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냉전>을 펴낸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사회인류학과 교수는 “냉전은 서구 국가들에는 ‘오랜 평화’를 의미했지만, 제3세계 국가들에는 잔인한 내전과 정치폭력의 시대를 의미했다”고 말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또 하나의 냉전’ 책 낸 권헌익 교수
‘냉전 끝났다’ 서구중심 시각 비판
한국과 3세계 국가엔 현재진행형
모두 국가폭력 비극적 경험 공유
제주도 4·3항쟁 공론화와 위령제
죽은자 기억하는 애도의 모범형태 1955년 12월 미국의 여론조사회사 갤럽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냉전’의 의미를 물었다. 조사원들이 ‘정답’으로 분류한 대답은 “열전이 아닌 것, 무기 없는 교묘한 전쟁, 강대국들간의 말싸움” 등이었다. 다음은 ‘오답’으로 분류됐다. “한국에서처럼 많은 청년들이 죽어가고 있는 뜨거운 전쟁, 군복무중인 내 형제들의 목숨을 뜻함, 모두가 전쟁중인 곳….” 권헌익(51) 영국 케임브리지대 사회인류학과 교수는 “후자의 대답도 실은 전혀 ‘오답’이 아니다”며 “유럽 및 북미의 서구 국가들한테 냉전은 이전 시기와는 구분되는 ‘오랜 평화’를 의미했지만, 비서구지역의 많은 탈식민 신생독립국가들한테 냉전은 잔인한 내전과 정치폭력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였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또 하나의 냉전>(민음사, 원저는 2010년 미국에서 출간)에서 ‘냉전’을 물리적 충돌이 없는 ‘초강대국 사이의 세력균형’으로 보는 시각을 서구중심 접근으로 비판하고, 비서구지역에 나타났던 냉전의 다양한 모습을 직시할 것을 주장한다. 제주 4·3항쟁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인도네시아의 1965년 발리 대학살, 냉전기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정치테러 등은 이 다양한 모습의 일부일 뿐이다. 탈식민국가들이 겪은 폭력과 ‘양극화 체제’(냉전체제)가 동전의 양면이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과 소련이 제3세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거나 배제하는 과정에서 이런 폭력들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서울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센터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권 교수는 <또 하나의 냉전>이 베트남전 양민학살의 후유증을 현장연구를 통해 보여준 <학살, 그 이후>(2006)와 <베트남전쟁의 영혼>(2008)에 이은 ‘베트남 3부작’의 마무리 저작이자, 한국전쟁 연구로 넘어가는 ‘다리’ 구실을 하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영국 맨체스터대, 런던정경대학(LSE) 교수 등을 거쳐 2011년부터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학살, 그 이후>는 미국 인류학회에서 주는 기어츠상을 수상했다. <또 하나의 냉전>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권 교수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부터 붙들고 있던 화두다. “서구학계는 ‘1989년 이후’ ‘종언 이후’ 등의 표현을 쓰며 ‘냉전은 끝났다’고들 말했습니다. 하지만 냉전이 정말 끝난 것인가, 이들이 말하는 냉전은 누구의 냉전을 말하는가 하는 의문이 계속됐습니다.” 냉전을 일종의 ‘평화’로 규정하는 것도 일방적이지만,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도 서구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이런 자기중심적 서구학계와 독자를 향해 쓰인 책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냉전의 다양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지만, 서구중심적 개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권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흔히 사용되는 ‘한반도는 냉전의 마지막 보루다, 유물이다’ 등의 표현을 예로 들었다. “마지막 보루가 있다면 냉전 자체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현재진행형인 것이죠.” 우리 경험을 비정상적인 것, 특수한 것이 아니라 보편의 일부로 봐야 한다고 권 교수는 강조했다. “우리가 겪은 비극은 동남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다른 3세계 국가들이 겪은 경험과 흡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타자의 경험들을 이해할 때 우리의 경험을 좀더 글로벌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권 교수는 베트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제간의 불일치’ 사연을 소개했다. 형은 ‘벤따’(이쪽 편, 혁명군 편), 동생은 ‘벤끼아’(저쪽 편, 미국 편)로 끌려간 뒤, 결국 둘 다 살아 돌아오지 못했고, 세월이 흘러도 가족들은 동생을 추모할 수 없었다. 이념적 구도가 반대일 뿐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비극이다. “가족이 죽으면 삼년상을 치르고 ‘육탈’과 이장을 거치면서, 죽은 자를 창의적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냉전도 끝난 것이 아니라 육탈 과정에 있는 것이고, 이 과정을 잘 거쳐야 제대로 종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냉전이라는 현혹적인 이름 아래 20세기 후반부에 국가폭력의 힘에 스러져간 삶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과정”이다. 권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제주도에서 계속되고 있는 4·3항쟁의 공론화, 기념사업, 위령제 등을 이런 애도의 모범적인 한 예로 제시했다. “대량 학살을 겪은 사회에서는 죽은 자에 대한 예우, 죽은 자를 기릴 권리라는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도덕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합니다. 이 과정을 넘겨야 어떤 사회,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를 제대로 꿈꿀 수 있게 된다고 봅니다.” 권 교수는 현재 집필중인 <한국전쟁 이후 친족관계의 정치적 삶>(가제)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좀더 본격적으로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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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3세계 국가엔 현재진행형
모두 국가폭력 비극적 경험 공유
제주도 4·3항쟁 공론화와 위령제
죽은자 기억하는 애도의 모범형태 1955년 12월 미국의 여론조사회사 갤럽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냉전’의 의미를 물었다. 조사원들이 ‘정답’으로 분류한 대답은 “열전이 아닌 것, 무기 없는 교묘한 전쟁, 강대국들간의 말싸움” 등이었다. 다음은 ‘오답’으로 분류됐다. “한국에서처럼 많은 청년들이 죽어가고 있는 뜨거운 전쟁, 군복무중인 내 형제들의 목숨을 뜻함, 모두가 전쟁중인 곳….” 권헌익(51) 영국 케임브리지대 사회인류학과 교수는 “후자의 대답도 실은 전혀 ‘오답’이 아니다”며 “유럽 및 북미의 서구 국가들한테 냉전은 이전 시기와는 구분되는 ‘오랜 평화’를 의미했지만, 비서구지역의 많은 탈식민 신생독립국가들한테 냉전은 잔인한 내전과 정치폭력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였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또 하나의 냉전>(민음사, 원저는 2010년 미국에서 출간)에서 ‘냉전’을 물리적 충돌이 없는 ‘초강대국 사이의 세력균형’으로 보는 시각을 서구중심 접근으로 비판하고, 비서구지역에 나타났던 냉전의 다양한 모습을 직시할 것을 주장한다. 제주 4·3항쟁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인도네시아의 1965년 발리 대학살, 냉전기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정치테러 등은 이 다양한 모습의 일부일 뿐이다. 탈식민국가들이 겪은 폭력과 ‘양극화 체제’(냉전체제)가 동전의 양면이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과 소련이 제3세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거나 배제하는 과정에서 이런 폭력들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서울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센터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권 교수는 <또 하나의 냉전>이 베트남전 양민학살의 후유증을 현장연구를 통해 보여준 <학살, 그 이후>(2006)와 <베트남전쟁의 영혼>(2008)에 이은 ‘베트남 3부작’의 마무리 저작이자, 한국전쟁 연구로 넘어가는 ‘다리’ 구실을 하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영국 맨체스터대, 런던정경대학(LSE) 교수 등을 거쳐 2011년부터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학살, 그 이후>는 미국 인류학회에서 주는 기어츠상을 수상했다. <또 하나의 냉전>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권 교수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부터 붙들고 있던 화두다. “서구학계는 ‘1989년 이후’ ‘종언 이후’ 등의 표현을 쓰며 ‘냉전은 끝났다’고들 말했습니다. 하지만 냉전이 정말 끝난 것인가, 이들이 말하는 냉전은 누구의 냉전을 말하는가 하는 의문이 계속됐습니다.” 냉전을 일종의 ‘평화’로 규정하는 것도 일방적이지만,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도 서구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이런 자기중심적 서구학계와 독자를 향해 쓰인 책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냉전의 다양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지만, 서구중심적 개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권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흔히 사용되는 ‘한반도는 냉전의 마지막 보루다, 유물이다’ 등의 표현을 예로 들었다. “마지막 보루가 있다면 냉전 자체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현재진행형인 것이죠.” 우리 경험을 비정상적인 것, 특수한 것이 아니라 보편의 일부로 봐야 한다고 권 교수는 강조했다. “우리가 겪은 비극은 동남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다른 3세계 국가들이 겪은 경험과 흡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타자의 경험들을 이해할 때 우리의 경험을 좀더 글로벌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권 교수는 베트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제간의 불일치’ 사연을 소개했다. 형은 ‘벤따’(이쪽 편, 혁명군 편), 동생은 ‘벤끼아’(저쪽 편, 미국 편)로 끌려간 뒤, 결국 둘 다 살아 돌아오지 못했고, 세월이 흘러도 가족들은 동생을 추모할 수 없었다. 이념적 구도가 반대일 뿐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비극이다. “가족이 죽으면 삼년상을 치르고 ‘육탈’과 이장을 거치면서, 죽은 자를 창의적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냉전도 끝난 것이 아니라 육탈 과정에 있는 것이고, 이 과정을 잘 거쳐야 제대로 종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냉전이라는 현혹적인 이름 아래 20세기 후반부에 국가폭력의 힘에 스러져간 삶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과정”이다. 권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제주도에서 계속되고 있는 4·3항쟁의 공론화, 기념사업, 위령제 등을 이런 애도의 모범적인 한 예로 제시했다. “대량 학살을 겪은 사회에서는 죽은 자에 대한 예우, 죽은 자를 기릴 권리라는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도덕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합니다. 이 과정을 넘겨야 어떤 사회,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를 제대로 꿈꿀 수 있게 된다고 봅니다.” 권 교수는 현재 집필중인 <한국전쟁 이후 친족관계의 정치적 삶>(가제)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좀더 본격적으로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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