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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 졸라매기는 끝났다…성장 위해서라도 분배하라”

등록 2013-05-19 20:00수정 2013-05-19 21:38

신희영(42)씨. 사진 신희영 연구원 제공
신희영(42)씨. 사진 신희영 연구원 제공
‘유인호 학술상’ 신희영 박사 인터뷰
“성장은 복리 수단일 뿐 목적 아냐
독점재벌의 횡포 용인해선 안돼”
‘위기의 경제학’서 성장모델 비판
소득 안정·노동자 경영참여 강조

“국민 다수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해서 성장의 기회를 노리는 전략은 더는 실현 가능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분배는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성장을 위해서라도 분배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봅니다.”

<위기의 경제학>이라는 책으로 올해 일곡유인호학술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신희영(42)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소수의 독점재벌이 수출 증대를 위해 하청기업에 납품단가를 낮추라고 압박하고, 결과적으로는 다수의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저임금을 강요하는 것은 ‘경제성장을 통해 소득을 증대하고 사회복리를 증진한다’는 거시경제학의 근본 목적을 망각하는 일”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경제구조의 안정성을 해치고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행위”라고 말했다. 일곡유인호학술상은 진보 경제학자였던 유인호 전 중앙대 교수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학술상으로 매년 젊은 진보 연구학자 한 명의 책을 선정해 수여한다.

미국 뉴욕 뉴스쿨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뉴욕에 있는 재정정책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그곳 포담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인터뷰는 16~17일 전자우편과 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위기의 경제학>은 2007~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뉴욕에서 직접 목격했던 신 연구원의 고민의 산물이다. “당시 미국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들이 30여년 동안 다른 나라들한테 강요한 정책, 즉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에도 강요했던 고금리 및 긴축재정 정책과는 180도 다른 확장적 통화정책(초저금리)과 재정정책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지식인들 가운데 누구도 이런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성토하는 사람이 없더군요.” 이런 국제적 ‘이중잣대’를 경제이론적으로 비판한 내용이 이 책 1부에 담겨 있다.

그는 2부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번 금융위기를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고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명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한 비주류 경제학자, 비판경제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하고 한국 경제 대안을 모색한다. 프리드리히 리스트, 카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하이먼 민스키, 미하우 칼레츠키 등 5명이 그들이다.

신 연구원의 결론은 지금까지와 같은 수출·대기업 주도 성장 모델과 소위 ‘선 성장 후 분배론’은 더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대외무역에 노출된 개방경제가 수출입 변동, 임금 변동 등의 요인에 따라 어떻게 산출량과 소득 변화를 경험하는지’에 대한 칼레츠키의 연구를 소개한 뒤 “경제가 대외무역에 종속될 경우, 국내의 수직적 산업구조의 재편과 소득 분배구조 개선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실질임금을 떨어뜨려 국내 유효수요(실제 구매력을 수반하는 수요)를 감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신 연구원은 이에 따라 “한국 경제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높은 수출입 의존도를 낮추고, 기업의 임금 인상과 정부의 소득보전 정책으로 유효수요를 증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자들의 소득을 올려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이 향상되는 ‘낙수효과’에 기대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을 직접 끌어올려, 내수(소비와 투자)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주주와 투자자, 경영진의 이익만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장기 투자를 하지 않고, 많은 종업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현실에 대해서도 대안이 필요하다고 신 연구원은 지적한다. 그가 생각하는 기업 모델은 노동자·종업원들이 기업의 지분을 되도록 많이 보유하면서 기업의 주요 의사 결정과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모델이다. 요즘 확산되고 있는 협동조합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학계와 정부, 언론 등에서는 여전히 ‘성장주의’와 주주 이익을 최우선시하는‘주주 자본주의론’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서도 자본주의의 안정성과 균형성을 당연하게 여기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금융위기 이후에도 여전히 학계 주류 담론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를 위한 경제학’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기 성찰이나 변화 노력이 없습니다. 한국 경제학계는 이념적으로 더 편협합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절대적 헤게모니 하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극히 소수 존재하는 양상입니다. 제도주의, 스라파주의, 포스트 케인스주의, 여성주의 같은 비판경제학이나 비주류 경제학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지경입니다.” 그는 “더구나 한국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시장경제를 절대시하면서도 미국의 ‘원조’ 신고전파 경제학과는 달리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정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거나 적극 협조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도 신 연구원의 연구와 고민의 끝은 항상 ‘한국의 현실’에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책 말미에는 지난해 진정한 경제민주화의 방향을 둘러싸고 진보진영 내에서 벌어진 이른바 ‘한국 경제 성격 논쟁’에 대한 의견도 제시돼있다. 지난해 학위 논문을 마치자마자 두달 만에 450쪽에 이르는 <위기의 경제학> 원고를 다 써냈다는 사실은 그의 고민이 오랜시간 축적돼있었음을 보여준다. 신 연구원은 “앞으로도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에 대한 모색이 연구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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