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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보수시각 쏠림에 내용도 오류… ‘박물관의 퇴행’

등록 2013-06-02 20:04

이명박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세종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개관 행사에 참석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세종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개관 행사에 참석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역사정의실천연대 토론회
제헌헌법 성격 시장경제만 부각
평화통일·사회개혁 지향은 외면
강화도 조약 등 사실관계 틀려
자문받아 근본적 재검토 필요

지난해 말 논란 속에 개관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역사 인식이 보수 쪽에 치우쳐 있어 사회통합에 부작용을 낳을 수 있고, 전시내용에도 오류가 많다는 학계의 비판이 나왔다. 이제라도 박물관의 이름과 운영주체·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학자들은 지적했다.

김성보 연세대 교수(사학과)는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역사정의실천연대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2012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은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 사이에 이루어진 ‘역사 인식의 보수대연합’”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역사박물관의 역사 인식은 민족보다 국가를 앞세우고, 그 국가를 자유시장 경제와 자유민주주의 발전의 측면에서만 파악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관을 반복하고 있고,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중시하고 ‘식민지 수탈론’을 주장하는 ‘올드라이트’의 관점도 어정쩡하게 반영했다”며 “그 결과 박물관의 역사 서사는 수평적 정권 교체 이전의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기의 보수적 역사교과서 서술로 퇴행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역사박물관이 제헌헌법에 대해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시장경제를 지향’했다고 묘사해, 오직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요소만 지닌 것처럼 전시하고, 제헌헌법이 평화와 통일, 농지개혁과 친일파 청산 등 사회 개혁, 균등경제 지향성 등을 표방하고 있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며 이런 인식의 예를 들었다. 또 “박물관 도판 목록을 보면 첨단기술 발전 전시물 20개 중에 17개가 삼성 제품이고 중소기업 제품은 찾아볼 수 없다”. “대기업이야말로 한국의 첨단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고 그것이 곧 한국의 미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라도 ‘한국현대사박물관’이나 ‘한민족현대사박물관’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학자, 박물관 전문가, 교육가 등이 참여하는 독자적인 공공기관을 만들어 운영을 맡겨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가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기훈 목포대 교수(사학과)는 “제1 전시실에서 강화도조약이 조선이 협정관세를 받아들인 불평등 조약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강화도조약은 협정관세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 이 교수는 미국 군인 한 명의 개인 기념품으로 추정되는 깃발을 ‘미 제6사단기’라고 전시해놓은 점, 최초의 근대적 ‘종합’ 잡지인 최남선의 <소년>을 최초의 근대 잡지라고 소개하고 있는 점 등을 오류로 지적했다. 이 교수는 “시급한 일은 전문가들에게 유물의 명칭, 설명, 영문 표기 등에 대해 전반적인 자문을 구해 전시실과 도록의 오류를 수정하는 일”이라며 “더 나아가 역사박물관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지금의 구성을 유지할 것인지 등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현대사 박물관을 세우겠다고 공표하면서 건립이 추진됐고, 이로부터 불과 4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졸속·편향’ 논란 속에 개관됐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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