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길(80) 고려대 명예교수.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분단고통과 통일…’ 펴낸 강만길 교수
“중국, 러시아 등 대륙세력과 미국, 일본 등 해양세력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 땅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전쟁통일이나 흡수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위치 탓에 1945년 해방 이전에도 여러 번의 분단 위험이 있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의 위상과 처지를 정확하게 파악해 새로운 시대에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극동의 화약고’ 오명 벗으려면
평화통일·협상통일로 갈 수밖에 많이 가진 남이 적게 가진 북에
‘하나 줄테니 하나 내놔라’ 하면
흥정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원로 역사학자 강만길(80) 고려대 명예교수가 갑신정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의 근현대사를 ‘분단’과 ‘통일’이라는 열쇳말을 중심으로 정리한 대중 역사서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선인)를 펴냈다. 강 교수는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상지대 총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청명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고쳐 쓴 한국근대사> <고쳐 쓴 한국현대사> 등이 있다. 지난 24일 서울 낙원동 청명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강 교수는 이번 저서에 대해 “좀더 많은 독자들이 한반도 분단의 원인과 역사를 정확하게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되도록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며 “특히 21세기 새로운 민족사의 방향을 잡아야 할 젊은이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자에게 이야기하듯 경어체(~했습니다)로 쓴 것도 이런 바람에서다. 강 교수가 역점을 둔 부분은 우리 땅의 지정학적 위치가 민족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문제다. 그는 “대륙과 해양 사이에 걸쳐진 우리 땅을 제 세력권에 넣기 위해 처음에는 청국과 일본이, 다음에는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했으며, 두 차례 전쟁의 결과 우리 땅은 두 번 모두 이긴 일본의 강제 지배를 받게 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19세기 후반부터 일본, 러시아, 영국 등 국제 세력들 사이에 이미 우리 땅을 분단하자는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 영세중립화론도 100여년 전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두 세력이 가장 극적으로 맞부딪친 사건이 조·중·소 대륙연합세력과 한·미·일 해양연합세력이 충돌한 6·25전쟁이다. 강 교수는 “6·25전쟁은 두 세력이 맞서는 한 우리나라에서 전쟁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흡수통일 역시 어느 한 체제로 통일돼야 한다는 점에서, 주변 세력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결국 ‘평화통일’ ‘타협통일’ ‘협상통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보인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일단은 남과 북이 서로의 정부와 체제를 인정하고 교류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다 보면 평화가 정착되고 서로 이해하게 되고, 그다음에 가야 할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이런 방향으로 남북관계가 진전됐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는 극도로 경색된 상태다. 최근에는 북핵위기가 불거지고 있다. 강 교수는 “남북 문제는 결국 ‘흥정’인데, 10개 가진 사람이 5개 가진 사람에게 ‘하나 줄 테니 하나 내놔라’는 식으로 대하면 흥정이 되지 않는다”며 “남한이 더 여유가 있는 만큼 너그러운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북-미 수교와 북의 핵 포기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남한이 적극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강 교수는 “각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두 가지가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첫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얼마나 이루었는가’, 둘째는 ‘평화통일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이다. 후자의 잣대로 보면 이명박 정부는 역사에 기록할 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면서도 “북한을 한번 방문한 경험이 있는 만큼, 이명박 정부와는 좀 다른 접근을 보여주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보였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통일에 관한 관심이 약해지고, 일부에서 대북 적대감도 생겨나고 있는 데 대해 그는 “그럼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갈지, 2학년을 마치고 갈지 고민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60년이 지났는데도 손자뻘인 우리 젊은이들이 꼭 같은 고민과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꽃다운 20대의 2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합니까? 언제까지 ‘극동의 화약고’라는 오명을 안고 살아야 합니까?” 강 교수는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과거를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알아서 바람직한 미래를 개척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젊은이들이 당장 눈앞의 현실에만 얽매이지 말고 역사공부 등을 통해 넓은 시야와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역사학자들도 상아탑에 머물지 말고 대중과 소통하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합니다.” 자신을 ‘평화주의자’ ‘열린 민족주의자’라고 규정하는 한 노학자의 당부다. 글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평화통일·협상통일로 갈 수밖에 많이 가진 남이 적게 가진 북에
‘하나 줄테니 하나 내놔라’ 하면
흥정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원로 역사학자 강만길(80) 고려대 명예교수가 갑신정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의 근현대사를 ‘분단’과 ‘통일’이라는 열쇳말을 중심으로 정리한 대중 역사서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선인)를 펴냈다. 강 교수는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상지대 총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청명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고쳐 쓴 한국근대사> <고쳐 쓴 한국현대사> 등이 있다. 지난 24일 서울 낙원동 청명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강 교수는 이번 저서에 대해 “좀더 많은 독자들이 한반도 분단의 원인과 역사를 정확하게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되도록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며 “특히 21세기 새로운 민족사의 방향을 잡아야 할 젊은이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자에게 이야기하듯 경어체(~했습니다)로 쓴 것도 이런 바람에서다. 강 교수가 역점을 둔 부분은 우리 땅의 지정학적 위치가 민족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문제다. 그는 “대륙과 해양 사이에 걸쳐진 우리 땅을 제 세력권에 넣기 위해 처음에는 청국과 일본이, 다음에는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했으며, 두 차례 전쟁의 결과 우리 땅은 두 번 모두 이긴 일본의 강제 지배를 받게 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19세기 후반부터 일본, 러시아, 영국 등 국제 세력들 사이에 이미 우리 땅을 분단하자는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 영세중립화론도 100여년 전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두 세력이 가장 극적으로 맞부딪친 사건이 조·중·소 대륙연합세력과 한·미·일 해양연합세력이 충돌한 6·25전쟁이다. 강 교수는 “6·25전쟁은 두 세력이 맞서는 한 우리나라에서 전쟁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흡수통일 역시 어느 한 체제로 통일돼야 한다는 점에서, 주변 세력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결국 ‘평화통일’ ‘타협통일’ ‘협상통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보인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일단은 남과 북이 서로의 정부와 체제를 인정하고 교류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다 보면 평화가 정착되고 서로 이해하게 되고, 그다음에 가야 할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이런 방향으로 남북관계가 진전됐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는 극도로 경색된 상태다. 최근에는 북핵위기가 불거지고 있다. 강 교수는 “남북 문제는 결국 ‘흥정’인데, 10개 가진 사람이 5개 가진 사람에게 ‘하나 줄 테니 하나 내놔라’는 식으로 대하면 흥정이 되지 않는다”며 “남한이 더 여유가 있는 만큼 너그러운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북-미 수교와 북의 핵 포기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남한이 적극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강 교수는 “각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두 가지가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첫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얼마나 이루었는가’, 둘째는 ‘평화통일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이다. 후자의 잣대로 보면 이명박 정부는 역사에 기록할 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면서도 “북한을 한번 방문한 경험이 있는 만큼, 이명박 정부와는 좀 다른 접근을 보여주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보였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통일에 관한 관심이 약해지고, 일부에서 대북 적대감도 생겨나고 있는 데 대해 그는 “그럼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갈지, 2학년을 마치고 갈지 고민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60년이 지났는데도 손자뻘인 우리 젊은이들이 꼭 같은 고민과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꽃다운 20대의 2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합니까? 언제까지 ‘극동의 화약고’라는 오명을 안고 살아야 합니까?” 강 교수는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과거를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알아서 바람직한 미래를 개척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젊은이들이 당장 눈앞의 현실에만 얽매이지 말고 역사공부 등을 통해 넓은 시야와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역사학자들도 상아탑에 머물지 말고 대중과 소통하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합니다.” 자신을 ‘평화주의자’ ‘열린 민족주의자’라고 규정하는 한 노학자의 당부다. 글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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