ‘시에프시(CFC: 심장·얼굴·피부) 증후군’. 심장 결함에다 눈썹 없이 툭 튀어나온 이마, 통증에 극도로 민감한 피부를 지닌, 보고된 환자 수가 겨우 100명을 넘어선 중증 지적장애다. “고도의 보살핌이 필요한 신인간 종족”인 워커는 생후 18개월부터 줄곧 ‘지(G) 튜브’로 유동식을 받아 먹는다. 날마다 제 머리를 쉼없이 때리거나 아무 이유 없이 몇 시간씩 울기도 한다. 워커의 아버지에게, 돌봄시설에 아이를 맡기기 전 8년은 극심한 근심과 만성 수면부족, 끝없는 부담으로 “피곤하다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그만둔 매일 똑같은 밤”이었다. 쯧쯧거림으로써 ‘말을 하는’ 공허한 표정의 달나라 소년 워커의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아버지는 “워커라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아이의 세상을 지독하게 탐구한다. 그 결과, 지친 아버지와 고장난 아들의 모습 그대로, 다른 아이로 바꿨으면 하는 마음을 줄이고 지금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기에 이른다. 워커는 인간으로 사는 데 여러 길이 있음을, 자칫 흘려버릴 사소한 일상에도 주의를 기울이도록 끊임없이 알려줬다. 캐나다 일간 <글로브 앤드 메일> 기자가 아들 얘기를 연재해 묶은 이 책은 ‘고통의 기록’을 넘어서 삶의 깊은 해답에 다가간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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